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21.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09-09-22 11:01

조회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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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아빠>

지난밤에 녹차를 마신게 원인이었을까?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밤새 뒤척였다.

다향이는 잘 잔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지금 이 아이를 위해서 잘 하고 있는 건지? 아이라면 누구나

학교 다니기 싫다고 할 때가 있는데 너무 쉽게 학교를 그만두게 한 건 아닌지?

내년엔 계획대로 해외배낭여행이 가능할지?’ 두서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희씨도 걸린다. 착한 여자. 남편과 아이가 여행을 하도록 배려할 줄 아는 여자.

하지만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친한 동무 하나 없이,

피붙이도 없는 제주에서 홀로 생활하려니 많이 힘들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나흘 정희씨의 목소리에 힘이 없고, 착 가라앉아있다.

‘이쯤에서 끝내고 돌아갈까?’ 생각하는데 다향이가 깨어난다.


다향이가 어제 일기를 쓰는 동안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인다.

그리고 설악동매표소에 도착한 게 10시. 주차료로 4,000원을 받는다.

개인이 운영하는 거라 4-6급장애자는 할인이 안 된단다.

어디는 무료, 어느 곳은 50% 할인, 또 다른 곳은 아예 할인이 안 된다.

도대체 어떤 게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매표소에서 장애인은 무료라면서 다향이 입장료 6,00원을 받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더니.

제일먼저 설악산신흥사통일대불이 눈에 들어온다.

청동으로 봉안되었다는데 규모면에서 압권이다.

대충 둘러보고 흔들바위를 찾아 길을 간다.


아주머니 다섯이 산을 오르면서 “책을 1년에 100권 읽는데.

난 한 달에 한권 읽기도 힘든데. 그것도 집중을 해서 읽어야지, 아니면…” 한

비야 얘긴가 보다 짐작을 한다. 1년에 백 권이라면 엄청난 양이다.

그렇게 읽은 것은 초등학생시절밖에 없다.


산을 오를수록 울산바위의 아름다움이 눈에 띈다.

등산길에서 장사하는 아낙들의 친절함에 송구해진다.

등정거리와 소요시간을 알려주고, 찬물을 건네기도 한다.

물론 당신이 운영하는 가게에 와서 밥을 먹으라는 얘기지만 기분나쁘지 않다.


한 시간 동안 산에 올라서 마주친 흔들바위. 에게! 요렇게 작았나 싶다.

고등학교시절 수학여행 때 본 것은 더 컸던 것 같은데.

다향이도 “이게 뭐야?”한다. 그리고 힘껏 밀어보는데 꿈쩍도 안한다.

다향이랑 둘이 밀어보니 겨우 눈치 챌 만큼 움직인다.

하지만 다향이는 움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건 흔들바위가 아니라 꿈쩍바위야, 꿈쩍도 안하는 꿈쩍바위.”


기념촬영을 하고,

그늘진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다섯 분의 아주머니가 커피를 마신다.

오랜만에 땀을 흘려서인지 커피가 당긴다.

그래 염치불구하고 커피에 여분이 있으면 한잔 주십사 부탁을 한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는데 알아보는 분이 있다.


그래 커피 한잔 청한 인연으로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파전, 감자전, 김치전에 동동주도 한잔 하고, 맛좋은 산채비빔밥도 먹었다.

퀼트모임을 하는 분들이란다.

속초에 사는 분들이지만 모두 외지에서 속초로 이사를 오셨다고 한다.

그런 만남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정겹다.


그중 한분이 캐나다에 사는 언니의 아파트가 비어있으니까 하루 더 묵어가란다.

푹 쉬고 양양의 미천국립공원을 구경한 다음에 강릉으로 넘어가란다.

그러면서 열쇠를 보관하고 있는 분의 전화번호와 아파트 동호수를 가르쳐준다.

그럴까 생각해보지만 과분한 호의다. 선배와의 선약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배려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아있는 정희씨의 목소리가 걸린다.


다섯 분이 돌아가고 다향이랑 비룡폭포를 향해 걷는다.

걸으면서 “다향아, 정말 케이블카 타고 싶지 않아?”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 “나중에 후회할 것 같으면 지금 타. 기회는 지나가면 그만이야.”

하고 말해주니 타겠다고 한다. 또 아비의 주머니걱정을 한 것 같다.


케이블카의 가격이 세다. 어른은 8,500원, 아이는 5,500원, 합해서 14,000원.

