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22.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09-09-22 11:06

조회수 1,538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9월 16일]


<아빠>

먼동이 트기도 전에 자동차소리가 시끄럽다.

후줄근한 공간, 퀴퀴한 냄새 가운데서 다향이가 잠을 잔다.

지난해에도 느낀 것이지만 나그네를 위한 싸고, 깨끗한 공간이 그립다.

주인아주머니가 몹시도 부지런한 듯 청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연히 마음이 바빠진다.

피곤하다고, 내일 아침에 샤워하겠다던 다향이가 또 건너뛴다.

산에 다녀와서 땀을 많이 흘렸는데 저러다가 습진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안동지도라도 얻으려고 시청으로 간다.

민원실 앞의 안내소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전화통화를 한다.

바쁜가 싶어서 들어보니 사적인 전화다. 긴박한 전화가 아니다.

그 앞에 2-3분 동안 서서 기다려도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는다.

그래 말을 걸어보는데 쳐다보지도 않는다. 공무원에게 물어보니 자원봉사자란다.


자원봉사를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월급을 받지 않는다

(? 내가 생각하는 자원봉사자)고 해서 그렇게 무성의하면 안 되지?

아무튼 그 아주머니로 인해서 안동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 꽝이다.

공무원 둘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어지만 불쾌함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병산서원엘 갔다가 권정생선생님이 사시던 곳을 찾아보기로 한다.

병산서원엘 가는데 다향이가 하회마을이 기억나지 않는단다.

그래 한 번 더 구경하기로 한다. 하회마을주차장에 이르렀는데

민박 2만원이란 펼침막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제기랄. 


어제 밤 서안동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가까운 숙소를 물었더니

하회마을 쪽에는 숙소가 없으니까 시내 옥동으로 가라고 했다.

그곳에 가면 싸고 깨끗한 숙소가 많다고. 그래 어둠을 헤치고 찾아갔던 옥동.

불야성, 소돔과 고모라! 아이랑 묵기에는 너무나 민망했던 곳.

그래 다시 시청근처의 후줄근한 모텔에서 25,000원을 지불하고 잠을 잤다.


하회마을 앞에서 묵었다면 안동시까지 들어가다가 다시 올 이유가 없었는데.

톨게이트에 계신 분의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서 시간과 연료비를 소비한 것은 물론

안동에 대한 인상에 금이 간다.


하회마을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다향이.

그때 한 무리의 관광객이 경기도박물관에서 왔다면서 학예사를 찾는다.

어느 곳을 가든지 학예사의 설명을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다.

‘이게 웬 행운?’ 속으로 생각하며 다향이를 기다리는데 오질 않는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온 일행이 하회마을로 걸어간다.


셔틀버스는 곧 떠나려고 출발준비중이다.

‘다향이가 오면 버스를 타고 가야지’ 생각하는데 소변을 보겠다는 아이가 나타나질 않는다.

그래 데리러갔더니만 대변을 보고 손을 씻는 중이다.

“다향아, 빨리 가자” 하고 매표소 앞으로 가는데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학예사의 안내를 받을 사람들도, 버스도 놓친 마당에 급할 게 없다.

하회마을까지 천천히 걸어가는데 “아빠, 내 카메라?” 한다. 화장실에 두고 왔단다.

걸어온 길을 부랴부랴 되짚어간다.

하회마을매표소 앞에 도착한 게 30분 전인데 계속해서 헤매고만 있다.

‘지난해 다녀간 곳을 괜히 왔나?’ 싶다. 다행히 카메라를 찾았다.


이미 파김치가 되어서 어떻게 할지 물으니 하회마을에 가겠다고 한다.

그래 다시 한 번 둘러본다. 두 번째 보니 확실히 처음보다는 많이 보인다.

낮 12시 50분. 아침으로 다향이는 생식을 먹고,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속이 쓰리다. 무얼 먹을까? 물으니 국밥을 먹겠단다. 그런데 국밥이 없다.


간고등어정식, 비빔밥, 안동찜닭이 메뉴의 전부다. 헛제사밥이 무엇인지 먹어보고 싶었는데.

다향이가 간고등어를 먹겠단다. “정말?” 하고 물으니 안동찜닭을 먹자고 한다.

어제 저녁이라고 휴게소에서 핫도그를 하나씩 먹고,

아침에는 생식을 먹였으니 한 끼라도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안동찜닭을 먹는다. 사실 나도 처음 먹어본 안동찜닭.

달달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맵다.


병산서원으로 넘어간다.

지난해에 하회마을에서 파김치가 되어 다른 관광객의 차를 얻어 타고서라도

가보고 싶었지만 실패한 곳. 정희씨가 강력추천한 곳이라 찾아보기로 한다.

만대루에 오르니 풍광이 수려하다. 하지만 천장을 보고는 실망감이 밀려온다.

1979년도에 보수를 했다는데 시멘트를 발라놓았다.

보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놓을 것이지, 그것도 보물이라면서.


병산서원을 나와서 안동시내로 방향을 잡는데 다향이가 말한다.

"아빠, 소쇄원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 속으로 '나도' 한다.

어제 밤에 빠져나왔던 서안동톨게이트를 두 번이나 지나친다.

동화작가 권정생선생님 - 성자의 삶을 사셨다 - 이 사시던 일직면 조탑리는

남안동톨게이트 바로 앞에 있단다.


조탑리 가는 길에 만난 농부아저씨가 땅바닥에 약도까지 그려가면서 찬찬히 설명해준다.

당신의 차를 세워놓고 설명해주시는 아저씨로 인해서 안동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봄볕에 눈 녹듯이 사라진다. 덕분에 쉽게 찾아간 일직교회.

