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아빠>
“아빠. 집에서는 자라고 하면 싫은데 여행 와서 잘 때는 행복해.”
피곤한 말의 표현일 것이다. 제 말만큼이나 잘 자고 일어났다.
8시. 강진버스터미널근처의 보금자리모텔을 나서 근처의 강진군청으로 간다.
관광안내도를 받아드니 군청 옆에 영랑선생의 생가. 시, ‘모란꽃피기까지를’
떠올리면서 생가를 찾았으나 시간이 이른 탓인지 문이 닫혀있다.
영랑생가.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어서...
다산 정약용선생님께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사의재’를 찾는다.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세웠다는 네 가지 규율.
일일이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엄격함이 선생을 키우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선생이 유배 와서도 머물 곳이 없어서 주막집주인의 배려로
작은 방을 얻어 더부살이를 했다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의재’에서 차를 마시고 싶었지만 장사준비가 덜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목민심서를 비롯해 600여권의 저술을 완성했다는 다산초당을 찾아 길을 떠난다.
다산초당 앞에 주차를 하는데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주차장 앞에 다산유물관이 보였지만 비가 쏟아지기 전에 다산초당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초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의재.
이건 뭐?
‘초당’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남중생들이 단체로 앞서 올라간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소리, 다산초당에 닿기도 전에 되돌아 내려오는 아이,
길이 미끄럽다고 다른 선생님이 내려가랬다고 선생님과 실랑이 하는 아이.
별의 별 아이들이 다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올라가보자’고 다독이는 선생님.
‘남중생들 맞아?’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래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서울에서 왔단다.
‘에그 저놈들도 군대에 가야할 텐데.’ 싶다.
선생님은 숨기고 싶었겠지만 서울의 J중학생들이다.
다향이도 혀를 차며 올라간다. ‘애들이 도대체?’ 생각했지만
‘어디 그게 아이들만 탓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는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
다산초당에 올라 선생의 뜻을 새겨본다.
다향이가 떠주는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온다.
다산유물전시관엔 생각만큼 볼 게 없었다.
다산의 일대기를 영상화한 게 다향이한테는 재미도 있고,
접근하기에 좋았다는 생각뿐.
전날 저녁에 과식을 했는지 오전 11시가 다 되었음에도 밥 생각이 없다.
다산초당.
그래 백련사 앞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백련사주차장에 이르니 폭우가 내리면서 천둥번개도 울린다.
그래도 포기하기에는 기대가 되는 오솔길.
커다란 우산을 하나씩 들고 백련사에 이르는 숲길을 걷는데
멀리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 이렇게 좋을 수가.
백련사를 벗어나 문익환학교를 방문하기로 한다.
문익환목사님이 돌아가신 뒤에 학교가 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다산초당근처, 백련사 앞에 있을 줄을 꿈에도 몰랐다.
공연히 반가운 마음에 찾았지만 반겨주는 이, 하나 없다.
미리 연락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바빠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의 한명으로서 섭섭함이 느껴진다. 공연히.
12시가 막 넘어섰다. 뱃속에서 신호가 온다. 다향이도 배가 고프단다.
다시 강진읍으로 돌아간다. 밥도 먹고, 또 오후에 찾아보려는
청자도요지를 가려면 어차피 지나쳐야하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다향이가 김밥을 먹고 싶단다.
그래 ‘소문난 맛 집’이란 간판의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었지만
후회가 막심이다.
청자도요지로 가려했으나 다향이가 그냥 건너뛰자고 한다.
최근에 깜장돌과 솔도에서 그릇을 만들어서인지 굳이 그냥 가자고 해서
장흥으로 방향을 잡는다.
장흥에서 볼만한 걸 찾으니 휴양림과 천문대, 해양낚시터.
제주에서 늘 접하는 것인지라 장흥도 건너뛰고 보성으로 향한다.
국도를 따라가니 녹차 밭이 나온다. 녹차 밭을 벗어나 보성군청으로 향한다.
보성군청은 공사 중. 공사 중인 군청 앞에 파업 중인 건설기계노동자들.
좁은 도로 한 쪽에 자동차를 세우고, 관광지도를 얻는다.
보성군문화관광과 직원과 통화해서 알아낸 정보(추천받은 곳)가
대한다원과 벌교의 태백산맥문학관.
무지하게 불친절한 아저씨한테 하나를 더 묻는다.
티브이에 자주 나오는 녹차 밭 가운데의 숙소가 어디냐고?
대한다업 옆의 봇재다원이란다.
대한다원 바로 옆에 있는데 봇재다원은 입장료가 없단다.
