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출근길 운전중에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라디오프로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다.
이 영화의 두 꼬마 여주인공들과 감독이 게스트로 초빙되어
디제이 공형진과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감독 김소영의 한국어 구사가 어눌하다 싶더니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이라고 프로필이 검색된다.
부산출생, 12세 때 미국 LA로 이주해 시카고예술대학을 나왔다.
그녀의 현재 국적이 미국이고 그래서 서류상 미국인이라 해도
그녀의 뿌리가 한국이고 한국인인 것은 자명해보인다.
물론 나는 일종의 쇼비니즘에 입각하여 그녀의 국적에 의미부여 따위를 할 생각은 없다.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 그거 하나면 충분하고 또 충분하다.
벌써 3편의 장편영화를 찍었다니 신인감독이라고 보긴 그렇다.
솔직히 그녀에 대한 인지도가 없던 나로서는
신인 여자감독의 데뷔작이라고 단정을 지었던 게 사실이다.
어쨌든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순간,
나는 꼭 극장에 가서 돈을 주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재미도,감동도,스토리도 아무것도 검증되지않은 영화였지만
단지 여자 감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무작정 그렇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여자'라는 신분을 사랑하는 방식의 하나다.
물론 그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알파걸과 된장녀가 득시글거린다 해도
여성이 남성보다 물리적 약자인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니까.
하지만 막상 내가 영화를 보기 위한 의지를 굳히고
마땅한 상영시간을 찾기 위해 CGV 홈페이지를 기웃거릴 때
내 의지는 한번 더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란 대개 하루에 한 두번,
것두 자정이나 이른 오전에 마치 선심쓰듯 편성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럴때의 막막함이 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니다.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그것은 늘상 되풀이 되어온 현상이다.
'해운대'와 '국가대표'가 몇 개의 상영관을 독식하고 있을 때
이토록 소외된 영화들의 신세는 그래서 더 처량해보인다.
영화관람의 선택권이 제한을 받을 때마다
다양성이 인정받지도 존중되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문화의 후진성을 확인하는 씁쓸함이 싫다.
하긴, 그래도 이 영화는 운이 좋은 편이다.
서울 한복판 상영관에서 그래도 많게는 하루에 두번이나 상영해주니.
이따금씩 저멀리 CGV수원 혹은 인천 상영관에서나 겨우 상영해주는 영화에 관심을 가질 때 보다는
확실히 덜 낭패스러웠으니 말이다.
결국 난 근무 중에 땡땡이를 치고 이 영화를 관람했다.
내가 아무리 씩씩한 글루미 제너레이션이라 해도 밤 12시에 혼자 영화를 보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ㅋㅋ
어쨌든, 내가 알량한 8천원으로 이빠이 생색을 내듯
이 영화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그토록 결연한 심정과 달리
역시나 영화관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다.
물론 덕분에 나는 정말 호젓하게 영화를 관람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어서 은근슬쩍 좋기도 했다.
내 앞에 시커먼 머리들이 하나도 없어서 좋았고,
부스럭거리는 과자 봉지의 신경쓰임이 없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핸드폰 액정의 지랄발광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마치 거대한 홈시어터를 구축한 대궐같은 내 집에서
혼자만의 감상을 위해 영사기를 돌리는 상상을 하며 못내 흐뭇했다.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던 나의 바람직한 자세는
8천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아쌀하게 타협을 보고야 만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표리가 부동하면 안되는 것을...쯔쯔..
폐일언하고, 영화 얘기를 좀 해야겠다.
진과 빈, 어린 두 자매가 이 집 저 집 떠도는 이야기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젊은 엄마는 결국 두 딸을 고모에게 맡기고
아이들은 다시 시골의 외가로 보내진다.
그럴 때의 엄마들이란 대개 아이들에게 헛된 약속을 남발한다.
아이의 머리통만한 돼지저금통을 내주며
그 안에 동전이 꽉 차면 엄마가 돌아오겠다던 무책임한 약속 때문에
어린 여자애들이 메뚜기를 구워 팔아가며 동전모으기에 전념하고
뻘건 돼지저금통을 끌어안고 살게 되는 것이다.
젠장,,,나같으면 영악해서 어른들의 저따위 약속을 믿느니
그 돈으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시뻘건 떡볶이나 실컷 사먹으련만,
그렇게 시니컬하기엔 너무 어린 이 계집아이들이 영악해지는 방법이란
고작해야 백원짜리 동전을 십원짜리로 바꿔서 돼지저금통을 채우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꽉 채운 돼지저금통을 들고
엄마가 떠나간 버스정류장에서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그것이 기어이 헛된 공약의 남발이었음을 깨달았을때 숨죽여 운다.
화딱지나게스리 소리내서 엉엉 울지도 않고 밥상머리 앞에서 뚝뚝 굵은 눈물만 흘린다.
"엄마 보고 싶어. 아빠도 보고 싶어. 고모도 보고 싶어. 다 보고 싶어."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 빈이 볕좋은 툇마루 위에서 저토록 천진하고 귀여운 음성을 내뱉을 때,
저 어린 아이들의 가슴속에 쌓이는 그리움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무능력한 어른들 때문에 화가 스멀거렸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남발하는 것들은 죄다 정치권으로 보내야 한다고,,씩씩거리면서 말이다.
두 아이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집요하게 들이대는 카메라.
이 영화에 일체의 배경음악이 깔리지않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영화 중반부에 이르면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 영화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인위적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마치 그것은 눈꼽 만큼의 신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결연한 의지표명처럼 느껴졌다.
