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11.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09-09-22 10:06

조회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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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아빠>

수분님이 오시지 않는다.

그제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어제는 새벽 1시께에 돌아갔으니

많이 피곤할 것이다.

‘기원이가 일어나지 못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간다.

다향이도 9시가 다 되어서 겨우 일어났다.

집에서는 대부분 10시 전에 자고,

아침이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일어나는데.


9시 30분이 되어도, 10시가 넘어도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낮에 제가 있다고 보살님들은 전을 부치고, 나물을 만드느라 분주한데

어디 앉아있을 곳이 어디 앉아있을 곳이 없다.

전화를 해보지만 받지 않는다. ‘어쩌지? 그냥 가야되나?

약속을 하지 않았으면(지난해와는 달리 자동차가 있으니)

동학사와 천장스님이 주지로 계셨다는 갑사라도 가볼걸.’


스님이랑 사과와 배를 닦는데 수분님의 전화가 온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했는데 한 시간만 더 일하면 될 것 같으니

미술관 쪽으로 와달란다. 늦었지만 기대가 된다.

대전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유성구 학하리에서 그릇을 빚는

이창민선배님을 만나기로 했단다.

그리고 저녁에는 쌍계사도 구경시켜주고.

‘역시 현지인의 가이드만큼 훌륭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분님이 작품을 출고시키느라 정신이 없단다.

그러면서 다향이한테 묻는다.

수목원을 구경하며 기다릴지, 아니면 일하는 걸 구경하면서 도와줄지(?)

다향이가 미술관 안에 있겠다고 한다.

작품 몇 개를 아크릴 통 안에 담고, 작품명과 소재,

작가를 소개하느라 붙여놓은 판을 떼 낸다.

그리고 판을 붙였던 양면테이프를 떼 낸다.


작품 출고작업을 돕는 다향이.


대전시내의 어린이미술관에서 큐레이터놀이하는 다향이.



양면 테이프를 긁어내서 만든 모형.




같은 일을 한 시간 넘게 하니 지루해진다.

그래 긁어낸 테이프조각으로 모양을 만든다.

다향이도 따라서 만든다.

그래도 지루해져서 미술관 2층에 있는 카페로 간다.

다향이는 구슬아이스크림, 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안면도는 결혼 뒤 첫 휴가지로 잡은 곳이다.

그런데 안면도로 들어가는 제방에서 어린아이를 치고 말았다.

훤한 대낮이었고, 과속도 아니었으며 건널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크게 다쳤다.

뇌가 부풀어 오르는데 72시간 안에 사망하면 무조건 구속이라고 했다)


수분님이 오면 아쉽지만 작별인사를 하고, 안면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그 아이와 나의 인연이 무엇인지?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이가 잘 자라주었는지?’를

확인하고, 풀 것은 풀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 카페주인에게 길을 묻는데 수분님이 온다.

그냥 가면 섭섭할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수분님을 따라 구 대전시가지로 간다.


50년 전에 센베과자로 시작해서 일가를 이루었다는 성심당과

그곳에서 만들어 운영한다는 레스토랑 플라잉 팬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수분님은 해물탕, 기원이는 햄버거스테이크, 다향이는 양고기 찹스테이크,

난 좋아하는 마늘소스 크림스파게티를 먹는다.


 


50년 전통의 성심당.







아! 그리고 화덕에서 구워낸 담백한 피자를 먹었다.

각자의 음식을 조금씩 덜어내서 맛을 본다. 모두 맛있다.

수분님이 추천할 만하다. 가격도 저렴하다.

최고의 재료로 양심적인 가격을 책정한다는 주인장의 철학이 잘 반영된 것 같다.

다음엔 정희씨랑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있는데 함께 하고 싶은 곳이 꽤 여럿 생겼다.

선암사와 그 앞의 순천야생차체험관, 담양의 소쇄원, 대전의 성심당과 플라잉 팬.

정희씨가 직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만 한다면 함께 다니고 싶은 곳이 많다.

영화 ‘가을로’에 나온 김지수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분님의 전화에 불이 난다.

식당에 도착하기 전부터 울리기 시작해서 식사하는 내내,

근처의 어린이미술체험관에서도 울린다. 결국 수분님이 두 손을 든다.

