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다회(新年 茶會)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11-01-03 09:09

조회수 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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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9일에 서울갔다가 30일에 돌아오기로 한 정희씨에게

탈이 생겼습니다. 제주도의 폭설과 강풍으로 비행기가 뜨지 못한 것입니다.

31일 아침 7시 비행기 편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공항에 도착했지만 계속되는 결항으로 비행기가에 언제 탑승할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연말연시에 폭설이 내린 게 벌써 4년째입니다. 대한민국 최남단인

제주도하고도 서귀포시에 눈이 수북히 쌓여서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체인을 감고는 엉금엉금 다닐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목숨을 내걸고 다닐만큼

바쁜 일이 없으니 연말연시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정희씨가 내려오기로 한 날 오후부터 다향이한테 열이 납니다.


밤새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아주었습니다. 펄펄 열이 나면서도

"아이 차거워. 아이 차거워."하는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습니다.

물수건으로 열심히 닦아주었기 때문인지 밤새 열은 내렸는데 기침을 합니다.

다향이가 말합니다. "아빠, 차 끓여 줘."

그래 "어떤 차를 줄까?"하고 물으니 '정희사랑'차를 달라고 합니다.


지난 번, 정희씨가 감기에 걸렸을 때 모과효소랑 유자차를 함께 끓여주면서

"정희씨 이 차 이름은 '정희사랑'이야."한 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향이 말을 듣고 얼른 말합니다.

"다향아, 그건 엄마가 먹을 때 하는 말이고, 네가 먹을 때는 '다향사랑'이지."

그랬더니 아니랍니다.

아빠가 처음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으니 정희사랑차가 맞답니다.
'에구 별 걸 다 시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를 맞아 차를 실컷 마셨습니다.

창밖으로 펑펑 쏟아지는 흰눈을 보면서 오랫만에 셋이서 차를 마셨습니다.

보이차를 마시고, 녹차를 마시고, 황차를 마시고, 오룡차를 마시고...

셋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면서 차를 마시는데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앉아있는 것같은 착각이 듭니다.


'매일같이 이렇게 푹 자고 일어나서 느긋하게 밥을 먹고,

셋이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폭설로 고립된 아침이었지만 여느 해보다도 뜻깊은 새해를 맞은 것 같습니다.

(활활 달아오른 장작난로가 있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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