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한 3주간의 여행 4.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09-09-21 07:32

조회수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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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면 끔찍한 하루였다.


어젯밤에 동동주를 마신 관계로 일기만 썼을 뿐 사진정리를 해놓지 못했다.

[8월 29일]


<아빠>

눈을 뜨니 새벽 6시. 평소보다 늦게 잠든 다향이는 한밤중이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노트북에 저장한 사진정리를 한다.


‘오늘은 어디로 움직이지? 순천왜군성과 하동의 화개장터,

그리고 쌍계사와 소설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에 들려볼까?

자동차를 타는 것도 힘든 일이니 그냥 진주까지 내쳐 달릴까?’

전남에서 사흘 묵었으니 경상남도로 움직여보고 싶다.


여수도, 마산도 가보고는 싶지만 늘 접하는 바닷가인지라 흥미가 덜하다.

그래 ‘그냥 진주성이나 보러갈까?’ 싶기도 하지만 산청의 약초박물관이랑

간디학교에도 가보고 싶다.

하지만 혼자서는 결정할 수가 없다.

동행자인 다향이의 의견도 물어봐야지?


이제나저제나 뒤척이는데 다향이가 꿈틀댄다.

“이제 씻고 출발할까?” 물으니 “조금만 있다가” 하고는 다영이 방으로 건너간다.

만나자마자 잘 어울려 논만큼 헤어지기가 섭섭할 것 같다.

그래 메모지에 다향이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서 다영이한테 건넨다.


주섬주섬 짐을 싸는데 세 아이가 논다.

하지만 만나면 헤어지고, 또 만나는 법.

다향이를 잡아끄는데 죄를 짓는 기분이다.

그래 “다향아, 하루 더 머물다 갈까?” 물으니 너무나 기다렸다는 듯이

“응, 좋아.” 한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돼있고, 시간이 늘어질수록 여행경비가 늘어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출발한다.



출발 전에 그렇게 ‘안녕’을 외치고도 기분이 시무룩해 보인다.

순천왜성엘 들릴지, 아니면 그냥 진주로 갈지를 물으니 왜성에 가잔다.

옆자리에 앉아(이번 여행에서 처음 허락함) 관광지도를 펴들고 길을 알려준다.


 

왜성! 수세에 몰리던 왜군이 반격을 하기 위해서 만들었단다.

바닷물을 끌어당겨 해자를 만들고,

1문지, 2문지 등으로 견고하게 쌓았다는 성.

국내에서도 일본성을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고나니

세월의 무상함에 헛헛해진다.


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다향이도 허기진 걸까? 배가 고프단다.

그래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광양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남해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그리고 닿은 곳이 섬진강휴게소.

관광안내소에 문의하니 화개장터에 가봐야 특산물이나 파는 정도란다.


하동에서 빠져나가 남해를 한 바퀴 돌고, 고성의 공룡박물관과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을 구경하는 게 좋겠단다.

남해의 다랭이마을이나 죽방렴엔 관심이 가면서도 바다는 피하고 싶다.

다향이도 동의한다. 다른 코스를 물었더니 청학동과 삼성궁.

두 곳을 구경한 다음에 산청으로 해서 진주로 가면 충분하단다.


청학동이 뭐냐는 다향이한테 옛사람들의 생활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라고 말해준다. 그랬더니 흥미가 당기는지 이것저것 질문이 많아진다.

옷은? 집은? 그럼 공부는 어떻게? 등등.

기대감으로 지루한 자동차여행을 견뎌낸다.

가는 도중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나도 피곤하고 지루하다.


섬진강휴게소부터 한 시간을 더 달려서 도착한 청학동.

도대체 어디가 청학동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두 아이가 지나가기에 청학동을 물었더니 ‘여기가 청학동입니다’ 한다.

옛 집에서 옛 의관을 갖추고 사는 곳이라 여겼기에 뜨악해지고 만다.

작은 부락마다 식당과 민박집간판이 내걸려있다.


‘이런 곳이 청학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빠, 이게 뭐야?”

