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아빠>
아홉시가 다 되어 일어난다.
다향이도 모처럼 웃음 띤 얼굴로 일어나더니만 방귀를 ‘뽕’ 뀐다.
가슴가리개를 하면서도 하는 짓은 영락없이 어린아이다.
날이 흐리다. 팬티를 만져보니 보송보송 잘 말랐다.
양말은 아직. 바깥 빨래 줄에 넌 것도 예상대로 마르지 않았다.
해가 드는 자동차 안에 양말을 펼쳐놓고, 런닝은 옷걸이에 널어놓는다.
누리엄마가 넣어준 사과를 하나씩 먹고, 밖으로 나온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2,000원, 장애인도 3급까지만 혜택이 있단다.
다향이랑 4,000원을 받는다.
빈자리가 두 곳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인지 다향이가 앉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흔들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백담사로 간다.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에서부터 100번째 못자리에 터를 잡았다는 백담사.
옛 생각이 난다. 처음 설악산에 오른 건 대학시절이었다.
후배(이번 여행길에 천안에서 신세진 유리아빠)와 함께였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서 용대리에 내렸다.
그리고 7-8Km를 걸어 도착한 백담 산장에서 밥을 지어먹고, 별을 헤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그림 같은 숲길을 지나 소청산장에서 머물고 대청봉까지 갔었지.
그리고 설악의 비경이라는 공룡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정희씨의 휴가에 맞춰서 대청봉에 오른 게 두 번째다.
13년 전의 일로 그때는 용대리와 백담사를 오가는 왕복버스가 있었다.
역시 백담 산장에서 잠을 자고 출발했는데 봉정암에서부터 비를 맞았다.
부랴부랴 비옷을 꺼내 입고, 질척이는 등산화를 바삐 놀려다.
그리고 중청 산장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비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산장에서 묵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색약수터로 하산했었지. 그때 묵었던 호텔이름이 그린야드.
뭐, 이름뿐인 호텔이었지만 지친 정희씨에게 좋은 숙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오색약수터로 가는 산책로에서 파는 졸깃졸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절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꼬불꼬불한 길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도착한 백담사.
예전과는 달리 절집의 규모가 상당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전두환씨가 묵었던 곳을 제일 관심 깊게 구경한다.
만해 한용운과 전두환.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 한 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대웅전에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 소리가 흘러나온다.
보통의 독경이나 염불(같은 말인지도 모르겠지만)과는 달리 관세음보살만 찾는다.
만해기념관엘 들러서 시 ‘님의 침묵’ 저자로만 알던 한용운님의 초상화를 접한다.
꼬장꼬장한 유학자의 모습? 다산선생의 사의재가 따오를 만큼 준엄한 얼굴이다.
절집에서 운영하는 다원에서 차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만해선생의 뜻을 새기고 싶어서 좌정한다.
한 시간여 동안 차를 마시고 나와 백담계곡에서 다향이랑 물수제비를 뜬다.
그리고 짧은 산행. 무릎상태가 나빠서 조금만 걷기로 한다.
우거진 숲길에 바람소리. 툭, 소리가 나고 뒤질세라 바스락거리는 주인공.
다람쥐를 줍는 다람쥐가 지천이다.
겨울준비를 한다. ‘난 무얼 준비하지?’ 공연한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기암절벽, 시퍼렇게 투명한 계곡물, 왜 속세에 머무는가 싶다.
산행을 하다보면 “안녕하십니까?” 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
먼저 해본 적은 없고, 겨우 대답만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하고 묻는다.
내가 먼저 물으니 마음도 좋고, 대답을 들으니 더욱 반갑다.
한 시간쯤 올라가서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이것저것 보지 않고,
부리나케 올라가서 내가 얼마나 빨리 올라왔는지 자랑하는 사람과
굳이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
지금은 후자에 가깝지만 젊은 날에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중도에서 포기해야만 하다니.
참 아쉽다. 이번 겨울에 열심히 재활훈련을 해서
정희씨가 가장 좋아하는 설악산을 내년엔 셋이 오르고 싶다.
함께 걷고, 밥도 먹고, 손도 잡아주면서 봉정암에도 오르고 소청과 중청을 지나
대청봉까지 가보고 싶다. 씁쓸한 마음으로 한 시간 만에 하산을 한다.
