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지옥에서 벗어난 지금, 저는 정말 사람처럼 웃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계절을 만난 것 같습니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던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행복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곧잘 합니다.
3년 전 지방에 있는 某 대학 조교로 근무할 당시 같은 과 남자 조교 선생님을 알았습니다. 제겐 너무도 친절했던 분이고 학생들에게도 형, 오빠처럼 다정한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조교 선생님을 알고 저희는 이내 연인관계로 발전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불행이란 아주 먼 이국의 말처럼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남자 친구가 아버지 교통사고를 빌미 삼아 사백만원을 빌려달라고 하기 전까지... 불행이란 이름과 그것이 불행의 시작을 예고하는 거란 걸 알지 못했습니다.
한 푼 두 푼 모았던 적금을 깨고 다음 날 남자친구에게 전해줬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그 땐 사랑이외에 다른 건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먼 훗날 지금의 모습 그대로 둘이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 깟 돈, 제겐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미 조교직을 버리고 유학을 떠난 뒤 였습니다. 며칠 동안 아버지 병 간호 때문에 나올 수 없다는 말 만을 되풀이 할 뿐, 그것이 떠남을 위한 준비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믿었습니다. 남들은 ‘바보’라며 손가락질 할 지 모르지만 사랑했던 사람이라 미워하는 마음은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보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미처 보지 못한 학생과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미미한 접촉 사고였지만 학생 부모는 입원비와 후유증에 따른 합의금 오백만원을 요구했습니다. 요구에 불응할 시엔 고소한다는 말로 엄포를 놓으면서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그 많은 돈을 부탁하기에는 너무 죄송스럽고, 설령 부탁을 해도 부모님은 제가 돈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실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은 신용카드 한도 금액 200만원과 사채 300만원을 합한 합의금, 5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사채 무섭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 당시 그것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차라리 부모님께 솔직히 말씀을 드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교통사고 합의금 문제를 우선 당장 해결했지만 사실 매달 100만원 안팎인 월급으로 사채이자와 신용카드 대출 금액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신용카드 대출 금액은 메우기도 전에 신용불량자로 등재됐고 사채 또한 원금은 고사하고 몇 십만원씩 되는 이자를 갚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 때부터 카드 결재일과 사채 이자 납입일이 제겐 지옥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카드사에서는 직장과 집으로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사채업자들은 당초 다정했던 모습과는 달린 영화에서나 나오는 조폭들처럼 욕설과 협박을 일삼으며 연체에 따른 고이율을 멋대로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드사의 독촉도 두려웠지만 날이 갈 수록 심해지는 사채업자들의 협박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정말이지 그들 말처럼 섬에 윤락녀로 팔리던가 아니면 남들 모르게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다 겨우 잠이 들면 사채업자가 꿈에 나타나 저를 땅에 묻는 광경과 그걸 지켜보는 부모님, 잠에서 깨면 홍건히 젖은 베갯잇 때문에 또 다시 눈물 짓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느 새 사채이자는 원금 300만원에서 4개월 만에 230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단, 만원도 갚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많아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이제는 죄인이라는 생각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감히 물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포자기 심정이었습니다. 생활의 모든 리듬과 미래에 대한 모든 꿈들이 하나 둘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 나가도 일에 대한 의욕이 없었고 나중 친구를 만나는 횟수도 줄게 됐습니다. 웃음도, 말수도 점점 모든 것이 제게서 멀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습관처럼 가슴이 심하게 떨렸고 두려움 때문에 눈물이 다 흘렀습니다.
그러다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인근에 있는 약국에 들러 수면제를 10알씩, 10알씩, 그렇게 80알을 샀습니다. 10알씩 늘어나는 수면제를 주머니에 넣을 때 왜 그리도 많은 눈물이 흘리던지... 27살이라는 젊음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가족과 친구, 절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 같아 너무 아팠습니다.
그 날도 카드사와 사채업자는 약속한 것처럼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더는 피할 생각도 없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독촉과 협박이 들리기 전에 먼저 “돈 갚지 못해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아니 전원을 껐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수면제를 10알씩 모두 80알을 삼켰을 때 오디오에서 들리는 음악은 마치 하느님의 목소리처럼 저를 혼냈고 그러다 울고 계시는 부모님 모습이 보이는 가 싶더니...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깊은 잠에서 깨인 그곳은 병원이었고 곁에는 엄마가 수척해진 모습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엄마를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윗층에 사는 주인 아주머니가 낮에 온 우편물을 주려고 내려왔을 때 잠기지 않은 방문을 열고 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왜 말하지 않았니? 그런 일이 있으면 엄마, 아빠한테 먼저 이야기를 하지, 왜 혼자 그렇게 끙끙 앓다 바보같은 짓을 하는데!”
“......”
“카드사하고 사채업자한테 전화 왔었다... 이제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네가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할 때 엄마, 아빠는 안중에도 없대?”
“......”
“미정아... 사람 낳고 돈 낳지, 어디 돈 낳고 사람 낳냐? 어떻게 배운 사람이 대학도 못나온 엄마보다 더 바보같은 짓을 하는데.”
그렇게 엄마는 제가 하지 말아야 할 모든 사건(?)을 묵묵하게 해결해 주셨고 모진 말 보다는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 주셨습니다. 할 말이 참 많았지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이외에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알겠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돈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고 사람들의 관심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젊었을 때 어쩌면 거치지 말아야 할 상황에 놓이고 지옥보다 더 심한 날들을 결국, 이겨냈지만 이제는 그와 똑같은 길을 다시는 걷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안고 다시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빚진(?) 마음에 빚을 갚기 위해 제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분명, 지옥을 떠난 오늘에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 번 잃은 신용은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이제는 블랙리스트에 사라진 제 이름이 그나마 큰 위안이 됩니다. 아픔 뒤에 좀 더 성숙해진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준 엄마, 아빠를 이제는 점점 맑아지는 제 영혼처럼 모두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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