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화요일에 제주에 오신 장인어른께 여쭤봅니다.
“아버님, 사우나에 가시지요.”
됐다고, 집에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고 합니다. 팔십이 다 된 어른이 찬물로 샤워라니, 제대로 씻는 건 고사하고 감기나 걸리면 어쩌려고? 염려됩니다.
그저께 이사를 했습니다. 서귀포월드컵경기장 위의 주택가에서 중문관광단지 근처의 조용한 빌라로 옮겼지요. 부산한 하루였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마땅한 반찬도 없어서 정희씨한테 말합니다.
“저녁은 나가서 먹죠. 힘나는 걸로.”
“뭘 만날 나가서 먹어요? 엄마가 밥한대요.”
“……”
‘만날 나가서 먹어?’, ‘누가?’, ‘언제?’ 장인장모님이 내려온 지난 화요일(10월 6일)에 광어 한 마리를 회 뜨고, 매운탕을 끓여먹었을 뿐입니다. 그냥 넘어갔습니다. ‘잦은 이사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겠지.’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사한 집에서 잠을 잡니다. 좋은 꿈꾸길 바라면서 잠자리에 누워 얘기합니다.
“내일은 장인장모님 모시고 풍림사우나에 갑시다. 며칠 동안 목욕을 못하신 것 같아요.”
“……”
서귀포의 강정천과 악근천 사이에 있는 풍림사우나가 훌륭합니다. 크기는 작지만 아늑하고, 해수사우나탕도 있습니다. 악근천이 끝나는, 악근천의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의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어제아침(10월 11일) 이삿짐을 대충 정리하고 집을 나섭니다. 장인장모님이 내려오시고, 처음으로 맞는 휴일입니다. 제주관광도 시켜드리고 맛난 것도 사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해결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제까지 살던 집을 청소해야 합니다. 어제부터는 부모님이 그 집을 사용하시기로 했거든요. 다섯 명이 자동차를 이동을 합니다. 그 차 안에서 정희씨가 말합니다.
“아버지 사우나 가실래요?”
“사우나는 무슨? 그저께 찬물로 했다.”
어이가 없습니다. 맛난 것 대접하고, 좋은 곳 구경시키고, 사우나에 가면 될 걸 굳이 묻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부모란 먹고(하고) 싶은 게 있어도 자식들 형편 고려해서 참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면전에서 가부를 묻다니.
서귀포시 신시가지에 가서 열심히 청소를 했습니다. 두 분이 주무실 곳이므로 깨끗이 쓸고, 물걸레질을 했습니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닙니다. 그리고 서귀포항 근처의 단골식당으로 갔습니다.
부모님이 내려오시면 3박 4일의 여행 중에도 두 끼를 드시는 곳입니다. 값이 싸고, 맛있을뿐더러 푸짐하기까지 합니다. 갈치조림 2인분과 갈치국 2인분을 주문했습니다.
갈치국이 나오고, 조림이 나옵니다. 성게미역국도 두 그릇과 갈치알젓과 배추속도 줍니다. 두 분이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갈치국은 비리지 않고, 담백하다 말하면서도 맛만 봅니다.
미역을 좋아하시는 장인어른은 성게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드시고, 장모님은 밥을 제쳐둔 채 갈치조림만 열심히 드십니다. 두 분이 맛있게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흡족한 식사 뒤에 새섬공원으로 이동합니다. 서귀포 앞바다에는 섬이 많습니다. 새섬, 섶섬, 문섬, 범섬, 지근도, 가파도, 마라도 등등. 그중 새섬은 바로 서귀포항 코앞에 있는 섬입니다. 얼마 전에 새섬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완공되었습니다.
새로운 명물의 탄생입니다. 새섬으로 가니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코스에 따라 범섬과 문섬, 섶섬이 손에 잡힐 듯이 보입니다. 저 멀리 한라산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장모님이 다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목도 마르다고 합니다.
그래 외돌개를 구경가기로 합니다. 외돌개의 솔빛바다에서 태평양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고 싶습니다. 그런데…… 카페 솔빛바다가 없어졌습니다. 인근의 다른 가게들도 철거중입니다. 시에서 환경보호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온천을 포함한 대규모 레저시설이 들어섭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가게들이 모두 뜯겨져 나갑니다. 도시의 재개발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로는 주거환경개발이지만 결국은 개발업자, 건축업자들 배만 불려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서민들이 경치 좋은 바닷가에서 1,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2,000원짜리 병맥주를 마시는 게 마뜩치 않았나 봅니다. 천하절경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는 게 밉상이었나 봅니다. 개발이 되고나면 훨씬 더 좋은 시설이 들어설 것입니다. 하지만 서민들이 이용하기에는 무척이나 부담스럽겠지요.
풍림콘도로 이동을 합니다. 친한 이들이 오면 꼭 구경시켜주는 정자(악근천과 바다가 만나는)로 갑니다. 정희씨랑 다향이가 물과 과자를 사옵니다. 솔밭사이로 부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언제나 듣기 좋습니다. 그곳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합니다.
정희씨에게 눈짓을 합니다. 해수사우나에 가자고 신호를 보냅니다. 정희씨가 말합니다.
“아버지, 여기 사우나 괜찮은데 목욕할래요?”
“……”
장인어른의 대답은 오전과 똑같습니다. 답답해서 내가 나섭니다.
“제가 피곤해서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담그고 싶어요. 아버님.”
그때서야 장인어른이 움직입니다. 장모님도 일어섭니다. 함께 목욕을 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탕에 몸을 담근 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서로 등을 밀어줍니다. 그러면서 조금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두 분을 모시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봅니다. 그리고 당분간 머무를 집에 내려드립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낯선 곳에 두 분만 남겨두고 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전화가 걸려옵니다. 대문열쇠가 없다고 합니다.
얼른 가보니 대문 바깥에 열쇠를 꽂아둔 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대문 안에서 버튼만 누르면 문이 열리는데 당혹스런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그래 대문쪽에 앉아있던 정희씨한테 말합니다. 빨리 내려서 열쇠 빼 드리고, 문 안의 버튼을 알려주라고 합니다.
왜 내리라고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얘기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셋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무엇이 불만인지, 왜 또 화를 냈는지?’ 물어봅니다. 아침에 문 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는데 내리라고 해서 화가 났답니다.
지금 당장 대문 안에서 당황스러워하는데 아침에 가르쳐준 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고 물으니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다시 찬찬히 설명을 합니다.
“정희씨. 우리가 제주로 산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오신 분들이에요. 제주에 계시면 얼마나 더 계시고,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어요? 계실 때만이라도 바짝 신경 써서 잘하자고요.
사우나만 해도 그래요. 당신도 알다시피 난 답답해서 싫어하잖아요. 하지만 며칠 동안 목욕을 못하셨으니 얼마나 찝찝하시겠어요. 당신이 신경 쓰지 못한 걸 내가 배려했으면 같이 가면 되잖아요. 그걸 꼭 ‘갈래요? 말래요?’하고 묻는 게 난 이해되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매 맞을 놈한테 ‘너 맞을래? 안 맞을래?’하고 묻는 것이랑 뭐가 달라요?”
“……”
다음달 28일이면 결혼16주년인데도 정희씨의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정도면 선천성 애정결핍증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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