누간가 그랬지.
미련이 남아야 다음에 또 온다고, 그 말을 가슴에 새긴다.
‘백담 탐방안내소.’ 예전엔 백담 산장이었는데 이제는 탐방안내소로 사용되어진다.
10여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태어난 집이 사라졌듯이 정희씨와의 추억이 깃든 곳, 한 곳이 또 사라졌다.
오후 3시쯤, 용대리로 돌아오는 버스 안. 다향이 낯빛이 무겁다.
“다향아, 왜 기분이 안 좋아?” 하고 물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단다.
“다향아, 배고파?” 물으니 “아니, 별로.” 한다.
어제아침에 횡성에서 밥을 먹고,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다.
점심엔 막국수를 먹었고, 저녁엔 부꾸미로 대신했다.
오늘아침엔 사과 한 알,
두어 시간 뒤엔 맥반석계란 두 알씩과 초콜릿 자유시간. 나도 허전하다.
용대리에 내려서 식당 ‘산사가든’으로 들어간다.
무언가 맛있고, 영양가 있는 걸 먹어야겠다 싶어서 더덕구이를 주문한다.
몇 가지의 나물과 김치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맛있다.
‘배가 많이 고프니까 밥을 넉넉하게 주세요.’ 했더니 아예 밥을 두 공기씩 내준다.
1인당 일 만원하는 더덕구이의 양이 넉넉하다.
중국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맛이 좋다.
국으로 내준 황태국도 더할 나위 없다.
배를 두드리며 밥 두 공기를 싹싹 비운다.
그리고 “전라도음식만 맛있는 줄 알았더니 강원도도 훌륭합니다.” 인사한다.
다향이도 밥 두 공기를 아낌없이 비운다.
다향이가 밥을 두 그릇 먹는 건 처음 본다.
늦은 점심밥을 먹고 케이블카가 있는 설악동으로 향한다.
미시령을 넘어가는데 울산바위가 보인다.
잠시 주차해놓고, 다향이가 망원경을 통해서 울산바위를 구경한다.
그 전망대의 ‘진혜련설악떡.’ 건장한 남자가 떡을 친다.
찰지 게 쳐진 떡을 자르고, 콩고물을 묻히는 건 아낙의 몫.
한 팩에 삼천 원. 하나 먹어보니 기가 막히다.
‘배만 부르지 않았으면….’
미시령터널을 벗어나는데 3,000원의 통행료를 받는다.
1,000원 쯤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비싸다.
민자유치의 폐혜라는 생각이 든다.
설악동으로 가는데 등장하는 표지판, ‘대조영촬영지.’
다향이가 차를 돌리라고 한다.
그래 들린 대조영세트장에서 총총 뛰는 다향이.
열 발에 3,000원 하는 활까지 쏜다.
드디어 도착한 설악동. 강릉 사는 선배에게 전화하니 득달같이 달려온다.
‘그냥 인사나 하려던 것인데 공연히 전화했나?’ 민망하다.
파전을 안주삼아 선배와 동동주를 마신다.
늘 삶을 고민하며 멋지게 사는 선배로부터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소중한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동호가 자살을 했단다.
11시가 넘어 선배는 돌아가고, 다향이는 코를 곤다.
내일은 울산바위와 비룡폭포엘 다녀올 생각이다.
선배의 지인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내일 저녁이 기대된다.
<다향>
아빠랑 느릿느릿 경치를 즐기면서 백담계곡을 올라가는데
길 가운데에서 뭔가가 꿈틀꿈틀 움직였다.
놀라서 자세의 보니 살모사였다.
살모사가 꿈틀거리면서 자기 굴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살모사한테 물릴까봐 옆으로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살모사 동영상도 찍었다.
설악산에는 다람쥐가 엄청 많았다.
다람쥐 때문에 깜짝깜짝 놀래기도 했다.
다람쥐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운 좋게도 다람쥐가 도토리를 들고 있는 장면을 찍었다.
다람쥐가 하도 많아서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다.
‘다람쥐가 이렇게 많은데 한마리쯤은 가져가도 되겠지’
다람쥐에게 나무집을 만들어 주고, 옷도, 모자도, 잠바도, 팬티도
몽땅 만들어 주면 다람쥐가 좋아하겠지.
아참 신발이랑 양말도 만들어 주고,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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