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바쁜 탓에 깊이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으나
누봉님 글을 보며 여러 생각이 오갔다.
머리 속을 스치는 과거의 기억 몇 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매일 했는데
그 시절 나는 어른들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 부류에 속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우리를 다그쳤다.
말씀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분개해서 누군가의 자백(?)을 요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야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으로 딴 짓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OOO, 이 개x아!”
처음으로 내가 들어본 원색적인 욕이었다.
정신을 수습하고 들어보니 내가 선생님 욕을 뒤에서 했다고 했다.
일기장에 선생님 욕을 했다고.
그 일기 내용은 대략 이랬다.
“나는 OO가 싫다.
매일 나한테 이것 저것 시키고
내 연필도 뾰족한 걸로 골라서 자기가 쓰고
OO가 정말 싫다.”
그때 반 친구 중에 대장 격인 A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녀석에게 가진 내 소심한 분노를 저렇게나마 일기에 표현한 것을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칭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 일이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내가 문제의 A라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
A는 사실대로 선생님에게 말하라고 조언을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선생님은 내게 길게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분명한 건 자신의 오해를 내게 한 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 선생님은 내게 악몽의 인물로 남아 있다.^^
박재범이 글을 쓴 마이스페이스는 싸이월드 같은 인터넷 공간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친구에게 쓴 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토해낸 그 글이
공론화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블로그나 미니 홈피가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내가 일기에 감정을 토로했듯, 박재범도 그렇게 했다는 거.
또 한가지 기억.
대학 시절 교양과목을 듣던 대형 강의실이었다.
항상 내 옆에 앉던 아이가 슬쩍슬쩍 내 필기내용을 보고 쓰는 것 같았다.
불쾌한 기분으로 참다가 나중엔 기분 나쁜 걸 드러나게 표현했다.
나중에 그 애가 재일교포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럼에도 난 그 애한테 먼저 친절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한국 와서 공부할 거면 한국말을 제대로 알고 오든가!’ 하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난 그 애가 생각 난다.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겁다.
그 애한테 조국은 참으로 냉정하게 비춰지지 않았을까? 바로 나의 모습을 통해.
20대의 나는 얼마나 미숙하고 어리석었는지.
박재범 역시 어린 나이에 찾아온 조국에서 자신의 미숙함을
단련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안타깝다.
역시 대학 시절 기억 또 한 가지.
명동의 한 교회에서 영어 성경 모임을 잠깐 했던 적이 있다.
여러 이슈를 놓고 진지한 토론도 했던 것 같은데
그 모임에 참석했던 한 대학생이 생각난다.
재미교포였다.
그 아이는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모습만 한국인일 뿐 완연하게 서구인의 시각을 드러냈다.
그 당시엔 그 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태어난 나라를 그렇게 싫어할 거면 미국서 살면 되지
왜 굳이 여기 와서 그러니’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그 애를 미워하지 않았던 건, 바로 그 말을 하던 표정 때문이었다.
한국을 싫어한다는 강력한 그 애의 말과, 표정이 매치되지 않았다.
거의 울 듯한 그 표정이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조국을,
자신의 가슴으로 이해해 보려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그게 잘 안 되자 말과 얼굴이 따로 놀았다.
박재범의 원색적인 표현들은 낯선 조국에 대한 그의 적응 과정이었을 거다.
굳이 이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가 필요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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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미
자숙의 기회? 이걸 언제 줬어야지요.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었는데..아고라 청원에는 재범군 자살청원까지 올랐었지요. 우리 사회가 이렇구나..너무 참담해서..말하기도 싫었습니다.
내 20대, 아니 10대에는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며(이건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도대체 실수 없는 인생은 언제나 오려는지..) 얼마나 젊음을 무기로 까불며 살았는지..(이것도 진행 중인듯..)
일기장에 써온 글이 퍼진 최초의 그 글 자체도 너무 어이없는..목적에서 자행된 일이던데. 이런 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없이. 솔직히 말하자면 피해자인 재범군만 죽일놈 만들어놓은게 찌라시 언론과 악플러들이지요. 입 아픕니다.
나는 재범군에게 너무 미안하고, 그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시 오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 사회는 하나도 변한게 없어서..그것마저 걱정스럽습니다.
디토님이 잘 정리해주셨네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답글
누봉이
디토님 말씀에... 타 사이트에서 읽었던 글을 발췌해서 아래 올립니다.
제가 크게 공감을 한 내용이라서... 새로 쓰느니 그대로 올리는게 더 낫겠다 싶어서요.
그나 저나 우리 콩이 잘 크고 있는거죠? 보고싶은데 언니가 바빠서 ㅠㅠ
- 아래 -
재범군의 사과문이 부족했다고 기사가 났을때 당연히 기자회견을 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재범군이 글이 아닌 말로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현재의 자신은 그때와 다르고 진정 자숙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과 맘으로 보여주게 할 줄 알았습니다.
기자회견 후 일정기간 동안 활동을 쉬면서 자숙기간을 갖고, 그 기간에 한국 문화를 더 경험하고
배우게 하고, 사회봉사를 한다던지,,,이런 식의 시간을 통해 재범군이 더 성장하면 복귀가 가능성
그런 일이었다고 봅니다.
이건 기사를 보자마자 어떻게 처야할지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무게의 문제였습니다.
멀리 보면 미국과 한국 사이에 껴서 스스로도 힘들었을 재범군에게도, 회사에게도 전화위복의 기회로도 삼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런데, 전혀 아무런 것 없이 그냥 미국으로 떠나게 하다니요......팬도 아닌데도 좀 멍했습니다.
- 이하 생략
답글
디토
쿨럭. 나하곤 전제부터 완전 달라서 요해불가한 일이네여..
콩인 나날이 반항아로 잘 자라고 있슈. 곧 일상 얘길 올리려 하니 기대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