점심식사비를 지불해주신 다섯 분에게 감사하며 케이블카를 탄다.

남산케이블카를 타고 시시했다던 다향이가 즐거워한다.

죽순바위와 병풍바위를 지나서 멈춘 케이블카.


우 내린 사람들이 산을 오른다. 그들의 뒤를 쫓는다.

‘권금성’ 권씨 성을 가진 장사와 김씨 성을 가진 장사가

하루 밤 만에 성을 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할머니할아버지도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른다.

다향이도 올라가면서 사진을 찍으란다. 아! 위태위태해 보이는데.

공룡능선도, 달마바위도, 울산바위도, 속초시와 그 너머 바다가 한눈에 모두 들어온다.


16년 전에 신혼여행을 왔던 곳.

그때도 케이블카를 탔었는데 너무 추워서 권금성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오리털파카에 털모자, 가죽장갑을 끼고도 추워서 커피만 마셨었다.

역시 같은 곳이라도, 여러 번 다름 조건에서 봐야지만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보름 뒤쯤이면 설악산이 울긋불긋할 텐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다향이랑 상의를 한다.

비룡폭포를 보러갈 것인지, 피곤하니 그만둘 것인지? 머뭇거리다가 보러가자고 한다.

무얼 물을 때면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면 좋은데 가끔 눈치를 보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가 그리 나쁜 아빤가? 아니면 평소에 독재를 하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튼 비룡폭포를 향해 걷는다. “아빠, 무릎 괜찮아?”

어제는 왕복 두 시간 밖에 걷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미 그 이상을 걸었다.

비룡폭포까지 잘 다녀올 수 있을지 나도 걱정이 된다. 중간에 생수통이 비었다.

다향이한테 계곡물을 받아오라니까 차라리 먹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생수통에 물을 받아서 꿀꺽꿀꺽 마신다.


‘그토록 목이 말랐던 것일까?’,

‘아니면 엄마아빠가 설악산을 오를 때 계곡물을 마시고,

그 물로 밥도 지어먹었다는 말에 힘을 받은 걸까?’

그 대답은 저만 알겠지?


비룡폭포까지 500m가 남았다는데 무릎상태가 좋지 않다.

하지만 멈추기에는 그야말로 고지가 너무 가깝다.

그래 비룡폭포까지 갔는데 흔들바위를 보았을 때와 똑같은 감정이 든다.

그래도 한 손으로 폭포를 받는 모습을 연출한다.

다향이는 아예 폭포수를 입으로 마시는 모습을 연출하고.

잠시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가 하산한다.


무릎이 말썽이다. 내리막길의 계단, 그것도 바위라면 고통의 강도가 훨씬 더 커진다.

난간이 있는 곳에선 두 팔로 의지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더 힘들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다향이의 의견을 묻는다. 아빠의 선배를 만날 것인지?

아니면 속초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 것인지? 그냥 안동으로 가잔다.


“왜?” 까닭을 물으니 아저씨들끼리 술 먹고 이야기하면 자신이 심심하고,

빨리 가서 권정생선생님이 사시던 곳을 보고 싶단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하고 엄마를 보러가잔다.

(이건 엄마걱정을 하는 아빠의 말을 듣고 얘기한 것이리라)

그래 안동까지 4시간이 걸릴 텐데 견딜 수 있을지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 4시간을 달려서 - 물론 고속도로휴게실에서 간단하게 요기도 했고 -

안동에 도착한 게 9시. 숙소를 정하는데 30분이 걸렸다.

서안동 톨게이트에서 가르쳐준 숙소들이 노골적인 러브호텔인지라

다향이랑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 10여분 더 이동해서 허름한 모텔에 짐을 푼다.














<다향>

아빠랑 흔들바위를 보러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열심히 산을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딱딱 소리가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사진을 찍었다.

좀 더 자세히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푸드덕 날아갔다.


산을 올라가는데 땀이 줄줄 흘렀다.

마침내 흔들바위에 도착했다. 흔들바위를 있는 힘껏 밀었다.

그런데 흔들리기는커녕 꼼짝도 안했다.

이건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

흔들바위가 아니라 꼼짝바위다.

아빠하고 어떤 아저씨하고 나하고 같이 밀어봤지만 약간 움직이기만 했다.


나는 손가락 하나로 툭 치면 흔들흔들 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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