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른 두살로 두 아이의 엄마이며 맞벌이하는 직장 여성이랍니다.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이 더없이 싱그럽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또한 계절이 계절인지라 여기저기선 결혼식 야외촬영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모습을 바라보면 저의 전성기를 잠시 주춤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떠오릅니다.
십여년전 한 남자로부터 프로포즈란걸 받고 스물셋의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막내 아들로 자란 신랑은 칠순의 노모에겐 항상 막내였고 저 또한 막내
며느리로 듬뿍 사랑을 받으며 결혼 생활에 임했기에 행복했답니다.
그런데....결혼후 얼마되지 않아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생기고
나선 저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귀한 손주를 품에 안아보신 시어머니는 아이에겐 모유가 좋다고
모유 먹일것을 권하셨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일회용
기저귀를 못쓰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요즘에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엄마들이 어디에 있겠어요.
좋은줄을 알지만 불편한점도 있기에...
시어머니 말씀인즉...천기저귀의 좋은 점이 열가지도 넘었습니다.
엉덩이 진무르지 않고...쉬도 금방 가리고...제일 중요한 반영구적 사용...
시어머니 시집살이란게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답니다.
아이꺼니깐 삶아 줘야지...널어야지...개켜야되지...않그래도 많은 빨래에
천기저귀까지 몸이 열개라도 당해낼 턱어 없었답니다. 거기에다 모유를
먹이는 터라 조금만 울어대면 어머니께선
"야야. 야가 운다 얼렁 와서 젖좀 물려라"를 연발하시기에 하던일 멈추고
즉시 아이 입에 젖을 물리는 일이란 ...아이가 생기고 나선 전 말 그대로
아줌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 생활은 하나도 없고 모두 아이에게 투자해야 하니 억울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다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긴 생머리가 매력 포인트였던 머리는
아이를 낳은 후로 점점 빠지더군요. 날이 갈수록 훵헤지고...나중에 알았지만
산후에 빠진 머리는 모두 자란다고 했지만 당시에 전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저는 이러다 대머리가 되는게 아닌가 해서 급히 미용실로 향했답니다. 짧게
자르고 살짝 파마까지...그러고 나니 숱도 많아 보이고 긴 머리를 아이가
잡아당겨 빠지는 일도 덜하겠다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그뒤로 길게 늘여뜨려 찰랑거리던 생머리는 볼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아이와
함께이다 보니 감기도 편하고 쓱쓱 두어번만 빗어주면 별 문제없는
셋팅력까지 마음에 드는 파마 머리는 저의 단골 헤어스타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일생 일대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외출...그 외출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르실겁니다.전 어머니가 시골 친적집에 내려가시는 길로
아이의 천기저귀를 일회용 기저귀로 바꾸고 외출 준비에 나섰습니다. 요
몇달간 아이와 전쟁아닌 전쟁을 치루다 보니 파마 머리도 풀리고 기분 전환도
할겸 미용실에 다녀오려는 생각이었답니다. 가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예쁘게 단장하고 바람도 쐬려고...
미용실에서 최신 유행하는 파마를 말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잡지책을 보다
문득 목욕탕 생각이 났습니다. 파마를 말고 목욕탕에 오는 아줌마들 생각이
났고 스팀을 쐬면 파마가 더 잘나온다던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목욕탕으로 향하는 저에게
미용실에선 "너무 늦게 오시면 안돼요. 1시간 이내로 오셔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왕 파마 하는거면 잘나오는게 좋지' 하면서 미용사들의 말을 뒷전으로
하고 미용실을 급하게 나왔지요.. 나오지도 않는 때를 밀면서 '뜨거운 스팀을 이정도
쐬줬으면 파마가 잘 나오겠지'생각했답니다.
목욕을 끝내고 미용실로 돌아오는길...유모차에 않아 있는 8개월짜리의
아들놈도 오랜만의 외출이 신이 났는지 평소와는 달리 보채지도 않는게 기특했습니다.
유모차를 열심히 밀고 가는데 저의배꼽 시계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더군요.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서두른터라 건너뛴 아침이며 목욕탕에서 체력을
낭비했는지 배가 고팠습니다. 미용실에서 한시간 이내로 오라던 말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전 근처의 오뎅집으로 가서 순대와 오뎅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유모차를 밀고 미용실 근처에 다다랐을때 파마 머리에 제법 잘
어울릴 근사한 모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모자라면 유난히 좋아했던 제가
지나칠리 없었고 파마 캡을 쓴 머리에 이모자 저모자 써보며 근사한 걸로 하나
골랐지요.
오랜만에 기분도 좋아지고 날씨도 좋고 이젠 파마만 잘 나오면 되겠지
했는데 유모차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허겁지겁 유모차를 찾는데 시장의
아줌마들이 나와서 손가락질을 하며 무언가를 가르켰습니다. 보니 아이가 타고 있던
유모차가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서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던 것이었습니다.
모자를 고르느라 약간 언덕이었던 모자 가게에서 유모차의 잠금장치를 해
놓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경악을 하며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달려가다가 저도 그만 포장줄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무릎에 피가 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다시
일어나 아이에게 달려갔을때 다행히도 아이는 다친곳이 없었답니다. 아이가
무사한걸 알고 나서야 무릎이 아파오는것도 느낄수 있엇고 시장 한복판에서
우리 모자를 구경하기 위해 모두 나와 있다는걸 알고 나서야 창피하다는 것도
알았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젊은 새댁이 파마캡을 쓰고 저러고 싶나 모두 손가락질
하는것 같아 허겁지겁 그 자리를 떳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용실 직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헐레벌떡 미용실로 향했을때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미용실 직원들은 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파마 캡을 벗기고
중화제를 발랐지만...상상도 하기 싫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방치한
탓에 정말 뽀글거리는 파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거기에다 약을 오래 바르고
있어서 머리도 많이 상해 있다고 하더군요. 최신 유행 파마가 아닌 70년대
우리의 엄마들이 하던 바로 뽀글뽀글 파마가 되버린거죠.
그래도 얼굴이 작아서 잘 어울린다는 미용실 직원의 위로를 뒤로 하고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갈때는 속상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머니가 않계신 틈을 타 일탈을 꿈꾼 저에게 신이 내린 가혹한 벌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최신 파마가
아닌 파마의 원조격인 뽀글 파마 머리를 하고 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했습니다.
그렇다고 거금 들여 한 파마를 다시 펼수도 없고...
절룩이는 저를 보며 어디 아프냐고 물어오는 신랑의 말도 들리지 않고 낮에
놀란 탓인지 울고 보채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유난히도
뽀글거리고 파마약 냄새가 지독히도 풍기는 저의 짧은 머리카락이 밤새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뒤로 뽀글 파마를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뽀글 파마를 또다시 유지하게
만든건 2년후에 태어난 우리 둘째랍니다.
지금은 큰아이가 아홉살, 작은아이가 일곱살이랍니다. 전 얼마전부터 아이들을
학교며 유치원에 보내 놓고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답니다. 바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답니다.
아줌마라서 남들이 볼때 폼이 날지는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근사하기만 한 제가
아이 낳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말입니다.
한때 두 아이를 키우느라 뽀글 파마를 하고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저의 전성기가
잠시 주춤했다면 저의 전성기는 긴 생머리 휘날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여자가 아닌 남자와 동급인 당당한 직원으로...
집에선 아이와 남편, 어머님을 사랑으로 보필하는 주부로...
무슨 일을 하든 당당하고 힘차게 해나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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