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도 모르고.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10-07-05 08:10

조회수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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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참석할 때나 예의를 갖춰야할 곳에서 입을 옷을 찾을라치면

긴 한숨이 먼저 나옵니다.

또 산책(운동)을 하거나 다향이랑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만난

정희씨의 반응을 보면 '또 잘못했구나!'싶어 움찔합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제주로 이사온 분이 자신이 타던 자전거를 다향이한테 주겠답니다.

그런데 자전거타이어에 바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걸 끌고 상예동에서 중문동까지 한 시간 동안이나 걸어왔습니다.

해는 나지 않아지만 우기의 습도로 인해 온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내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 아니 내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더라면 그걸 바로 끌고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자전거에 바람을 넣는 기구를 빌리거나 소형트럭을 가진 분에게 부탁했을 텐데

다향이는 자전거를 가져올 아빠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오다가 집에서 가까운 오토바이가게에서 바람을 넣었습니다.

그걸 타고 돌아오니 다향이 얼굴가득 웃음이 번집니다.

과천에서부터 타고놀던 자전거가 부식되어서 버린지 일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멋지고 깨끗한 자전거를 가져오니 기쁠 수밖에요.

자전거를 보자마자 타고 놀며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혜준이네 집에 놀러가자고 합니다.

혜준이, 준성이랑 같이 타고 싶다는데 자랑하고싶어 못견디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잠깐만 아빠 숨 좀 돌리고."라며 양해를 구합니다.

찬물로 씻고, 물도 마시고 잠시 누웠다가 일어납니다.

다향이가 자전거를 타고 내 주위를 맴돌면서 혜준이네로 갑니다.


혜준이네 집으로 가다가 "아 참, 엄마한테도 보여줘야지."합니다.

정희씨가 밖으로 나옵니다.

동사무소마당에서 자전거타는 다향이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만 한심스런 표정을 짓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셋이서 지냈습니다.

커피매니아반 수업이 있는 날이라 제주시에 가야하지만 휴강이 되었습니다.

정희씨가 바다로 산책을 나가자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 말합니다.

"오늘, 어떤 걸 입을까?" 정희씨가 옷을 골라줍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반팔옷을 꺼내주고, 반바지도 골라줍니다.


정희씨가 건네준 옷을 입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늘 하던대로 컨벤션센타와 씨에스호텔, 천제교를 지나 소리섬박물관과

테디베어박물관을 거쳐서 신라호텔까지 갑니다.

그곳 북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로비의 의자에 앉았을 때 조용히 얘기합니다.


"정희씨. 이 옷은 내가 가장 아끼는 거예요.

모임이 있거나 신경써야 할 때 입느라 평소엔 꺼내입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내 옷들이 모두 이 정도만 되면 좋을 텐데 요것 딱 하나뿐이에요.

당신의 바람처럼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갈 때, 마트에 갈 때도

나도 이런 옷을 입고 싶어요."


"......"


"하지만 살림하는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된 내 옷을 사보지 못했잖아요.

환경생각도 있지만 생활비아끼느라 '아름다운 가게'나 '녹색가게'에서만

옷을 샀잖아요. 그런데 여자들 옷과는 달리 남자들 옷은 많지 않아서

대충 크기만 맞으면 사 입었지 색상이나 디자인같은 걸 고민해본지는

꽤 오래되었네요."


"난, 그런 줄 몰랐어요."


* 클럽 '밥상맨의 수다'에는 그동안 쓴 170여 편의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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