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에 날개를 달고..

글쓴이 이명선

등록일 2008-01-30 21:23

조회수 2,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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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다섯 시를 알린다.

부스스 어깨를 털며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일어선다. 마음 같아선 벌떡 일어서고 싶지만 행여 내가 날고 있는 날개가 다칠까 봐 조심을 한다. 전 같으면 아직 꿈속을 헤맬 시간이지만 생활의 시간표가 바뀌면서 기상 시간이 빨라졌다. 한 가지를 얻으려면 한 가지를 잃게 마련인데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 길을 선택했다. 늦은 나이에 선택한 길,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 나는 유치원 가는 아이처럼 가슴이 설렌다.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꿈이 아니기를 간절하게 빈다.

버스를 타니 모두들 무표정한데 나만 공연히 신이 나 저들도 내 기분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들었다. 차에서 내리며 가방을 메려고 하니 한쪽 가방 끈이 걸리지 않고 헛손질만 한다. 몇 차례 헛손질을 하자, 젊은 애기 엄마가 얼른 가방 끈을 끼워준다. 나이는 못 속이는가 보다.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러워“처음 해 보는 거라면서요?” 하며 씽끗 웃어주었다.

나는 환갑 진갑이 다 지난 나이에 일성여자중학교 2학년에 편입을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아들이 아니라서 일찍이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짧은 내 교육은 언제나 목에 가시처럼 마음을 괴롭히며 따라다녔다. 고등학교 가는 친구의 책가방이 부러워 몰래 숨어 훔쳐보던 나의 가슴엔 응어리 하나를 묻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 가방을 꼭 들어보리라는 마음을 가슴 깊숙이 간직했다. 그런 아픔이 있어 내 자식들은 무조건 대학을 보내고 출가를 시켰고 여섯 딸 뒷바라지에  앞만 보고 달려와 보니 내 응어리는 너무 깊이 묻혀버리고 내 인생도 어디로 갔는지? 남은 것은 짙게 드리운 굵은 나이테와 잔설로 난무하는 머리카락뿐이었다. 그래도 이것이 '여자의 행복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유년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 친구는 머쓱해하며 금년에 대학에 진학한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항상 몸이 아파 골골거리던 이 친구도 저렇게 학업에 도전을 했는데 난 그 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자식의 그늘에 가려져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번도 챙겨 보지 못했던 것이 친구의 말과 맞물려 엄청난 충격이 되었다. 그 충격은 잠시일 뿐 진학하고자 하는 욕망은 내 가슴에서 불같이 타 올랐다.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며 그 친구가 다녔던 학교로 한걸음에 찾아냈다. 벅찬 가슴으로 달려가니 내 모교가 정식 인가가 나지 않은 학교라며 중학교 일학년에 입학을 권하는 것이다. 고교에 진학하려던 내 날개는 그만 높은 장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4H(지덕노체)고등공민학교, 그 당시 모두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처지라 학교에서 공동으로 묘목을 길러 판매한 수입으로 학자금을 지원해주던 학교이다. 학구열만은 어느 학교 못지않아 고교에 진학한 선, 후배들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고교에 진학을 하려던 나의 부푼 희망은 한 순간 무너져 마음이 몹시 아팠다. 내 남은 세월에 중학교, 고등학교의 과정을 걸기엔 그 세월이 너무 길었다.

포기도 승낙도 못하고 사무실을 들락거리는데 직원이 고향의 교육청과 연락이 닿았다면서 정식으로 인가가 난 학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내 가슴에선 기쁨 반 슬픔 반으로 큰 파도가 일며 숨이 막힐 듯 고마웠다.

고교에 진학하려던 마음은 중학교 삼학년에 편입을 권하기에 새롭게 도전하는 공부다 생각하고 승낙을 했다. 허지만 수업시간은 나를 또 당황케 했다. 사십 여 년 간 묵은 그 공부는 분수 곱셈, 나눗셈조차도 잃어버린 것이다. 무엇이 그것들을 다 앗아 갔을까?

딸들과 남편에게까지 도움을 청하는 부끄러움은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덮어버렸다. 학교생활은 모든 과목이 다 어렵고 힘들지만 딴 세상을 만난 듯 작은 희열까지 느끼게 했다.

늦은 공부를 하는 사람을 보면 “이제 배워 무엇에 쓰려고?”하며 비웃었던 나였는데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늙어 희미해진 눈도 별처럼 빛나고 학교에서 하는 일은 하나 같이 즐거웠다. 교실은 언제나 한자라도 더 배우려는 열기로 뜨겁다.

누군가 “아휴 힘들어” 하는 한숨 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그들은 야무진 꿈이 있어 언제나 활기차다.

 체력은 점점 떨어질 나이 새벽 기상에 살림살이, 가족 뒷바라지에 방정식 풀랴, 영어 단어 암기하랴, 숙제 하랴 이십 사시간이 짧아 방방 뛰지만 세월을 되돌린 듯 즐겁다. 잘못 만난 시대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서 못 배운 공부의 한을 떨쳐버리려고 교육의 현장으로 달려가다 나이를 돌아보면 조바심이 나지만 선생님의 질문에 때로는 엉뚱한 답변을 하는 학우를 보며 까르르 웃는 주름진 얼굴은 소녀처럼 해 맑다.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와도 두 손 번쩍 쳐들며 “안돼요! 안돼요, 세상에다 사기를 치고 다녀 방송을 타면 안 돼요” 하는 농담 아닌 진담이 가슴 짠하게 만든다.

고졸이라고 대졸이라고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해 주어 살아온 것뿐인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특강과 보강까지 챙기며 숨어서 학력을 쌓는 학우들의 열정을 보면 그들의 세월을 잡아매두고 싶다.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난 학우가 담임인 총각 선생님에게 “아빠! 힘들어, 업어줘” 하며 응석을 부리는 우리는 십대 소녀들 이다. 음악 시험을 치르고 마음에 차지 않아 “선생님! 남행열차 부를까요?” 하자 교실은 웃음바다로 넘실거린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고 버스에 오르면 영어 암송 공부를 하는 나를 위해 조심 운전을 해 주는 것 같아 기사님이 무척 고맙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저 고맙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이제 나는 웅크렸던 내 어깨 위에 꿈의 날개를 달고 희망 찬 하늘을 날고 있다.

새벽잠 설치며 만원 버스에 시달려도 고교 졸업장을 품에 안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그날을 기다리며 영어 암기장을 펴 든다.

Thinking of my childhood, I go to school today !!  

 

- 일성여자중학교 3학년 졸업반 이명선...

 

* 추신 : 일성여자중학교 박상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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