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엄마는 아빠를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어 ? "
" 우리 ? 우리는 연애결혼했지 "
벌써 부모님 연세가 60 중반이시다. 언제나 든든한 내 기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아 본 엄마 아빠는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계셨다.
" 얘기 좀 해줘봐.. 엄마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금슬이 좋은거야 ? "
" 특별한게 뭐 있나.. 그 시절에는 먹고 살려고 고생만 했는데.. "
우리 부모님은 그 시대에는 그리 흔하지 않은 연애 결혼을 하셨단다.
( 내가 찍어 드린 엄마, 아빠 ㅎㅎ 왕과 왕비처럼 멋지게 나이가 드셨어요 )
" 아 맞어 ~ 그때 그 유화씨 얘기 !!! 나는 정말 아빠가 그렇게 로맨틱한지 몰랐어 "
" ㅎㅎ 그래 너희 아빠가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나 자상하단다. "
내가 초등학교 한참 호기심 많은 나이에 엄마의 장농을 뒤지다가
옷사이에 깊숙히 묵직한 무언가가 손에 잡혀서 호기심에 꺼낸적이 있었다.
앨범보다도 더 두툼한 책인지 문서인지 모를 그 나이에는 쉽게 들기도 무겁던 정체불명의
낡은 책 하나 !!!
겉포장엔 심상치 않은 대나무 그림으로 멋드러지게 모양을 낸, 읽어보니
아빠가 군대에 계실때 쓴 일명 '추억록 ' 이였다.
펼치는 순간 구구 절절한 연애 편지들, 한 껏 멋내 그린 그림들 약간은 촌스러운 시 구절들 ..
한참을 보고있는데 내용이 모두 처음 듣는 이름들로 도배가 되어있는거였다.
엄마 이름이 오,길,자 여사이신데 ㅎㅎ 온통 유화씨, 유화씨 유화씨로 도배가 되어있는거다.
순간 ' 아빠의 첫사랑 ? ' 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에이, 오래된 얘기니까 하며 웃으면서 보았다.
다 보고 나선 괜한 장난끼가 발동하여 엄마 아빠 두 분이 나란히 계신자리에서
" 아빠 유화씨가 누구에요 ? "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엄마 아빠께선 얼굴이 발그레해지시면서 계속 웃고만 계시는거다.
" 아 ~ 뭐가 있구나 ? 누구예요 ? " 하며 계속 물어보았더니
아빠가 쑥쓰러우신 듯 " 니 에미다 " 하시며 말끝을 흐리시는거다
알고보니 유화씨는 우리 엄마의 처녀 시절 가명이였다.
아 ~ 지금 생각해도 나는 가명을 쓰신 우리 엄마가 너무 귀여우시고 좋다.
그렇게 열렬한 연애끝에 군생활 3년을 꼬박 기다리시고 사랑의 결실을 맺으셨단다.
" 와 ~ 그래서 여태까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단말이야 ? 너무 멋지다 두분 다 "
" 에이그 말도 마라. 그때부터 시작이였어. 내 살아 온 얘기 그건 소설이다 소설 장편 소설 ~ "
엄마의 얘기를 빌리자면 행복한 신혼의 단꿈도 잠시.. 여기서부터 우리엄마의 고생길이 시작되신다.
지금은 시대가 너무도 많이 변해 며느리 시집살이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많이 달라졌지만
엄마 세대에는 그야말로 며느리들의 수난 시대였다.
그 생생한 시집살이의 증언들을 엄마 입을 통해 한편의 대하소설처럼 긴 시간동안 듣게되었다.
아빠가 군에 계실때 엄마는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알뜰하신 성격에 꽤 되는 돈을 모으셨나보다.
결혼후에 엄마 아빠는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모은 돈으로 가게 딸린 방을 구하셔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내셨단다. 그 때는 장사도 그럭저럭되고 형편이 그리 나쁘지 않아서
신혼생활이 궁핍하지않게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시고 계셨는데.. 그런데 어느 날 ,
두 둥 ~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방적인 통보로 시골에서 7남매를 다 데리고 그 방 한칸 구멍가게로
모든걸 다 정리하시고 내려오시면서 엄마의 소설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식구가 워낙 많은데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11식구 밥 한끼 먹으려면
정말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졌단다. 항상 끼니때마다 밥을 할머니가 하시는데
식구수대로 밥을 푸다보면 항상 밥이 모자라 엄마 밥은 없으셨다고 한다.
" 아니 그럼 밥을 더 하면 되잖아 ? 그럼 엄마는 굶었어 ? "
" 밥이 모자라는지 몰라서 안하셨겠니 ?
그때는 미운털이 박혔는지 시어머님께서 늘 똑같은 양의 밥만 하셨다. "
그래서 그 때 엄마 사진을 보면 뼈만 앙상하시다. 힝 ~
(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살도 붙으시고 얼굴이 좋아보이셔서 흐믓하다 )
" 그렇게 어떻게 살았어 ? 차라리 도망을 치지 " 어린애 같은 내 질문에
" ㅎㅎ 그래서 도망을 쳤지 " 라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는 엄마.
그렇게 온 식구들 뒷치닥거리를 하시면서 사시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으셨는지
아빠에게 나는 큰 애 데리고 나갈테니 당신은 여기서 살던가 아니면 나를 따라 나오라고 선언을 하시고
옷 보따리 하나 들고 엄마가 일구어 오신 전 재산을 다 버리시고 나오셨다.