목사님께서 권선생님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와 그분에 대한 당신의 글이 담긴 책자,

다향이(어린이)한테는 강아지똥의 주인공을 형상화한 인형까지 건넨다.


빌뱅이 언덕의 초가.

전혀 특이할 게 없는 작은 오두막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성거렸을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 멀리 종지기로서 살았던 일직교회가 보인다.

언제고 살아생전에 한 번 쯤은 뵐 줄 알았는데 허망하게 가버린 선생님.

나의 게으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바다건너에서 안타까워만 했었다.


선생님 누울 자리만 빼놓고도 책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는데 이제는 빈방이다.

주인 잃은 집에 역시 텅 빈 개집이 애잔하다. 잠시 선생님의 명복을 빌고 안동을 떠난다.

작가가 되려고 동화를 쓴 게 아니라 예배시간에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글을 쓰셨다는 선생님의 뜻을 가슴에 새긴다.


제주로 돌아가기 전에 승주 선암사 앞에 사는 친구 다영이가 보고 싶단다.

그래 어제도 설악산에서 안동까지의 장거리운행을 견뎌낸 다향이,

오늘도 승주까지 가잔다.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러서 맨손체조를 하고, 찬물을 마시면서 운전을 한다.

이틀 연속 꼬박 네 시간 만에 도착한 선암사, 선암민박.


보름여 만에 만난 두 아이가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한다.

저녁을 얻어먹으니 온몸이 노곤하고, 두 눈은 충혈 되어 있다.

그래도 다향이의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마음은 기쁘다.

내일저녁이면 셋이 저녁을 먹을 수 있겠지!





















 


 

<다향>

아빠랑 하회마을에 갔다가 권정생선생님 집에 들렀다가

승주 선암사 밑에 있는 다영이네 집으로 갔다.

그런데 다영이하고 다경이가 집에 없었다.

다영이하고 다경이가 치과에 갔다고 할머니가 말해주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다영이가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다영이를 놀래 켜 주려고 했는데 다영이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뛰어왔다.

그래서 내 작전은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어쨌든 다영이랑 재미있게 놀았다.


티비도 보고, 남돌이랑도 놀고, 콜팝도 먹었다.

콜팝이 뭐냐 하면 콜라랑 조그만 공모양의 치킨이랑 같이 있는 건데

되게 맛있었다.

아빠랑 나는 치킨이 콜라에 빠져있는 건줄 알았는데

콜라랑 치킨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었다.

(어쩐지 컵이 너무 가볍더라) 그건 콜라 컵 모양이었는데 밑에는 콜라,

위에는 치킨이 있었다. 

나도 제주도로 돌아가면 꼭 사먹을 거다.


다영이가 오기 전에 남돌이랑 놀았다.

남돌이는 내가오면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와야 정상인데 느릿느릿 걸어왔다.

왜 저러냐고 물었더니 남돌이가 아프다고 했다.


며칠 전에 순이라는 골든리트리버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들 중 한 마리를 데려 왔다고 했다. 그 강아지 이름은 장군이다.

남돌이보다  장군이가 좀 더 어리니까 더 잘 챙겨줘서 속상해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많이 위로해 줬다.


근데......... 속상해 한다고 하기보단 마음에 꽤 큰 상처를 받은 것 갔다.

요새 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고기를 줘도 안 먹고 자기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배가 홀쭉해졌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담기 인쇄 답글 목록 글쓰기
로그인 후 덧글을 남겨주세요


글수 글수(36,874 )
쓰기
번호 제목 글쓴이등록일조회수
21537   시댁에서 점심을.. 1 박정인2009-09-261027
21536   작은말한마디~ 2 김현순(..2009-09-261286
21535   아이들 대화 속에 정답이 있네요 toto2009-09-261389
21534   하늘공원에 다녀 왔어요 현이2009-09-261385
21533   9월에 마지막주 박정인2009-09-251377
21532   무서운 세상... 박종권2009-09-251443
21531   내가 화났을 때는. 6 밥상차리..2009-09-251408
21530   잘 살아보세 만석2009-09-251596
21529   김치 담그고 나니 6 teresung..2009-09-251404
21528   그래 아직 에미팔이 널 베줄수 있구나.. 3 누봉이2009-09-241445
21527   바쁘게 살아온 나에게 선물을 준 과천한마당축제 !! awe552009-09-241416
21526   졸음.. 박정인2009-09-241555
21525   유령사기회사의 횡포때문에.. 박종권2009-09-241340
21524   칠갑산의고장 청양다녀왔어요 손미자2009-09-241404
21523   나의 블랙홀~ 울 신랑 1 황금돼지..2009-09-241553
21522   ☆청양농촌체험☆ 정말 갔다오길 잘했네여 1 최금숙2009-09-241267
21521   이하얀 유감 2 누봉이2009-09-246081
21520   미인은 누더기를 입어도 미인이라더니. 5 밥상차리..2009-09-241479
21519   안녕하세요^^ㅋㅋㅋㅋ 3 linetop2009-09-241125
21518   닉 네임에 대하여 14 만석2009-09-241945
21517   어떤 색 좋아하세요? 3 아이스카..2009-09-234033
21516   설렁탕.. 2 박정인2009-09-231226
21515   부추꽃 3 현이2009-09-231401
21514   로또 횡재가 이렇게 힘든건가여~ 박종권2009-09-231572
21513   희비가 엇갈린날... 3 지인지호..2009-09-231367
21512   체함... 2 박정인2009-09-222095
21511   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23.(끝) 밥상차리..2009-09-221310
21510   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22. 밥상차리..2009-09-221539
21509   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21. 밥상차리..2009-09-221647
21508   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20. 밥상차리..2009-09-221470
21507   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19. 밥상차리..2009-09-221587
쓰기
검색 목록보기


이벤트·체험단

기간 ~

쑥쑥플래닛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