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냄 비

글쓴이 ㅁ궁화

등록일 2012-09-27 17:57

조회수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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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 문성해(1963~ )


할인점에서 고르고 고른

새 냄비를 하나 사서 안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때마침 폭설 내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불안한 길마저 다 지워지고

한순간 허공에 걸린 아파트만을 보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품속의 냄비에게서

희한하게도 위안을 얻는 것이었다

깊고 우묵한 이 냄비 속에서 그동안

내가 끓여낼 밥이 저 폭설만큼 많아서일까

내가 삶아낼 나물이 저 산의 나무들만큼 첩첩이어서일까

천지간 일이 다 냄비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고

불과 열을 이겨낼 냄비의 세월에 비하면

그깟 길 하나 못 찾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품속의 냄비에게서

희한하게도 밥 익는 김처럼

한 줄의 말씀이 길게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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