[시가 있는 아침] 민달팽이

글쓴이 ㅁ궁화

등록일 2012-10-25 09:03

조회수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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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 김신용(1945~ )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을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衲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

치워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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