다향이도 불만을 토로한다. 그때 부산에서 온 가족을 만났다.

김OO훈장이 운영하는 서당구경을 간다기에 얼른 따라나섰는데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커다란 시멘트건물에 땅바닥까지 온통 시멘트 칠이다.

단체로 묶는 곳으로 여겨지는 숙소는 흡사 사이비종교단체의 시설 같다.


부산에서 온 분들이 삼성궁은 그래도 나으니까 구경해보란다.

그렇게 올라갔더니 청학동마을보다 낫긴 한 것 같다.

얼른 진주성을 보러가고 싶다.

낙안읍성과 성곽만 남아있는 것이지만 왜성까지 보았으니 진주성과 비교해보고 싶다.

그래 진주로 향하는데 그 길도 엄청나게 멀다.



인상적인 태극문양의 연못.



삼성궁을 만든 분이 3년 동안 생활하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개천혈.




개천혈의 지붕에 이끼가 그려낸 부처상




섬진강휴게소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분이

‘아이를 고려하지 않고, 안내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진주로 이동하는 중에 다향이가 잠을 잔다.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피곤하다는 얘기다.

진주성에 도착했는데 운 좋게 수문장교대식을 한다.

복식까지 갖추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는 못했다.


진주성 안의 박물관을 보고, 촉석루에 오르니 그 절경이

영남제일의 것이라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한루를 호남제일이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진주성에서 입장료를 받는데, 성 밖의 주차장에서도 주차비를 받는다.

심기가 불편해진다.


주차비를 지불하고 나오는데 한참을 헤맸다.

박물관에서 소개받은 진주냉면을 먹으러 가려면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좌회전이 안 된다.

그래 우회전을 했다가 냉면집에 도착하기까지 40분이나 걸렸다.

진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집에서 진주를 대표하는 냉면과 비빔밥을 먹었다.

시장 통의 허름한 가게에 손님들이 미어터진다.

 

맛있게 먹고 나오기는 했는데 숙소를 잡느라 또 30분을 까먹었다.

주차공간은 적고, 일방통행도 많고, 길을 몰라 잠시 주춤거리면 뒤에서

사정없이 클랙션을 울려대고…. 정말 끔찍하기만 하다.

진주성과 남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묵고 싶었지만

여인숙수준의 모텔에 앉아 있다.


‘내일은 어떻게 할까?’ 김해(봉하마을)를 거쳐서 부산으로 들어갈까 생각했는데

일정을 바꿔야할 것 같다.

다향이한테 故노무현대통령과 해운대, 태종대, 자갈치시장이 의미를 갖긴 어렵다.

나도 이미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다시 선암사 앞으로 돌아가야겠다.

‘마음이 맞는 동무와 계곡에서 노는 것만큼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싶다.

다향이랑 동갑내기인 다영이도 전교생이 스물넷뿐인 분교에 다닌다니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다영이네 집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러야겠다.



 

<다향>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배가 고파서 섬진강휴게소에 들렀다.

메뉴를 보니 맛있는 것이 많아 보였다.

난 치즈돈가스를 아빠는 ‘재첩 매실 비빔밥’을 시키려고 계산대에 갔다.

아빠가 ‘재첩 하나랑 치즈돈가스 하나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드디어 나온 메뉴를 보니 재첩 비빔밥이 아니라 재첩국이었다.

가서 메뉴판을 다시 보니까 재첩비빔밥도 있는데 재첩국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재첩국을 먹었다.

아빠 것도 한 번 먹어봤는데 내 치즈돈가스가 훨씬 더 맛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조금 재밌었다.


* 아빠생각 : 고속도로휴게소에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아 원 참!

             제주도로 내려가기 전엔 남부럽지 않게 휴게소음식도 먹었건만

             어째 예닐곱 살 때의 일도 기억을 못한담.








안경과 안경집.






진주성에서 만난 언니랑. 전국을 돌 수 있는 기차표 한장으로 여행중이라고,

다향이도 조금 더 자라면 혼자 여행해보라고 격려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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