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아빠>
개학을 맞은 다영이, 다경이 목소리에 눈을 뜨니 7시 40분.
그제부터 누적된 피로의 양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방 안에 있는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 낮에 빨아 놓은 옷가지를 만져보니 눅눅하다.
어제는 찌푸린 채 간간이 빗방울이 내리더니만 언제 그랬냐 싶게
햇살이 눈부시다.
잠깐이라도 해를 보면 낫지 싶어서 처마 밑의 빨래를 걷는다.
걷은 빨래를 옥상 빨래 줄에 다시 넌다.
보송보송 마르기를 바라면서.
어제 밤에 쓰지 못한 일기를 쓰는데 다향이가 일어난다.
“다향아, 아이들 학교 간대.” 했더니 비틀비틀 잠결에 옷을 꿰입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아쉬운 작별.
다영이도 그랬는지, 정을 떼려고 하는 것인지 별 내색 없이 학교로
달음박질친다. 외로운 아이들.
다향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다영이도 전교생이 24명인 분교에 다닌다.
다경이도, 다영이도 동급생이 둘 뿐이니 어찌 외롭지 않겠는가?
모처럼 고기를, 그것도 늦은 시간에 먹어서인지 속이 더부룩하다.
다영엄마가 밥을 먹겠냐고 물었지만 사양하고 떠난다. 담양으로 향한다.
말로만 듣던 소쇄원과 1박 2일에 소개되었던 죽림원,
메세타콰이아거리가 궁금하다.
선암사 앞을 떠나 죽산분교장을 지나 승주읍을 지나는데 장터가 열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차를 세운다.
다니면서 한 움큼이 된 동전을 다향이한테 권하니 눈이 동그래진다.
“마음대로 써봐” 했더니 입이 귓가에 걸린다.
신이 나서 앞장을 서는 다향이,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고구마줄기의 껍질을 까는 할머니, 칼이며 호미를 파는 아저씨,
예초기를 수리했는지 서너 명이 둘러서서 시험하는 아저씨들, 풀빵장수….
‘무얼 살까?’ 고민하던 다향이가 사과 세알을 천원에 산다.
그리고는 장터 초입에 있던 튀김가게로 조르르 달려간다.
튀김 세 개에 천원, 고추튀김은 두 개에 천원.
다향이는 백 원짜리 동전 10개를 내밀고 튀김을 먹는다.
별 생각 없던 나도 회가 동해서 일천 원을 내고 고추튀김 두 개를 먹는다.
그렇게 3,000원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떠난다.
사과 두 알을 1,000원에 샀는데 덤으로 얹어 준 사과가 신기한 다향이.
튀김집에서.
달리고 달려서 메세타콰이아거리를 지나는데 티비에서 너무 자주 보아서인지,
아니면 교래곶자왈 길을 자주 다녀서인지 빈약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자연환경하나는 제주가 빠지지 않는다는 생각.
소쇄원주차장에 자동차를 넣으니 주차비를 받는다.
복지카드를 내밀어도 선심 쓰듯이 일천 원만 내라고 한다.
비싸지는 않지만 소쇄원에서도 입장료를 받는다.
소쇄원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가득하다.
빽빽이 늘어선 죽림이 담양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집주인의 거처인 000, 사랑채인 000, 다리 폭포,
연못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루턱에도 앉아보고,
실내에도 앉아보니 어쩜 그리 멋스러운지!
‘그래, 이런 게 집이야. 큰 집이, 넓은 아파트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집에 대한 개념이 통째로 바뀌는 것 같다.
소쇄원 가까이에 가사문학관과 00정원이 있다.
‘그곳을 둘러본 다음에 죽림원으로 갈까? 그냥 죽림원으로 갈까?’
생각하는데 퍼뜩 떠오르는 스님이 있다.
옛 후배로 지금은 승복을 입고 있다.
그 후배의 고향이 담양이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전화하니 송광사란다.
‘이런 젠장! 아침에 승주를 떠나왔는데 다시 승주로 오라니.
도대체 왜 이리 순천을 떠나기가 힘든 거지?’ 얼굴 본지 벌써 6년.
