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빨래 좀 걷어 놔!"

글쓴이 밥상차리는 남자

등록일 2009-08-20 08:36

조회수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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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빨래 좀 걷어 놔!”


이슥한 밤, 네 여자가 모여 있습니다. 아니, 네 여자와 한 남자가 함께 있습니다. 안개 깔린 공원에 옹기종기 앉아 있습니다. 손에 든 캔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고 있습니다. 맥주를 들이켠 뒤 감자 칩을 먹는 이도 있고, 두어 명은 사발 면을 건져 먹습니다.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갈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빈둥거리고 있는 남편한테 ‘여보, 빨래 좀 걷어 놔!’라고 말한 뒤 외출을 했어. 저녁 늦게야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나 참, 기가 막혀서!”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음 말을 기대합니다. 말을 꺼낸 여자가 캔 맥주를 쭈욱 들이켠 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인간이 빨래를 걷기는 걷었더라고. 그런데 걷은 빨래를 거실 한 켠에 둘둘 말아놓은 거야 글쎄. 아니, 빨래를 걷었으면 개켜놓는 건 상식 아냐?”

세 여자와 한 남자가 박수를 치면서 웃습니다. 배꼽을 잡고 눈물이 나도록 웃습니다. 그 중 웃음을 먼저 그친 여자가 말을 합니다.


“나도, 나도. 나도 그런 적 있어. 나도 외출하면서 경민씨한테 빨래 걷어서 개켜놓으라고 했거든. 그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빨래를 개켜놓기는 했는데 그냥 안방에 있는 거야. 바로 앞에 서랍장이 있는데도 말이야! 그래서 물어봤지. ‘경민씨, 빨래 앞에 서랍장 안 보여?’라고 물었더니 뭐래는지 알아요? 빨래를 개켜놓으라고 했지 언제 서랍장에 넣어놓으라고 했느냐는 거예요. 휴우- 속이 터지지.”

말을 마친 여자가 길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어 뿜습니다.


한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작년 오월인가 유월쯤에 있었던 일인데…… 몸이 아파서 한 달 가량 친정에 가 있게 되었어요. 그때 베란다에 상추를 키우고 있을 때라 얘기를 했죠. ‘민주아빠, 상추가 물을 많이 먹거든! 그러니까 아침저녁으로 꼭 물 좀 줘!’라고.


그리고 한 달 뒤에 돌아왔는데 상추 키가 이만해 가지고 다 세어있는 거예요. 화가 나서 상추 밑동을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있으니까 옆에서 뭐라는 줄 알아요?”

이번에는 또 어떤 말이 나올까 싶어 모두 경청을 합니다.

“‘그렇게 잘라버릴걸 물은 뭐하러주라고 했어?’라는 거예요. 내가 아주 미친다니까요.”


무리 중에 동갑내기인 여자가 말을 합니다.

“자기들이 잘못 했네! 그러니까 남자들한테 집안일을 시킬 때는 조목조목 시켜야지. 그 인간들은 일을 하나 시키면 꼭 그 일밖에 할 줄을 모른다니까! 도대체가 창의력이나 자발성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찾아 볼 수가 없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캔 맥주를 쭈욱 들이켭니다.


그때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끼어듭니다.

“남자들이 집안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죠!”

“맞아, 맞아! 그러니까 다향이 아빠를 이 자리에 끼워주지.”

동갑내기 여자가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을 받습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전화 벨 소리가 울립니다. 한 여자가 전화를 받습니다.

“어, 여보! 아직 안 잤어? 한시쯤에 오한숙희씨 강의 끝나고 몇몇이서 8단지 농협 앞 공원에서 캔 맥주 한 잔 하고 있어. 금방 들어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알았지?”

네 여자와 한 남자가 캔 맥주로 건배를 하고, 주섬주섬 일어나 새벽이슬을 밟으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새벽 4시 즈음에.


<2003년 7월 19일, 과천에서 오한숙희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오후 7시에 시작한 강의는 9시 30분이 넘어 끝났고, 강사의 제의로 뒤풀이가 있었지요. 새벽 1시, 오한숙희님이 자리를 뜬 뒤에도 아쉬움이 남는 듯 했습니다. 아쉬움을 접어둔 채 대부분이 귀가를 했고, 다섯 명의 주부가 모여 고단한 삶에 대해 토로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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