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고 며칠간 괴로움 속에 보냈다.
사건 현장에 내가 가 있는 상상까지 했다.
아이를 해치려는 놈의 뒤에서 펄펄 끓는 물을 쏟아 부을까,
아니, 그럼 아이도 다칠 수 있으니까
그 자의 등에 칼을 꽂을까…
이런 허무한 상상을 하며 보낸 며칠은 악몽이었다.
다행히 네티즌들과 정치권이 이 일을 일시적으로 흘려 버리지 않고
아동 성폭행에 대해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피해 어린이의 부모님이 용기 있게 이 일을 드러내 보였기에 망정이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유사 사건들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오래 전 아유슈비츠 생존자의 기록을 읽고 상심했던 기억이 있다.
같은 인간으로서 그런 잔인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간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번 조두순 사건의 충격도 그에 못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어디선가 스쳐갔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 범행이라 피부에 와 닿는 공포감은 더 컸을지 모르겠다.
내 아이의 건강 문제로 신경 곤두세우고 병원에 다닐 무렵에 접한 범행 소식,
어디선가 한 아이가 잔인하게 희생되고 있는데
내 아이만 끌어 안고 노심초사 하는 것이 일순간 허탈했다.
한 동안의 패닉 상태에서 일어나 생각한다.
선진국의 경우 아이가 하나하나 희생될 때마다
성폭행에 대한 법 체제가 한발씩 전진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법 체제 개선에 논의를 서둘렀으면 한다.
흉악범이 나올 때마다 사형 제 논의가 되곤 했다.
나 개인적으론 가장 엄중한 응징은 사형이 아니라 생각한다.
조두순과 같은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최소한의 공감조차 할 수 없는,
영혼이 죽은 자이다.
죽어버린 그의 영혼을 살려 내어 우리가 지금 겪는 고통의 크기를
그가 한꺼번에 맛보길 바란다.
누봉님이 소개한 선례처럼 그도 징역 4,000여 년쯤 받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죽어버린 그의 심장을 살려놓길 바란다.
신창원이 한 말 중 잊지 못할 말이 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었다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 거라는 말.
교사로 지냈던 시간 동안 소위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이 담임 반에 들어오면
그 말은 늘 가슴 속에 맴돌았다.
조두순의 삶이 궁금하다.
그는 어디서 튀어나온 자일까?
신창원이 한 말이 그에게는 얼만큼 적용이 될까?
아우슈비츠의 참상이 결코 히틀러를 추종하는 소수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두순 역시 그를 길러낸 토양이 있을 것이다.
이를 철저하게 파헤쳐 그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흉악범의 경우 사이코패스라는 말로 설명되곤 한다.
사이코패스의 범죄가 유전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거라면 희망이 없겠지만
그런 성향의 사람이 긍정적인 환경을 만나면
뛰어난 CEO나 정치가가 될 수 있는 성향이란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사건의 피해 어린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변이 드러나지 않게 보호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잊혀지지 않고
생명, 그리고 성(性)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인식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최신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