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사건을 보고 떠오른 기억들

글쓴이 디토

등록일 2009-09-12 16:54

조회수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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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바쁜 탓에 깊이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으나

누봉님 글을 보며 여러 생각이 오갔다.

머리 속을 스치는 과거의 기억 몇 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매일 했는데

그 시절 나는 어른들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 부류에 속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우리를 다그쳤다.

말씀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분개해서 누군가의 자백(?)을 요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야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으로 딴 짓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OOO, 이 개x아!”

처음으로 내가 들어본 원색적인 욕이었다.

정신을 수습하고 들어보니 내가 선생님 욕을 뒤에서 했다고 했다.

일기장에 선생님 욕을 했다고.

그 일기 내용은 대략 이랬다.

 

“나는 OO가 싫다.

매일 나한테 이것 저것 시키고

내 연필도 뾰족한 걸로 골라서 자기가 쓰고

OO가 정말 싫다.”

 

그때 반 친구 중에 대장 격인 A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녀석에게 가진 내 소심한 분노를 저렇게나마 일기에 표현한 것을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칭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 일이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내가 문제의 A라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

A는 사실대로 선생님에게 말하라고 조언을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선생님은 내게 길게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분명한 건 자신의 오해를 내게 한 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 선생님은 내게 악몽의 인물로 남아 있다.^^

 

박재범이 글을 쓴 마이스페이스는 싸이월드 같은 인터넷 공간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친구에게 쓴 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토해낸 그 글이

공론화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블로그나 미니 홈피가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내가 일기에 감정을 토로했듯, 박재범도 그렇게 했다는 거.

 

또 한가지 기억.

대학 시절 교양과목을 듣던 대형 강의실이었다.

항상 내 옆에 앉던 아이가 슬쩍슬쩍 내 필기내용을 보고 쓰는 것 같았다.

불쾌한 기분으로 참다가 나중엔 기분 나쁜 걸 드러나게 표현했다.

나중에 그 애가 재일교포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럼에도 난 그 애한테 먼저 친절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한국 와서 공부할 거면 한국말을 제대로 알고 오든가!’ 하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난 그 애가 생각 난다.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겁다.

그 애한테 조국은 참으로 냉정하게 비춰지지 않았을까? 바로 나의 모습을 통해.

 

20대의 나는 얼마나 미숙하고 어리석었는지.

박재범 역시 어린 나이에 찾아온 조국에서 자신의 미숙함을

단련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안타깝다.

 

역시 대학 시절 기억 또 한 가지.

명동의 한 교회에서 영어 성경 모임을 잠깐 했던 적이 있다.

여러 이슈를 놓고 진지한 토론도 했던 것 같은데

그 모임에 참석했던 한 대학생이 생각난다.

재미교포였다.

그 아이는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모습만 한국인일 뿐 완연하게 서구인의 시각을 드러냈다.

그 당시엔 그 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태어난 나라를 그렇게 싫어할 거면 미국서 살면 되지

왜 굳이 여기 와서 그러니’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그 애를 미워하지 않았던 건, 바로 그 말을 하던 표정 때문이었다.

한국을 싫어한다는 강력한 그 애의 말과, 표정이 매치되지 않았다.

거의 울 듯한 그 표정이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조국을,

자신의 가슴으로 이해해 보려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그게 잘 안 되자 말과 얼굴이 따로 놀았다.

 

박재범의 원색적인 표현들은 낯선 조국에 대한 그의 적응 과정이었을 거다.

굳이 이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가 필요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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