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방정 때문에...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10-12-22 09:06

조회수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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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입맛이 없다는 정희씨를 위해서 월남쌈을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맛있게 먹은 정희씨가 회사에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묻더랍니다.
"월남쌈이 뭐?"

그 말을 듣고 "그럼 한번 초대해서 점심식사를 대접할까?"했더니

"정말?"하면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뜹니다.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그리고 어제 낮에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다섯이 온다고 합니다.


월남쌈이야 칼질만 많이 하면 되니까 어려운 음식은 아니지만

적잖이 부담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청소를 하고, 화장실의

세면기와 변기도 반짝반짝 닦아내니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는 다향이.

다향이의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마치니 오전 9시 30분.

부랴부랴 집 앞 마트로 갑니다.


피망, 파프리카, 버섯, 당근, 깻잎, 파인애플통조림, 닭가슴살, 라이스페이퍼를

사와서 준비를 합니다. 준비래야 닭가슴살을 삶으면서 야채를 썰고 접시에 담는

것이 고작이지만 시간은 꽤 걸립니다. 푹 삶아서 적당히 식힌 닭가슴살을 손으로

일일이 찢어서 밑간을 해두니 정오가 다 되어갑니다.

식탁 위에 개인 접시랑 소스 접시, 닭고기랑 따뜻한 물그릇, 젓가락을 세팅해 놓고

진한 만델링을 한잔 마셨습니다.


남자 셋에 여자 둘이 들어섭니다. 생소해하는 분들에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라이스페이퍼를 보고 받침대인 줄 알았다고 하기도 하고, 분명히 월남쌈이라고

얘기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 음식이냐고 묻습니다.

예전에 다향이 친구집에 초대받아갔을 때 처음으로 월남쌈을 접한 제모습입니다.

신기해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상 차린 보람이 있구나!' 싶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정희씨의 뜻대로 핸드드립커피를 준비했습니다. 드립커피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만델링은 너무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라를 준비합니다.

정희씨의 직장동료들인 만큼 정성껏 드립을 하는데 집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어 커피를 내놓으면서 호기롭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제1회 제주커피축제 위원장의 커피를 맛보시는 겁니다."

"......" 커피축제를 했다는 것도 모르는지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함께 온 계장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이왕에 서비스하는 것!'생각해서

커피와는 별도로 보이차도 내놨습니다.


정희씨와 동료들이 떠나기가 무섭게 다향이랑 부지런히 월남쌈을 먹습니다.

다향이의 피아노선생님이 오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쌈을 다 먹어가는데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정희씨 동료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느라 우리 점심이 늦었습니다"했더니

그게 뭐냐고 묻습니다. 그러더니 당신의 남편은 라면밖에 삶지 못한다고 불평을

쏟아냅니다. 공연히 미안해져서 식탁정리를 하다가 말합니다.

"그럼 금요일(24일)수업엔 12시 30분 쯤에 오세요. 제가 월남쌈을 준비할께요."

얘기만 들었지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도 그렇거니와 3년여 동안 다향이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주신 분인데 이제 하늘연꽃으로 이사를 가면 뵐 수가 없습니다.

또 금요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성탄선물을 한다는 마음으로 초대합니다.


정희씨한테 입방정을 떤 댓가로 오전 10시부터 준비해서 설거지를 마치기까지

꼬박 4시간 30분이나 종종걸음을 치고도(집안 청소는 빼고) 또 입방정을...

커피중급반을 마치면서 '커피농장기금을 위한 일일찻집'얘기를 꺼냈다가

'제주커피축제'를 치르느라 죽도록 고생하고도 또 입방정을 떨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뭐 나의 작은 정성으로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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