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아빠>
지난밤에 누리엄마랑 맥주를 마셨다. 고등학교교사로 매우 바쁜 삶을 산다.
직장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주부 일까지 한다.
그것만 해도 버거울 텐데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으며 곧 시험이란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이해가 된단다.
누리아빠도 함께 했으면 좋을 텐데 이틀저녁만 잠깐씩 얼굴을 봤다.
강의와 세미나, 글쓰기, 시민단체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했다가 새벽 대여섯 시면 집을 나선다.
‘한 사람이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초인적인 활동이 답이다.
눈을 뜨니 누리랑 누리엄마가 없다. 누리아빠는 또 세미나에 참석중이다.
주인은 없고, 객만 남아있다. 다향이는 한밤중이고. 스트레칭을 하고, 세수를 한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책상에 앉아 카페에 글과 사진을 올린다.
일을 마무리하고 컴퓨터를 끄는데 누리엄마가 들어온다.
제주에서 2년 동안 산 누리가 매달 곶자왈작은학교에 다닌다. 그
날이 오늘이고, 누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오는 것이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다향이가 옷을 입고 나온다.
집에서는 속옷 바람으로 불쑥 나타나는데 밖에서는 꼭 옷을 꿰입고 나온다.
마냥 어린애는 아닌 모양이다.
오늘의 일정은 분당아름다운가게에 들러서 긴팔셔츠와 가을 잠바를 구입하는 것이다.
강원도에 도착하면 쌀쌀할 텐데 지난밤엔 비까지 내렸다.
그 얘기를 들은 누리엄마가 누리아빠가 입지 않는 옷이라며 긴팔 옷이랑 잠바를 내준다.
감사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침식사 후 떠날 준비를 하는데 사과랑 포도를 씻어서 챙겨준다.
누리를 데려다주고 공항에서 산거라면서 도넛도 다향이 손에 쥐어준다.
살림을 하면서 이웃의 주부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친정에 가서 며칠 동안 손끝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푹 수고 왔다’ 거나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쌀을 비롯한 먹을거리를 부쳐왔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
누리엄마의 마음씀씀이가 내게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감사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진다.
지난해처럼 걷고, 버스로 이동을 했다면 불편했겠지만 자동차가 있으니
도리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토요일이라 길이 막히겠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다향이랑 얘기를 하면서 천천히 가리라 생각한다.
비가 내려서 조금 나을 줄 알았는데 정체가 심하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느라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조수석에서 앉아서 재잘대던 다향이가 지루해한다.
하품을 한참 하더니만 뒷좌석으로 넘어가서 눕는다.
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한 해 뒤척인다. 4년 만에 겪는 교통체증.
(도시로 올라와서) ‘또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끝말잇기를 한다. 이리저리 전파를 잡아서 라디오방송도 듣는다.
과천을 출발한지 두 시간 만에 겨우 양지IC를 지난다. 휴! 한숨이 나온다.
지루하면 책을 꺼내 읽던 다향이가 몸만 이리저리 뒤척인다.
덕산휴계소에서 잠시 쉰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커피를 마시고, 다향이는 도넛을 한 개 꺼내먹는다.
9시 40분에 과천을 출발해서 횡성읍에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
꼬박 네 시간이 걸렸다.
횡성읍에서 삼겹살과 상추, 소주 두 병을 사가지고 병지방의 금계나라로 들어간다.
십 수 년 째 찾는 곳이다,
젊은 날에 살고 싶었지만 가진 게 없어서 포기한 곳.
세월이 흘러 제주에 머무르고 있지만 아직도 땅 한 평 갖지 못하다니….
병지방도 많이 변했다. 비포장도로는 사라졌지만 투명한 개울물은 여전하다.
여전히 선하신 주인부부와 삼겹살을 구워 저녁을 먹는다.
제주올레이사장인 서명숙씨가 아침마당에 출연했다더니 가는 곳마다 올레이야기다.
제주올레의 설립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점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 가는데, 서이사장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불을 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불빛 한 점 없다.
내가 금계나라를 좋아하는 이유. 이런 곳에 거처를 마련하면 좋을 텐데….
병지방계곡을 감싸 안은 어답산
<다향>
아빠랑 누리언니네 집을 떠나 강원도로 가려고 할 때
누리언니네 아줌마가 공항에서 사온 도넛이랑 포도랑 사과를 주셨다.
왜 도넛을 공항에서 사왔냐면 누리언니가 오늘 제주도로 가기 때문이다.
누리언니는 제주도에 있는 곶자왈 학교에 다닌다.
그래서 음식을 가지고 누리언니네 집을 나섰다.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엄청 막혔다.
조금가다 멈추고 조금가다 멈추고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이러다 날 다 새겠다.’ 2
시간쯤이면 충분히 올수 있었는데 차가 막히는 바람에 무려 4시간이 걸려서
병지방 금계나라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올 때 속은 답답하고,
비가 와서 후덥지근하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차에서 내릴 때 기분이 하늘높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보통 때는 걸어 다니기가 싫었는데 이렇게 지겹도록 차를 타니까
기분이 완전 짱이었다.






> 


최신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