일정을 취소하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기원이한테 수목원구경을 부탁하고 일하러 들어간다.

마음이 있어도 조건이 허락하지 않으니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도 두 녀석이 잘 논다. 카트도 타고, 애완용생쥐도 보고,

분수 속으로 들어가서 더위 식히는 언니들도 본다.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타고는 수분님 직장근처로 옮긴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가을 하늘이 아름답다.

셋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데 슬며시 수분님이 끼어든다.

쌍계사를 구경시켜주고 싶어 한다.


그래 쌍계사엘 가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1시간 30분이나 걸린 것 같다.

기원이가 잠들어 머리를 다향이 어깨에 기댄다.

어깨가 아프다면서 동생을 위해 끝까지 견뎌내는 모습이 대견하다.

한밤중에 도착한 쌍계사. 보살님이 차려준 늦은 공양을 하고, 법현스님을 뵌다.


커피 마니아라는 스님이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려준다.

향과 맛이 뛰어난 에스프레소다.

천년고찰에서 한밤중에 마시는 커피.

사찰이라면 으레 차만 떠올리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길을 되짚어온다.


이번엔 다향이가 잠을 잔다. 관음정사에 도착하니 자정.

잠결에도 깨어나 씻고 잠드는 다향이, 그 옆에 무거운 몸을 눕힌다.

온종일 일에 시달리고 장거리운행을 한 수분님이 염려된다.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뒤엉킨다.




 

<다향>

아빠랑 대전시립미술관 옆에 있는 대덕공원에 갔다.

걸어가고 있는데 누가 카트를 타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조금 더 가니까 카트를 빌려주는 가게가 있었다.


아빠가 기원이한테 물었다.

“기원아, 저 카트 얼마인줄 알아?” 그랬더니 기원이가 “천원이요” 하고 말했다.

그래서 카트가게로 갔다. 아빠가 “카트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오빠가 8천원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억’ 하고 놀랬다. 그러면서 “다향아, 너무 비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내 돈으로 낼게. 그럼 기원이는 어떡할까?”

“그건 아빠가 낼게”그래서나와 기원이는 카트를 탔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기원이가 누군지 말을 안 했네.’

기원이는 대전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일하는 송미경아줌마의 아들이다.

자, 이제 기원이의 소개가 끝났으니 다시 카트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카트를 타는데 기원이가 뒤에서 쫓아오면서 자꾸 박았다.

그래서 화가 나서 후진을 했다가 재빨리 쫓아갔다.

귀퉁이에서 나도 박아 버렸다.

그랬더니 지원이가 울먹이면서 자기는 후진이 안 된다고, 어떻게 빠져 나가냐고

나 한테 따졌다.

그래서 기원이의 카트를 타서 운전했더니 후진이 잘만 됐다.


그래서 내가 지원이한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나는 지금 한번 박았고 너는 7번도 더 박았잖아? ’

너는 그렇게 많이 박았으면서 한번 밖에 박지 않은 나한테 뭐라 그러면 어떡해?”

그 일은 지원이가 그냥 카트를 타고 나가는 걸로 그냥 넘어갔다.


이제 카트를 타고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한참 타고 카트를 가게에 갖다 줬다.

그런 다음에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로 걸어가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화분 밑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화분 밑을 봤다. 같은 시각, 기원이는 분수로 갔다.

그 화분 밑에는 애완용 쥐가 있었다. 모두 3마리였다.

그때 나는 카메라가 아빠한테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못 찍었다.

하지만 나중에 찍었다.


카트를 타고, 쥐를 보고, 놀이터에서 노는데 아줌마가 왔다.

아줌마가 우리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아줌마차를 타고 레스토랑에 갔다.

기원이는 햄버거 스테이크, 나는 양고기 찹스테이크, 아빠는 마늘크림스파게티,

아줌마는 해물탕면, 이탈리아식으로 화덕에서 구운 피자를 맛있게 나눠먹었다.


찹스테이크 한 쪽에 작은 종지가 있었다. 푸르스름한 푸딩이 있었다.

맛을 보니까 치약 맛이었다. 서로 조금씩 맛보았는데,

아줌마랑 나는 맛이 없다 하고, 기원이랑 아빠는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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