그러면 대한다원은 입장료를 받는다는 소리.
봇재다원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1박에 65,000원.
현금을 내면 60,000원에 해주겠단다.
비싸다는 생각으로 관광지도를 살피는데 재미있는 모텔이름이 눈에 띈다.
이름 하여 다향모텔.
전화해보니 35,000원인데 현금을 내면 30,000원에 해주겠단다.
카드수수료와 세금이 센가? 왜 숙소마다(이름 있는 곳도) 현금을 요구하지?
두 군데 모두 살펴본 다음에 결정하기로 한다.
대한다원은 입장료를 내지 않는 삼나무숲길에서 사진만 찍었다.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인데 다향이가 싫단다.
하기야 제주는 녹차박물관이 아니더라도 녹차 밭은 자주 접하니 그럴 만도 하다.
50미터 떨어진 곳에 봇재다원이 있다.
영화와 드라마, CF에서 너무 자주 보았나? 기대와는 달리 별 감흥이 없다.
2Km더 가서 다향모텔을 둘러본다. 전망도 괜찮고,
조용한데 시멘트를 너무 많이 사용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다향이는 좋단다. 혹시 비용을 걱정해서 그런가 싶어서 다시 물어본다.
“다향아, 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행을 왔으면 가는 곳에서 특별한 걸 경험하고, 맛보고 해야지.
솔직하게 말해봐. 어디가 마음에 드니?”
다향모텔이 성처럼 견고하게 생겨서 좋단다. 나 원 참.
다향모텔에 여행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봇재다원으로 부지런히 올라간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욕심.
몇 컷 촬영하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린다.
나중에 확인하니 해발 210m밖에 되지 않는다.
차 시음장에서 녹차를 맛보는데 싱겁다는 느낌이다.
“다향아, 어때?” 물으니 다향이도 뭔가 빠진 느낌이란다.
‘평소 너무 좋은 차를 마셨나?’ 싶다. 다기들도 별로고.
유명세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봇재다원.
봇재단원.
안개가 자욱이 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모텔로 들어가기에는 한참이나 이른 시간이다.
그래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율포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봇재다원휴양림에서 아기를 데려온 부부를 또 만났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원주에서 왔단다.
그래 우린 제주에서 왔다고 하니 ‘제주를 가려고 했는데 이틀 동안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목적지를 바꾸어다네.
바다. 그저 그렇다. 맑고 투명한 제주바다가 문득 그리워진다.
다향이가 녹돈, 녹차를 먹여서 키운 돼지고기를 먹자고 고집을 부린다.
전라도지방이 아니면 맛볼 수 없다는 서대라는 걸 먹어보고 싶지만 양보한다.
그래 1인분에 9,000원하는 삼겹살을 2인분 먹는데 1인분을 더 먹자고 한다.
그래 특별할 것도 없는 저녁비로 29,000원을 지불하니 속이 쓰리다.
무언가 특별한, 그 지방의 특별한 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이라면
조금 과한 비용의 음식을 맛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의 지출은
삼가기로 다향이랑 약속한다.
모텔로 돌아와 속옷을 빨아 옥상에 널었다.
빨래건조대를 물었더니 옥상에 널란다.
하늘이 시커멓다고 말해도 비가 내리지 않을 테니 그냥 옥상에 널란다.
아! 비 내리면 안 되는데.
‘백련사 가는 길 ’
동백열매 발갛게 얼굴 붉히고
모과 향 짙어지는 숲속 오솔길
토닥토닥 빗방울 떨어지고
노스님 독경소리 목탁소리
강진만 위로 울려 퍼지고
동백나무숲 타박타박 걸어가는
우산 위에 빗방울이 춤추고
율포해수욕장.
추억의 민박집들.
<다향>
아빠랑 차를 타고 ‘사의재’ 에 놀러 갔다.
옛날 주막처럼 생긴 집이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진짜 장사를 하는 가게였다.
거기 바로 뒤가 ‘사의재’ 였다.
‘사의재’를 구경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황토로 지은 집에서 황토 고구마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토는 색깔이 참 예쁘다.
황토고구마도 다른 고구마 보다 색깔이 좀 더 환하고 갈색이다.
‘사의재’에는 정약용 선생님이 쓰시던 물건과 옷, 갓, 붓, 책, 초,
휴지가 있다.
나는 옛날 물건이 참 좋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주막집 주인이 다산선생에게 방을 빌려줬단다.
주막집 평상에 앉아서.
다향이의 셀프카메라.
다산초당가는 길.
다산유물관에서.
보성 봇재다원.
녹돈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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