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떠나보내고 나는 당연히 여자아이를 입양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동생이 하는 말은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언니야..생각해 봤는데 남자아이를 입양하는 게 어떨까 싶어.
여자아이를 입양하면 자꾸 민이와 비교하게 되지 않을까?'
그 순간 동생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으면서도 왠지 예감은
남자아이가 내게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로 딸을 키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외로움이 안개처럼 깔렸다.
사춘기 아들 둘을 키우는 직장 동료가 평소에 농담처럼 했던 말,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아들만 둘을 뒀단 말인가'
하는 푸념이 무슨 의미인지 피부에 와닿았다.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원장 수녀님은 내 사정을 들으시고 첫마디로
'입양을 하려면 성별을 바꾸어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외동딸을 잃고 아들을 입양한 어느 가정의 예를 드시면서.
인연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내 선택과는 별개로, 콩이의 성별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콩이가 내 아기임을 그냥 가슴으로 느꼈다.
콩이는 아들이나 딸이 아닌, 그냥 '아기'로 내게 온 것이다.
성별의 차이가 아닌, 개성의 차이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해콩이를 키우면서 절감하는 것은 참 분명한 성별의 차이다.
'저놈의 테스토스테론이 문제야!'라는 넋두리가
내 입에서 메아리 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손 한번 씻기려 해도 잠시 내 아귀 힘이 풀리면
콩이의 손은 먹이를 잡아채는 날쌘 독수리 처럼
각종 물건들을 잡아채고 떨어뜨리고 옷을 왕창 적시고
일순간 난장판을 만든다.
엄마와 눈맞추고 웃고 포옹하는 걸 좋아했던 딸아이와 달리
청소기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김연아 언니'에 대한 깊은 경외심,
포크레인과 오토바이에 대한 끝없는 흠모로 가득한
해콩이의 정신 세계는 내게 참으로 색다른 것이었다.
뭔가 아쉬운 게 있을 때 엄마 품에 안겨올 뿐
'관계'가 아닌 '물질'에 콩이의 모든 관심은 집중된 듯하다.
앞으로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이
내가 콩이에게 맘껏 사랑을 줄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이가 '남자'가 되려면 성공적으로 엄마를 떠나는 기술이 필요하다.
(여기서 떠남이란 물론 심리적인 것)
좀 극단적인 표현이겠지만 나는
남자를 '이식이 되어야 살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
아기 때 자신의 온 세상이었던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신과 다른 성별인 고로
어미를 철저히 부정하고서야 남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오죽하면 성경에 '부모를 떠나' 남자가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했을까.
남자의 진정한 행복은
어미의 사랑을 가슴 한켠에 고이 접어 간직한 채
아내의 사랑을 가슴 가득 안고 사는 데서 온다..라고 감히 나는 단언한다.
이런 생각들은 내 개인사가 바탕이 된 것이므로 보편타당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더 공부를 해본다 해도
이것이 근간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자궁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혼자 꿋꿋이 설 수 있는 강인한 존재라는 생각이다.
내 몸을 통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존재...
그러나 자궁이 없는 남자는 끊임없이 여자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을 확인해야 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건강하게 설 수 있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이었던 어미를 극복하고
현재의 자신인, 자신의 반쪽인 여성을 찾아야 한다.
남편 대신 아들을 남편으로 생각하며 살았다는 홀어머니 얘길 들으면
'그 엄마 변태여?'하고 나는 묻는다.
그러나 은연중에 나도 콩이에게 올인하며 살다보면
그런 어미가 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며느리를 질투하며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
두 발 뻗고 악다구니 쓰는 '올가미'영화 속 시어미가
언제 어디서 나의 내면에 침투해 올지 모르니 눈 뜨고 경계해야 한다.
정말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싶다.
가장 좋은 것은, 성장한 아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남편과 행복한 삶을 꾸리고자 노력하는 것이고
나처럼 한부모 가정이라면 온 삶을 투신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일, 종교적인 일들을 찾아 매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내 굳은 다짐들이 지나쳐 오히려 콩이가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나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은거지?'하고 물을지도.