힘들지만 다시 길을 되짚어 스님이 된 후배를 찾아 나선다.
송광사 앞에서 전화를 하니 순천에 있는 송광사가 아니라 완주에 있는
송광사에 있다고, 완주라 했는데 왜 순천으로 갔냐고 반문을 한다.
에고고! 다시 길을 떠난다. 왜 완주라는 말을 듣지 못했을까?
인생이 그렇듯이 여행길도 알 수가 없다.
오늘 아침만 해도 담양을 구경한 다음에 내장산 기슭에서 머물 생각이었다.
또 실상사에 들러서 지난해에 뵌 법인스님께 인사도 올리고,
이원규시인과 막걸리라도 한잔 하려고 했는데,
맛의 고장인 남원과 전주를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스님이 된 후배와 나와의 인연은 무엇일까?
나는 왜 예정된 길을 취소하고 250km나 되는 길을 가고 있는가?
딱히 만나야할 이유도 없는데….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세 시간 길을 달려간다.
다향이가 많이 힘들어한다. 당연하지!
운전하는 나도 어깨가 뻐근해지고, 잠이 쏟아지는데.
잠을 청하던 다향이가 동화책을 꺼내 읽는다.
17번국도 남원을 지나기에 묻는다.
“다향아, 우리 광한루에 잠깐 들렀다 갈까?”
“아니, 광한루는 싫고, 팥칼국수 먹고 싶은데”
지난해 남원에서 먹은 팥칼국수가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래 잠시 쉴 겸해서 오후 3시에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얼굴이 좋아 보인다.
배려해준 방 안에서 잠시 얘기를 한다.
알듯 모를 듯한 얘기를 한참 하더니만 겉돌지 말고, 치열하게 살란다.
‘겉돈다?’ 만나자마자 숙제 하나를 던지는 고약한 놈.
저녁공양을 마치고 짐을 푸는데 산책을 나가잔다.
그래 슬슬 걸을 줄 알았더니 차에 올라탄다.
“선방에서 차를 마시면 좋겠지만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방해가 되고,
(절 입구의) 백련다원에서 마시면 좋겠지만….”
차를 타고 5분 남짓 달렸을까?
아주 멋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드는 카페 O's GALLERY가 나온다.
일반인으로서는 소장하기 힘든 고급오디오가 있다.
스님이 거기에 CD를 밀어 넣는다.
흐르는 음악을 들으니 ‘이래서 고가를 지불하는구나?’ 싶다.
다시 얘기를 주고받는다. 20년 전에도 그랬지만 얘기가 겉돈다.
스님들은, 본인을 포함해서 한번 죽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본인은 머리털이 있을 때와 자른 다음의 의식이 엄청 달라졌다지만
내 보기에는 변한 게 없다.
변한 게 있다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다는 것 정도.
6년 전, 민머리에 승복을 걸치고 나타났을 때 당부 -
이왕에 스님이 되었으니 머리로만 깨닫지 말고 몸으로 깨닫기를 바란다. -
한 얘길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 ‘가장 소중한 지적을 해줬다’고, ‘고맙다’고 말했던 후배인데….
<다향>
다영이네 집을 떠나 담양으로 가던 중에 죽산초등학교 근처에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장터 이름은 승주오일장이었다. 호기심으로 장터에 들렀다.
차에서 내릴 때 아빠가 동전을 한주먹 주었다.
동전을 세어보니 오백 원짜리 두 개, 백 원짜리 열 개, 오십 원짜리 한 개였다.
오백 원 두개는 사과를 샀다. 천원에 사과 두 개를 주셨다.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길을 물어보는 동안 할머니가 조그만 사과를 한 개 더 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나머지 동전은 튀김을 사먹었다.(오십 원은 빼고)
튀김은 세 개에 천원이랬다.
그래서 고구마 튀김하나, 샌드위치를 세모모양으로 잘라 빵에 설탕을 뿌린 것 하나,
오징어튀김 하나를 샀다. 그런데 오징어튀김을 서비스로 하나 더 줬다.
나머지 오십 원은 아빠를 줬다.
담양 메세타콰이아거리.
대나무 통을 이용한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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