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TV를 보고 있는 남편을 살살 꼬셔도 말 없이 화면만 주시할 뿐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십년 가까이 같이 산 내 성격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겠지.....
"학교때에 빌~ 매력이 없어서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없었지! 그럼 그렇겠지...."
하고 빈정대며 돌아누웠더니,
"무어? 내가 매력이 없었다고? 옛날에 나 좋다고 집까지 쫓아 오는 가스나들
난 귀찮아서 다 쫓아 버렸었다. 우째 쫓아 버맀는지 아나?
세수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담장 밖으로 훽! 쏟아 뿌맀었다. 한 두 가스나들
이라야 말이지...... 킬킬~ "
하고 재밌는 듯 웃는 데, 그때의 익살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다.
" 나 좋다고 쫓아 오는 여학생에게 물 퍼붓는 남학생도 있냐? 하이구 심술 궂기는...."
하고 내가 말했더니,
"그럼 촌에서 금방 소문 날낀데 우리집에 들와서 놀다 가거라 할끼가? "
그런다...... 안봐도 뻔하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은 좋아가지고, 지 먹던것도
여학생이 달라고 하면 줬을끼고, 여학생들 앞에서 모험처럼 언덕위의 꽃을
따다 받쳤을 끼고.......
여자들은 대개 자기에게 잘 해주면서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남자나, 똑똑하게
자기 할 일 잘 해내는 카리스마 기질이 있는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남편은 그 첫 번째 일 것 같고, 나또한 그의 그런 매력에 끌려 우째다 보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랬구나..... 그럼 그 첫 사랑을 만나 본적은 있나? "
하고 내친김에 물었더니 이제는 입을 아예 꽉 다물고 들은체 만체다.
"머~ 옆집 아저씨는(43세) 국민학교 동기회 갔다 오니 자꾸 여자 동기에게서
전화온다 카더라. 만나자 카면서...... 옆집 아저씨가 잘생겨서 전화 올거야? 그쟈?
그래도 안만난다 카대? 자기 와이프보다 얼굴도, 손도 다 늙어 빠졌더라 카면서...... "
내가 그런 소리까지 해도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 나이 사십 가까워 오면 애들도 다 키워 놨고, 슬슬 옛 생각도 난다 카더라.
한번 얘기해봐. 자기도....."
하고 턱 밑에 고개를 갖다대고 물으니, 남편은 콧방귀를 뀌면서 입을 들썩인다.
" 머어? 나이 사십? 야~ 이사람아~ 난 첫사랑 여자 만난지 벌써 몇 년 지났다.
나이 사십은 무슨......" 하는데 무슨 말이 나올지 긴장이 되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맞장구를 쳤다.
" 몇 년전? 그럼 언제 만났는데? " 하고 물었더니,
" 한 오년 됐을걸? 에이~ 빌꺼 아니다. 안 해 줄란다. "
카는데 이기 분명히 뭔가 있지 싶어서 속은 탔지만 꾹 참고 재밌을 것 같다며
다시 물었다.
" 대구 북부 주차장 앞의 다방에서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났더니 빌로 할 얘기도
없고 해서 기냥 차 한잔 마시고 헤어졌다. 그래고 난께로 다시는 연락 안오데?
그전에는 글키 연락이 와 쌌더니......"
하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데, 나는 화가 나서,
" 머어!!!!! 나 몰래 첫 사랑을 만났다고? 머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그리고 난데 없는 대구는 왜 갔는데!!! 애들 델고 놀이공원 가자캐도
대구 가면 차 밀린다고 안가는 사람이!!!! "
하고 소리를 냅다 질렀더니,
" 하이고~ 내 이럴줄 알았다. 턱 밑에서 살살 알랑방구 뀔찍에 알아
봤어야 됐는데~~~ 그리고 내가 대구 그 여자 만나러 갔디나! 부품센타에
물건 가지러 갔지!! " 하면서 재떨이를 들고 뒷베란다로 도망을 치고
만다.
첫사랑.......
변해버린 서로의 모습에 익숙치 않고, 각기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옛날에 아무리 가슴 아프게 헤어졌고, 그동안 많은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해도
그 애틋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첫사랑에 대한 환상은 깨져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