'콩아..엄마는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널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을 찾고 있는 거란다.
다른 모든 일들은 너의 행복 그 다음 순위야..'
아들 가진 모든 엄마들의 그 쓸쓸함을 위해
오늘은 내 작은 잔으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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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동의 갈대
답글
치자꽃
난 친구는 많고 애인은 없네 ㅎㅎㅎ
아이들은 세살까지만 효도 한다는 말에 괜히 서글퍼 지려 하네요
답글
디토
또미
아들..좋지요. 저도 4살짜리 남자아기 조카가 있는데요.
평생에 애들 좋아하지도 않았는데..요 녀석은 보고 싶어요. 몇달만 못 보면 보고파서..
울동생네 전화하면..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요 녀석만 궁금해서..물어보고 또 물어보고..ㅎㅎ
이모~이러면 내 금니라도 빼줄 것 같은 기분이..들면서 사르르 녹아나요..
울딸보다 애교가 더 넘쳐나요. 아..보고 싶다..
답글
디토
이정남
저는 아들만 둘인데요, 남편까지 남자만 셋이네요.
때로는 제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아들은 어릴때는 어릴때대로 따스함과 푸근함이 없고
커서는 커서대로 그렇고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잘 지내고 계시죠?
답글
디토
네..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어요..정남님 아들만 둘이군요^^ 아들 둘 있는 집에선 둘째가 딸 비스무리한 역할을 한다는데 그런가요? 어쨌든 아이들은 세돌까지 평생 효도를 다한다는데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죠..앞으로 힘들 땐 어렸을 적 이쁜 모습을 떠올리며 살아야 겠지요^^
메이폴
디토님... 물질적으로 필요할때 안겨온다는 해콩이... 울 아들도 그렇습니다.
딸은 심심찮게 전화해서 '엄마 아퍼?' '그냥 엄마 생각나서 해봤어' 이러는데
아들은 결코 그냥 전화하는 법이 절대로 없습니다
진짜로 뭐가 필요할때, 그때만 전화합니다. 물론 아들놈이 절 사랑하는건 잘 알고 있지만
물질적인 필요외엔 절대 전화가 없다는거............. 샹느메시키...ㅠㅠ
답글
메이폴
아들을 키워봐서 그 맘 잘압니다 ^^
굳이 성별을 따로 가르치며 키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남자>로 커가더군요
그런데요.. 아들이 크니까 ,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절로 든든해지고
어느땐 좀 기대고 싶고 그러더군요. 바라만봐도 마음이 가득 든든해지는 기분...
딸은 바라만봐도 보듬어주고 싶은데 아들은 든든하고 그래요... 그냥 그렇게 되더군요
아들이 남편대신이란 생각은 안해봤지만 가끔 내 애인~ 이럴때가 있어요.
딸은 자라면 엄마의 친구가 되고 아들은 자라면 엄마의 애인이 된다고 하더군요
아마 딸도 자라면 아빠의 애인이 되고 엄마의 친구가 되고 그럴거 같아요
저도 은근히 나중에 아들에게 과도한 애정을 가진 시어머니가 될까봐 걱정인데
다행인지 지금부터 떨어져지내 약간의 훈련과정을 거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나저나 울 해콩이 포크레인을 좋아해요? 나중에 '언니'가 한개 사줄께요~~~
답글
디토
폴님 아들의 귀염상스런 얼굴을 보면 딸 가진 엄마들이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겠다 생각했지여..
축구 잘하는 아이들이 저는 참 귀엽고 좋더라구요 ㅎㅎ
콩이 키우면서 아파트 재활용 코너를 샅샅이 뒤지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덕분에 커다란 빠방 하나 건졌고 포크레인 장난감 하나도 주워 왔는데 이 녀석 손목댕이(?)는 뭐가 달렸는지 포크레인을 얼마 못가 부숴먹어버렸어여..T.T 이쁜 언니가 하나 사주려면 무쇠로 만든 것이라야 할거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