음악이라는 효과적인 장치없이도 기어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다고 자신했거나,
아니면 애초에 눈물은 이 영화의 본질이 아니라고 터부시했거나.
젠장,,,이럴때보면 암튼 여자들이 더 독하다.
감정의 에센스를 자극하는 사운드의 극단적 배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딱 두번 코가 시큰하고 눈시울이 불거졌다.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 젊은 엄마가 그 슬픔을 억누르던 순간에
나는 무력한 여자들의 삶에 대한 연민이 들끓어올라 코가 시큰했다.
"우리 쫓아내려고 그러는 거지!"
다시 시골 외조부모에게 보내지게 되자 큰아이 진이 고모를 향해 소리치며 울먹거릴 때
단지 세상에 태어난 것 밖에는 죄가 없는 아이들의 운명이 서글퍼서 눈물이 그렁하게 맺혔다.
확실히 감독의 페이스에 휘말릴 때 조금 뻘쭘하긴 하지만
관객을 자기 페이스에 끌어들일 줄 아는 감독이라면 재능을 인정받을만 하지 싶다.
누가 뭐래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 여자 아이다.
이제 1학년쯤 되보이는 진 역의 김희연과
이제 대여섯살쯤 되보이는 빈 역의 김성희는
우리가 티브이에서 흔히 보는 예쁜 아역 배우들은 아니다.
좀 미안하지만 동생역의 성희는 객관적 관점에서도 참 못생긴 아이다.
이렇게 못생긴 아이에게 가뜩이나 촌스러운 코스프레 의상을 입혀놓은 감독의 잔인함이라니.
하지만 또 누가 뭐라 해도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아역 김성희다.
영화 속에서 '빈'으로 거듭난 이 꼬마 아가씨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언니 대신 이불에 오줌을 싼 누명을 쓰고
고모와 대화를 나누던 장면과 그때의 자연스러움은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할 행복한 유년의 풍경이다.
찍소리 못하고 머리에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을 얻으러 쫓겨날때
나는 이 아이에 대한 사랑스러움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어른들이란 그토록 주관적이고 독선적인 존재라는 사실도
그 순간의 위트 때문에 용서가 되버리는 것이다.
두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논두렁을 거닐던 마지막씬을 보며,
나는 이 땅의 많은 남루한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 얘들아,,,삶이란 별 거 아니란다..그러니 씩씩해야 해.
이 영화의 엔딩이 건강한 일상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나 또한 위안을 받는다.
"때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다."
어느 네티즌의 한 줄 평가가 마음에 와 닿았던 건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참담했던 시기에
내 어린 딸을 품에 꼬옥 안고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어린 딸이 맛있는 떡볶이도 못사먹고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채우며 나를 기다리지 않게 했던 건 스스로를 칭찬해줄 만한 일이지만,
따지고보면 그건 내 삶이 그렇게 바닥까지 주저앉지 않고 견딜만했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 자식을 떼어 놓고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채우게 만든 무책임한 그녀들을 내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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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봉이
사라님 글을 읽으면 속이 시원~ 해지는 기분입니다
좋은 글 종종 부탁드려요.
안그러면 엣지있게 터질 줄 각오하시공
답글
SarA
배해순
님에 글을 읽고 다시금 그영상이 더오르네요......집에와 줄거리를 옆집 할머님께 애기 해드렸더니 너무 슬프다고.눈물이 찔끔 하다 아이의 천진스러움에 웃음이 나던 영화.......
잔잔한 감동이 있는 영화였던거 같네요.............
답글
SarA
보셨군요.
관람료가 아깝지않은 영화였어요.
작은 아이의 연기가 너무 내추럴해서 좋았어요.
또미
햐! 잘 썼다~ 영화 안 봐도 되겠다. ㅋㅋ
나도 영화평은 봤지만서도..내가 봐서 힘을 좀 실어줘야겠단..생각은 못했다. 음,,근데 사람이 없다니. 갈까 싶다. 영화관이 좀 무섭다. 그냥 덜컥 아파서 "안녕"도 못하고 세상 뜰까봐. ^^;;
애자..는 평이 좀 안 좋더라. 솔직히 제목도 맘에 안 든다.
답글
사라
평이 안좋드나?....걍 그 영화는 땡기지 않았거든,,담에 ipTV에서 좀 저렴하게 다운받아 볼 생각이야.
난 요즘 이경미감독과 김소영감독을 주시하고 있는데,
임순례 이후 여성감독의 활약이 너무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련된 감각을 갖추고 있는 두 여성감독의 다음 작품들이 궁금해.
참 멋진 여성들 아니냐...부디 메이저에서 살아남아 거장의 반열에 오르길...
같이 응원해주자...^^
미즈천사
사라님 거침없는 영화에 대한 의견 잘읽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 광고를 어디서 접한듯 한데, 사라님의 의견을 들으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8,000원으로 이렇게 많은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니, 아깝지 않은 금액입니다.
답글
사라
아깝지는 않은데요,,,야금야금 계속 오르는 영화요금은 좀 부담스럽긴 해요.
주말엔 9천원이던데,몇만원씩 하는 공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쟝르인데
아마 머지않아 또 슬그머니 만원대 넘어갈게 분명합니다.
영화인들이 너무 본전생각에 치우치지말고 다다익선을 선택했음 해요.
심리적 저지선을 넘어가버리면 결국 영화도 외면받는 문화 컨텐츠가 될거예요.
그런 일은 정말 없었으면 좋겠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