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빨래 좀 걷어 놔!”
이슥한 밤, 네 여자가 모여 있습니다. 아니, 네 여자와 한 남자가 함께 있습니다. 안개 깔린 공원에 옹기종기 앉아 있습니다. 손에 든 캔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고 있습니다. 맥주를 들이켠 뒤 감자 칩을 먹는 이도 있고, 두어 명은 사발 면을 건져 먹습니다.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갈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빈둥거리고 있는 남편한테 ‘여보, 빨래 좀 걷어 놔!’라고 말한 뒤 외출을 했어. 저녁 늦게야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나 참, 기가 막혀서!”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음 말을 기대합니다. 말을 꺼낸 여자가 캔 맥주를 쭈욱 들이켠 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인간이 빨래를 걷기는 걷었더라고. 그런데 걷은 빨래를 거실 한 켠에 둘둘 말아놓은 거야 글쎄. 아니, 빨래를 걷었으면 개켜놓는 건 상식 아냐?”
세 여자와 한 남자가 박수를 치면서 웃습니다. 배꼽을 잡고 눈물이 나도록 웃습니다. 그 중 웃음을 먼저 그친 여자가 말을 합니다.
“나도, 나도. 나도 그런 적 있어. 나도 외출하면서 경민씨한테 빨래 걷어서 개켜놓으라고 했거든. 그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빨래를 개켜놓기는 했는데 그냥 안방에 있는 거야. 바로 앞에 서랍장이 있는데도 말이야! 그래서 물어봤지. ‘경민씨, 빨래 앞에 서랍장 안 보여?’라고 물었더니 뭐래는지 알아요? 빨래를 개켜놓으라고 했지 언제 서랍장에 넣어놓으라고 했느냐는 거예요. 휴우- 속이 터지지.”
말을 마친 여자가 길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어 뿜습니다.
한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작년 오월인가 유월쯤에 있었던 일인데…… 몸이 아파서 한 달 가량 친정에 가 있게 되었어요. 그때 베란다에 상추를 키우고 있을 때라 얘기를 했죠. ‘민주아빠, 상추가 물을 많이 먹거든! 그러니까 아침저녁으로 꼭 물 좀 줘!’라고.
그리고 한 달 뒤에 돌아왔는데 상추 키가 이만해 가지고 다 세어있는 거예요. 화가 나서 상추 밑동을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있으니까 옆에서 뭐라는 줄 알아요?”
이번에는 또 어떤 말이 나올까 싶어 모두 경청을 합니다.
“‘그렇게 잘라버릴걸 물은 뭐하러주라고 했어?’라는 거예요. 내가 아주 미친다니까요.”
무리 중에 동갑내기인 여자가 말을 합니다.
“자기들이 잘못 했네! 그러니까 남자들한테 집안일을 시킬 때는 조목조목 시켜야지. 그 인간들은 일을 하나 시키면 꼭 그 일밖에 할 줄을 모른다니까! 도대체가 창의력이나 자발성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찾아 볼 수가 없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캔 맥주를 쭈욱 들이켭니다.
그때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끼어듭니다.
“남자들이 집안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죠!”
“맞아, 맞아! 그러니까 다향이 아빠를 이 자리에 끼워주지.”
동갑내기 여자가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을 받습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전화 벨 소리가 울립니다. 한 여자가 전화를 받습니다.
“어, 여보! 아직 안 잤어? 한시쯤에 오한숙희씨 강의 끝나고 몇몇이서 8단지 농협 앞 공원에서 캔 맥주 한 잔 하고 있어. 금방 들어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알았지?”
네 여자와 한 남자가 캔 맥주로 건배를 하고, 주섬주섬 일어나 새벽이슬을 밟으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새벽 4시 즈음에.
<2003년 7월 19일, 과천에서 오한숙희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오후 7시에 시작한 강의는 9시 30분이 넘어 끝났고, 강사의 제의로 뒤풀이가 있었지요. 새벽 1시, 오한숙희님이 자리를 뜬 뒤에도 아쉬움이 남는 듯 했습니다. 아쉬움을 접어둔 채 대부분이 귀가를 했고, 다섯 명의 주부가 모여 고단한 삶에 대해 토로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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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미
질문 하나 드립니다~! ㅋㅋ
시키는 일만 겨우 하는 남자...마누라에게 살림 못한다고 잔소리하는 남자..
어느쪽이 나을까요?
잔소리하는 남자는..물론 집안일을 억수로 많이 합니다만은...
이거...절때로...전혀..우리집 얘긴 아닙니다요~
답글
누봉이
밥상녀
정말 공감가는 이야기 입니다.
무슨일이든 하나를 시키면 딱 그 하나에서 멈추고, 다음일을 일일이 말해주지 않으면
진행이 안됩니다.무슨 20살 신입사원도 아니고...
이거 회사에서라면 그냥 확 짤라버릴 일인데...
집에서는 울화통만 터지는 거지요.
정말 밖에서 일잘하는 남자들이 왜 집에서 그러는걸까?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까요?
그런데 왜 자기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건가요?
음...의문의 의문이 꼬리를~~~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살림과 육아는 여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요.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앗을 것이고,
남녀사이에 평등한 관계도 유지되는데...
만약 회사에서 살림과 육아를 맡겼어도 그럴까 생각하면
전혀 예상치 못할 만큼 깔끔하게 처리햇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교육을 잘 시켜야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며 존중하고 살아야한다는 가치 하나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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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아즈위
ㅋㅎㅎ
울집도 빨래는 걷어서 개어놨을까??!!^^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전업으로 살림을 해본 적이 없는 제 각시도
윗 글에 나오는 남편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눈부신하루
밥상차리는 님의 글을 읽다보면 아~~ 내가 살고 있는 곳이네.
전엔 이곳에 계셨었구나 해서 더 반갑네요.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그렇다고 과천 주부들이
늘 새벽이슬을 밟는 건 아닙니다.
초승달
요즘 남자들 대개는 머리를 팍팍 잘도 쓴다는데
글속의 그사람은 아직 세상물정을 잘몰라서 ㅋㅋ ㅎㅎ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벌써 6년 전의 일이고,
6년 전에 30대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남자들의 일이니까
요즘 젊은 세대와는 많이 다르겠지요.
사라
오한숙희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신간소식을 통 못본거 같아요...그분 책 참 재밌고 맛깔스러운데.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
글쎄요.
저도 두어 달 전에 메일주소를 구글로 옮기셧다는 소식만
전해듣고...
연락드려보고 오한숙희선생님소식을 올릴까요?
누봉이
답글
밥상차리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