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황금기라.....
미즈를 들락 날락하며 황금기가 언제인가라는 이벤트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어려운 주제기에...또한 글 솜씨가 없기에 많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어봅니다.
황금기... 가장 빛나는 시간..바로 그런 시간은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듯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지금 가장 없는 이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황금기를 만나러가는 긴 여행~
(1) 나?.....
표면적으로 저는 올해 32살 만으로 30세의 두 딸아이의 엄마랍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나는 지금의 제모습 뒤에는
30년이라는 시간이 있답니다.
네 그렇답니다. 정말 돌아보면 별거 아닌 30년 세월
하지만 지나던 그 순간에 서있던 저에게 그 시간들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답니다.
늘 그 순간 순간이 참 힘겹다 버겹다 느껴졌었답니다.
평탄해보일것같은 저의 얼굴 속에는 늘 근심이 었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억눌린 것이 있었죠.
남들이 보기엔 무엇인가 부족할 것없어보이던 그런 배경..
하지만...속이 곪고 있었답니다.
저희 아버지는 참 다정한 분이셨지만..정말 무능하셨죠.
사업 수단이 참 없으셨어요.
당구장에 볼링장에 홍익회 빵집에 여시는 것 마다 족족...
아빠는 사기를 당하고 부도 나고 실패하고....
엄마가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빚더미에서 살았답니다.
철이 들면서 아빠가 너무 미웠고...힘들어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돈에 한이 맺혔더랍니다.
돈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리라고 생각했고...
고등학교때는 야자를 하지 않고 단과 학원에서
무료로 강의를 들으면서 쉬는 시간마다 칠판을 닦았습니다.
공부하다 맥이 끊어지는 그 기분...
칠판을 지우는 제 등뒤로 쏟아지는 시선...그런것 따위는 별거 아니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칠판을 닦았죠.
또 방학때면 새벽 4시에 학원 전단지를 학교에 몰래 담을 넘고 들어가서 책상 속에 뿌리는
일도 했고요.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요.
정말 이를 악물고...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답니다.
물론 무능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도열심히 했고요.
그렇게 정말 이를 악물고 난 절대로 무능한 남자와는..돈없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죠.
(2) 우리?.....
그렇게 전...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름있는 대학을 갔죠.
하지만 대학을 다니면서도 늘 돈에 쪼들렸답니다.
등록금도 벌어야 했고 생활비도 벌어야했죠.
장학금도 받아야 했고요.
그래서 남들 다 가는 ot, mt 모두 포기해야했고요.
그저 묵묵히...공부하고 돈버는 것에 매진했답니다.
과외도 한때는 6~7개를 한거번에 했고요.
쓰러져서 하루를 일어나지 못한적도 있었죠.
늘 고단했답니다.
그런 저의 고단함에..위로가 되어주는 지금의 신랑을
학창 시절에 만났고요.
운명이란 그런것인듯합니다.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가난한 대학생이었지만...
사랑이란, 그런 저의 결심 따위는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었죠.
그렇게 신랑을 만나고 사랑하게되고 삶에 희망을 찾아가게되었답니다.
절망의 구렁에서...
정말 그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믿었던 저에게
저의 신랑은 그야말로 큰 빛이었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도 저에겐 사치더라고요.
(3) 장애?.....
결혼하자 했을때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난 후..
정말 큰 벽에 부딪혔답니다.
바로 저희가 동성동본이라는 것.
그 당시 동성동본 법이 효력 정지중이였지만...
부모님들게서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죠.
반대 앞에 더욱 커지는 사랑..
저희는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답니다.
그렇게 부모님의 허락을 기다리며 7년을 견뎠죠.
결국....7년 뒤..하나가 되었답니다.
(4) 행복?.....
결혼할때 역시 저희는 아무것도 없는 처지..
그래서 신랑은 관사가 있는 직장을 얻어야했고.
경기도 양주 은현면의 외딴 관사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죠.
전 서울로 출퇴근 매일 3시간씩해야했지만..
