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그리움의 싹을 자르다.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10-06-23 10:46

조회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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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일), 오후 2시. 과천시민회관, 지혜학교입학설명회.


지난밤에 늦은 저녁을,

아직도 아들이 성장기의 청소년인줄 알고 많은 밥을 퍼주시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꾸역꾸역 밥을 먹었음에도 또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집을 나서선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먹는다.


'이 무슨 미련한 짓인가?'싶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기쁨을 위한 일이라면

때론 감수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나 넘길 수 있을까?"라는 말을 들으며 그런 말씀 말라고 하지만

어제 아버지의 친구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많이 우울해 한다.


당신의 장남이 모시거나 아니면 가까이 살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면 좋으련만

멀리 제주에 가서 사니 말씀은 없으셔도 얼마나 섭섭할 것인가?

큰아들과 살고싶은 마음은 있어도 익숙한 곳을 떠나 제주까지 올 용기는...


과천, 다향이가 태어나고 여섯살까지 생활한 곳이다. 중앙공원에 드른다.

옛생각이 나는지 텅빈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구름사다리에 매달리는 다향이.

오후 2시까지는 세 시간이 남았으니 다향이랑 다니던 길을 훑어보기로 한다.

제주에서 2년여 살다가 과천으로 돌아간 누리네집에 가보자는 다향이.

'휴일낮에 집에 있을까?'싶지만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런데 누리네 가족이 집에 있다.

막 외출하려던 것 같은데 우리때문에 다시 집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공연히 찾아왔나?' 미안한 생각이 든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점심을 먹자는 말에 집을 나선다.

정말 과식을 했는데 또 밥을 먹자니...


누리네랑 맛있는 청국장을 먹고 시민회관으로 달려간다.

전라남도 빛고을(광주)에 있다는 중고교통합 철안대안학교 '지혜학교.'

비인가학교라 입시를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치뤄야한다는 말이 재미있다.

어제 인디고 청소년 여행학교에서 만났던 아이와 부모들도 눈에 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고민을 가지고 사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모든 가치의 중심이 돈(부)으로 바뀐 세상에 가장 필요한 학교가 아닐까?

철학의 부재!

한때 일본인들은 경제적 동물이라 불렀던 적이 있는데 지금 이 나라가 그렇다.

부끄러운 줄도, 천박한 줄도 모르고 온갖 부도덕한 짓을 해서라도 부만 축적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인식들...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


대강의 설명회를 듣고 시민회관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다향이가 물놀이 하고, 겨울이면 썰매타던 관악산 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두껍게 얼어붙은 계곡에서 굵은 철사를 댄 썰매를 타면서 시퍼런 물속을 보고

꺅꺅 소리질렀던 다향이. 여름이면 물고기잡는다고 페트병도 들고 다녔지.

정희씨랑 파전을 안주삼아 막걸리도 꿀꺽꿀꺽 들이켜고...


이제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과천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주공11단지로 간다.

단지 안에 관악산계곡물이 흐르고 야트막한 개울가에 정자가 하나 있었지.

그곳에서 단지 사람들끼리 모여 삼겹살파티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면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와서 삼겹살을 한입씩 얻어먹곤 했는데.

정희씨가 가장 행복해했던 한때 였다. 그 이웃들도 어디선가 잘 지내겠지?


부모님과의 저녁식사를 위해서 일찌감치 안양으로 향한다.



6월 21일(월). 오후 4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일찍 부모님댁을 나서서 다향이가 좋아하는 서울랜드에서 놀다갈 계획이다.

전날 놀이공원에 가도 됐겠지만 일요일에 놀이기구 하나를 타기 위해서는

2-30분씩 기다려야 하니 월요일로 미뤄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뜬 다향이가 서울랜드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웬만해선 주지 않는 감기약을 먹였음에도 열이랑 기침때문에 힘들단다.

서울에 다니러 올 때마다 롤러코스트를 타자는 다향이가 포기하겠다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 '내색은 안해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냥 어제 갔던 (과천 중앙)공원에서 조금 놀다가 집에 가자고 한다.


아침밥을 먹는 다향이의 머리카락이 반찬에 닿는다.

머리칼을 자르고싶지 않으면 간수를 잘 하라고 얘기하지만 쉽지 않은 듯.

그래 공원에서 놀다가 주공1단지의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칼을 자르기로 한다.

집을 나서는데 정희씨랑 저녁먹으라면서 어머니가 50,000원을 쥐어준다.


이럴 때면 몸시 당혹스러워진다.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에게 용돈을 드려야하는데, 이도 네 개나 빠져서

치료받아야한다는데, 여유가 있으면 폼나게 치료비를 드릴 텐데

거꾸로 어머니가 용돈을 쥐어주다니...

한사코 거절하다가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못이기는체 받아든다.


"언제 또 볼지 아니?" 이 말을 듣는 순간 영화나 드라마속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소원)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 후회가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의 50,000원을 받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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