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공공운수연맹의 요청으로 용산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라고는 하지만 '남자주부 오성근의 재미난 이야기'란 주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아픈 얘기지요.
살림을 시작한 이유와 배경, 남자로서 사림과 육아를 감당하기의
어려움(친인척과 친구 사회로부터의 편견, 여자주부로부터의 왕따),
그리고 살림 10년 만에 깨달은 것 - 세상일에는 남녀의 일이 따로 없고,
일의 역할에 의해서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지 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짝을 이뤄 살아가기의 고단함과 지혜,
남편 되기, 아내 되기, 아빠 되기에도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
(나이가 먹고, 몸집이 커졌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많은 분들이 웃고, 낯을 찡그리고, 손뼉을 칩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많이 미안했습니다.
주로 이야기하는 '양성평등'이나 '자녀교육'에 비해 더 편안한
주제이긴 하지만 준비를 거의 못했기 때문입니다.
강의는 20일 저녁인데 장인장모님이 19일에 돌아가셨습니다.
딸은 매일 출근해서 없고, 사위가 모시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지
16일에 올라가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말을 들은 게 12일입니다.
그래 정희씨한테 말했습니다.
화수목(13-15일)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많이 사드리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장인장모님의 비행기표를 19일로 예매했답니다.
이번 강의는 특히 중요하며, 충분히 준비하고 싶으니 조금은 아쉽지만
16일에 가시도록 하자고 했는데 19일로 예매를 했답니다.
까닭을 물으니 금요일의 비행기값이 가장 비싸답니다.
그런 이유로 강의준비할 시간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내가 모시고 나가지 못할 때는 대부분 텔레비전을 시청합니다.
연세가 계시다보니 볼륨을 크게 해놓습니다.
건넌방에 앉아서 집중하려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토요일(17일)이 되었습니다. 정희씨가 쉬는 날입니다.
이삿짐정리를 한다면서 부산을 떱니다.
장인장모님은 여전히 텔레비전 볼륨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건넌방 문이 빼곡히 열립니다. 정희씨가 말합니다.
"계속 집에 있을 거에요?" 나가자는 말입니다.
어른들과 다향이, 정희씨를 태우고 관광에 나섭니다.
200g 1인분에 13,000원이나 하는 흑돼지오겹살을 먹습니다.
중산간으로 올라가 제주다원의 차를 마십니다.
서귀포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전망좋은 곳에서 차로 마십니다.
그리고 해발 1280m의 영실로 올라갑니다.
한라산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올라갑니다.
설악산이나 내장산에 뒤지지 않는 현란한 단풍이 자태를 뽐냅니다.
그리고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산책합니다.
나무데크가 잘 깔려있는 편백나무 숲을 산책합니다.
일요일(18일)이 되었습니다.
토요일아침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됩니다.
마음은 급한데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습니다.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듭니다.
다급한 마음에 정희씨한테 부탁을 합니다.
장인장모님 모시고 관광도 시켜드리고, 맛있는 것도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정희씨가 부모님을 모시고 나갑니다. 아침 10시 30분에 외출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씁니다.
다향이가 배고프다고 합니다. 12시밖에 안 되었는데...
그래 밥을 해먹이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정희씨가 돌아옵니다.
물론 장인장모님도 정희씨를 따라서 들어옵니다.
오후 1시 30분입니다. 겨우 3시간 만에...
어휴! 팔자타령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월요일(19일) 11시, 장인장모님을 공항버스정류장까지 배웅했습니다.
일정이 없었더라면 1,100도로를 지나가면서 더 구경을 시켜드렸을 텐데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향이 점심을 먹이고 준비를 하는데 또 전화가 옵니다.
예전에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아빠들의 모임이었던 '딸사랑아버지모임'
에서 만난 선배입니다.
제주에 놀러왔다고 저녁을 먹자고 합니다.
상황을 말씀드리고 이틀 뒤에 만나자고 했지만 '밥은 먹을 거 아니냐?'면서
굳이 만나자고 합니다.
그래 잡어회에 소주 반병 씩 마셨습니다.
강의 부탁을 받은 게 두 달 전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준비가 미흡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잘 정리해서 설명하지 못하고 헤맸습니다.
너무나 미안합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데 강의비에 교통비, 숙박비까지 챙겨줍니다.
용산에 가면서 꼭 들리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재개발에 목숨을 빼앗긴 용산참사현장이 바로 그곳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남일당건물로 조문을 갔습니다.
인터넷방송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용산대로 옆입니다.
공교롭게도 딸사랑아버지모임 장소로 사용했던 하자센터근처입니다.
다섯 분의 영정앞에 향을 사르고 절을 올립니다.
지칠대로 지쳐서 피곤에 절은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문정현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분이 비닐천막 안을 지키고 있습니다.
조용히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습니다.
용산역에 내리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익히 알고 있던 옛 용산역은 사라지고 크고 각진 게단을 올랐다가
내려서야 용산역을 빠져나왔습니다.
대기업들이 민자역사를 지으면서 엄청난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그 기업들을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서민들이 좇겨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서울로 돌아갈까? 아니면 제주에 눌러앉을까?'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라고 해서 자본독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크게 돈이 되는 곳이 아니니만큼 숨을 고를 시간은 있지 않을까?
깊어가는 가을에 고민만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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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미
으휴..오나가나 그 개발이란것이 문제..가본적은 없지만 인천 굴업도..던가요. 그 섬이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다는데요. 거기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난리라니..사람들이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그 뉴스만 보면 확..짜증나 죽겄어요. 골프장이 대체 뭐길래..경치 좋은 곳은 다 돈 있는 사람들만 차지하고 지들만 보고 살겠다는거지 뭔지..
굴업도에 골프장 지으면 전 그 대기업 제품 불매하렵니다. 나같은거 하나쯤 그 기업 제품 안 써도 되겄지요..뭐..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옆에다가
말레이시아 버쟈야그룹이 200미터 짜리 호텔을 짓는답니다.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조망권인데 그렇게 망쳐버리면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건만 기어코 도지사가 밀어붙였습니다.
외자유치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들어옴으로써 실제 도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가 중요한데도
외자유치 자체를 자신의 큰 업적으로 여기는 듯 합니다.
전 국민을 반정부 투사로 만드려고 하는지...
미류
자본독재로부터의 자유를 얻기위해서
아마 무인도 전기,특히 전파가 안통하는 곳이면 잠시 자유롭지 않을까요
근데 시가이 갈수록 불편하겠죠
문규현신부님이 의식불명상태라고해서 안타깝네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