( 그때는 할머니 = 시어머니 께서 모든 재산 관리를 하셔서 엄마는 일만 하셨단다 )
아빠도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중재의 노력을 계속하시다가 그래도 내가 책임져야 할
가정이라 생각하시고 엄마를 따라나오시고, 그야말로 빈 몸둥이로 다시 시작하셨단다.
" 이야 엄마도 아빠도 대단하시다. 그럼 정말 무일푼으로 이렇게 다시 일구어놓으신거야 ? "
" 정말 그때는 눈앞이 깜깜하고 막막하고 어디 기댈대도 없고, 너도 나도 다 어려웠으니까 "
엄마가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그 고생을 듣는 내가 어찌 다 알수가 있을까 ?
처음에 시장에서 생선을 받아다가 시장통 동네어귀에서 파는 생선장사부터 시작해서 여러가게들..
" 떡볶이 장사를 할때였어. 가게에 불이 크게나서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니 오빠를 강둑하고 연결 된 화장실에 빠뜨려서라도 살려야하나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지. 그런데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죽더라도 같이 죽자라는 심정으로
품에 꼬옥 안고 버텼지. 다행히 니 아빠가 소방차 불러오고 해서 죽다가 살아난거야 "
지금도 엄마는 그 때를 생각하며 가슴을 쓰러내리신다.
만약에 불길이 더 번져서 오빠를 그 화장실 (강물)에 버렸으면 어쩌나 싶다고 ..
그렇게 가게에 불이 난 후로 막내인 나를 가지시고 그때부터 가게도 잘되고 우리집 형편이 좋아졌다고
엄마 아빠는 나를 나름 우리집 '복덩이'로 부르신단다. 엄마 아빠의 복덩이 히히 ~ 우쭐해졌다.
" 니네 아빠 옛날에 왜 밥상에서 꼭 밥을 남기셨잖아. 그게 왜 그랬는지 아니 ? "
" 그러게 밥을 다 드시던가 첨부터 덜어놓으시던가 하시지 왜 꼭 남기셨던거야 ? "
아빠는 10년전만해도 항상 일정량의 밥을 남기셨다. 조금 담으나 많이 담으나 항상 일정하게..
오늘에야 알게 된 사실은 그 힘들었던 신혼시절 엄마가 시집살이 하실때
항상 엄마 밥이 없으니까 아빠가 눈치를 봐가면서 그 밥을 남겨서 엄마한테 주셨단다.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울컥하던지.. 그게 습관이 되어서 항상 밥을 남기셨다는거였다.
그 때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였을까 생각한다.
특히나 여자는 밥심으로 사는데.. 치사하게 밥은 주지 하면서 혼자 삐죽거린다.
그렇게 좋은 신혼시절부터 젊은 시절을 고생고생으로 다 보내시면서도
워낙에 엄마 아빠가 생활력이 강하셔서 두 분이서 힘을 합해 어느 정도의 재산을 일구셨다.
물론 거기에 보태진 우리집 복덩이의 힘 !!! ( 바로 저예요 ^ ^ )
몇 년전에 엄마가 주위 친척들에 휘둘려서 큰 맘먹고 밍크코트를 사신적이있다.
내가 생각해도 고가의 옷. 그러나 그 옷을 입은 모습을 처음에 한번인가밖에는 못봤다.
사람들 눈치가 보이셔서 못입으시겠다고.. 나는 편한옷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엄마.
그래서 겨울만 되면 아빠는 날이 좀 춥다 싶으면 오늘은 담요 (?) 뒤집어 쓰고 나가라고 하신다.
그건 언제 입을거냐고 뒀다 담요로 쓸거냐고 하시면서..
하지만 엄마는 어김없이 늘 입는 편한 옷을 입고 나가신다.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 그런 모습이 이뻐보이시기도 한다.
요새는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아서 너도 나도 겉치레에 자기 자랑만 늘어지게 하는데
우리 부모님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많은걸 보고 느낀다.
( 하지만, 나를 사주신다면 나는 겨울내내 입고 다닐것같다 !!! )
" 정말 엄마 아빠 고생 많이 하셨구나. 나는 그때 그런 고생들 했으면 어땠을까 ? "
" 다 니 아빠 덕분이지. 그때 나를 잡아주고 지탱해준건 아빠였으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다 니 아빠 "
내 나이 삼십 중반에 나이에 접어들고 살면 살수록 더욱 더 부모님이 위대해 보인다.
나는 고생한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몰라도 또 지금의 시대가 그런지 몰라도
사람과 사람과의 끈끈한 정이나 의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익이 되면 내 사람 아니면 쉽게 버리고마는 쉬운 인간 관계들.
날이 갈수록 엄마 아빠는 새록새록 정이 더 샘솟으시는것 같다.
같이 고생하면서 다진 동지애같은게 있나보다. 사랑도 의리 ! 부부도 의리 !! 라던가..
지금도 서로 " 자기야 " " 자기야 " 하면 자식인 내가 봐도 샘도 나고 정말 부러워진다.
오후에 엄마한테서 문자가 하나 왔다.
' 막내야 엄마가 부침개 부,처,낫,다. 일찍와'
오랜시간 걸려서 맞춤법도 틀리게 보내 신 엄마의 문자 하나에 와락 눈물이 났다.
엄마 , 유화씨 , 오길자 여사님.. 아빠 사랑해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큰 말이 없어서 못하지만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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