행복했답니다.
혼수도 하나도 없이 그저 각자 살던 살림을 추려서 같이 살림을 차렸지만.
늘 행복했답니다.
그러던 중에 큰애를 임신했고.
무거운 몸을 끌고 출퇴근 하면서도 그저 행복하다고 생각했죠.
임신중독에 조산기가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꿈도 못꾸었고요.
그저 조심 조심해서 그렇게 다녀야했답니다.
그럼에도 신랑과 함께 살게되었다는 그 행복에 모든 것이 용납이 되었답니다.
(5) 챗바퀴 돌듯.....
큰아이가 태어나게 되었고...
신랑은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면서 빚을 얻어서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하였답니다.
집도 서울에서 전세를 얻게되었고요.
그런데 정말 돈과는 어찌나도 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인지.....
신랑은 워낙 정이 많은 사람이라...
퍼주는 것이 벌어오는 것보다 많았죠.
여기 저기서 대출받고 꾼 3억..
계속 이자만 갚아나가는 형편이었고요...
제 월급으로 생활을 했지만...
아이가 둘이 되면서 맡기고 일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전 집에서 미싱으로 작은 것들을 만들어서 주변사람들에게
팔면서 근근히 생활비를 마련해갔죠.
가끔 체험단 활동으로 혼수를 마련하지 못해서 없었던 세간도
조금씩 채워갔고요.
그렇게 또다시 이를 악물고 돈되는 것을 하는 저를 보며....악몽이 떠올랐답니다.
저희 아버지...
그런 모습을 우리 딸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에.
치가 떨려왔습니다.
신랑을 사랑하지만...
두려웠습니다.
늘 돈없이 살아야 하는 저의 운명이 서글퍼졌습니다.
♣지금이 황금기이다..
서글퍼하는 제 앞에 신랑이 꿇어 앉았습니다.
미안하다...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지 않냐..
하면서 그동안 빚을 갚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주더라고요.
미혼모시설 후원에...장애아이들 후원에.....또 쉬는 날에도 봉사...
저희 신랑...그냥 실패한 인생이 아니더라고요.
저희가 지게된 빚 당장 갚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랑이 그러더라고요.
"살아 있는 동안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더 행복한거 아니냐고요. 우린 얼마든지 마음 먹으면
빚 갚을 수 있는 사람들 아니냐고.. 당장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우리가 행복한거 아니겠냐고"
신랑도 저도 부여잡고 울었답니다.
눈이 밝아지는 느낌 그런거 아세요?
정말 눈에 꺼풀이 씌여있던 것이 환하게 밝아보는 그런 체험을 했죠.
앞이 환해지면서...
제 마음에 근심과 걱정과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더군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암흑기...
그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돈으로부터의 자유함을 허락해주었답니다.
조금 없어도..가난해도...
빚에 쪼들려도...
진짜 행복한 인생이 무엇인지 말이죠.
저희 딸아이들에게 남겨줄 자랑스러운 유산을 만들어가는 신랑..
그런 신랑을 믿고 따라가는 제가 너무 자랑스러웠답니다.
제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빚은 조금씩 갚아 가겠습니다.
하지만......우리 가족의 황금기를 꼭 지켜나가겠습니다.
쉬지 않고 .....
어려운 이웃과 둘러보는 그런 가족이 되겠습니다.
황금기는 물질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지만 가장 풍요로운
마음을 갖고 있는 바로 지금입니다.
저희 가족의 황금기는 바로.....이때랍니다.^^
[에필로그]
글을 적는 제 옆에서 신랑이 한마디 합니다.
"니 안쪽팔리나? 상품때문에 그런거지?"
신랑은 모릅니다. 상품때문에 그런게 아니란 것을..
황금기를 지나는 저에게 제 스스로에게 행복함을 되새김질 하고 싶어하는
저의 마음을....
이벤트를 통해서 다시 한번....저를 되새김질 할 수 있도록 해주신 미즈에
감사를 드리며..
또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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