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유치원.

글쓴이 누봉이

등록일 2007-06-03 16:27

조회수 3,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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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매 식당 건너 건물 꼭대기에 한달간 전층을 임대한 수상쩍은 회사가 생겼다.

우리 집 우편함에 전단지 하나가 꽂혀있어 봤더니 무료로 상품을 드리니 오시라는

글귀와 함께 라면 한박스, 휴지 20롤 , 설탕 1kg 등등 상품 내용이 적혀있었다.

무엇때문에 주는지, 뭘하는 회사인지는 적혀있지 않은 수상쩍은 전단지였다.

며칠 후부터 양산을 들고 풍성한 바지와 효도 구두를 신은 할머니들 수백명이 건너 건물로

속속 들어갔고  바로 그 수상쩍은 회사에서 매일 점심 일곱그릇을 배달시키기 시작했다.

양쪽 손에 그득 배달통을 들고 그 회사로 배달을 갔다.

 

일단, 어디서 어떻게 알고 모여들었는지 백여평이 넘는 커다란 실내에 할머니들이

빼곡히 줄맞춰서 앉아있었다.

그 앞에는 돼지반, 병아리반 등등의 명패가 매달려 있었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할머니들은 누워 쉬거나 고스톱을 치거나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실내 한쪽엔 라면 박스, 휴지박스, 설탕 박스등이 산을 이루고 있었고

예쁘장한 젊은 아가씨들이 아주 친절하게 공짜 커피를 할머니들에게 타 드리고 있거나

설탕봉지를 집어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는 실내 현수막.

신개념 웰빙 건강식품 000..

 

하, 그렇군. TV등지에서 여러번 들춰냈던 바로 그 터무니 없이 뒤집어씌운다는,

할머니들 상대의 엉터리 건강보조식품 판매..

하나에 수십만원을 호가한다는, 그러나 원가는 몇 천원이고 약효는 전혀 보장할수 없다는...

 

척보기에도 그곳에 드나드는 할머니들은 그다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피부와 따로 겉도는 희뿌연 분가루 위에 홀로 굳세게 돋보이는 눈썹 문신과

필시 오십견으로 인한 결과인 듯 구부정하게 올라붙은 어깨와 다소 굽은 등.

상의는 상당히 저렴해보이는 자켓이지만 하의는 오로지 편의를 위한 풍성한 바지와

한결같은 효도구두..

수십만원짜리 효능검증도 안된 약을 척척사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인상들이었다.

 

배달통 수거를 위해 한시간뒤 다시 그 회사로 갔다.

 

'할머니 ! 앞에 할머니한테 팔을 올리시라니까요! 자 따라해보세요. 오리 꽥꽥!'

'어머니 돼지가 어떻게 울어요? 그렇죠 꿀꿀. 돼지반은 꿀꿀 이겁니다. 한번 해볼까요?'

할머니, 어머니 소리만 없다면 딱 유치원에 들어온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흥겨운 트로트 반주로 합창도 하고 유치한 게임을 하고 맞추면 설탕이랑 휴지도 주고

살갑게 어머니 할머니 불러주며 수상쩍은 회사의 직원들은  입에 혀처럼 굴어주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와르르 웃고 흥겹게 어깨춤을 추며 천진하게 할매유치원을 즐기고 있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겨'

충청도에서 20년을 살아서 경상도 사투리에 곧잘 충청도 사투리도 매달리곤 하는 김사장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김사장도 그곳에 앉아있으면 그다지 겉돌지 않는 나이, 65세가 아닌가.

올해부터 공짜 버스를 탄다며 좋은지 싫은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는 김사장이다.

 

'할매들이 갈데가 없으니 그렇지, 가면 속편하게 친구들 사귀지, 어머니 어머니 하고

잘 해주지, 실컷 놀지, 그러니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거 아이가'

'실컷 놀고 물건만 안사주면 되겠네'

'그게 어데 그러나, 순진한 할매들이 미안해서라도 하나 팔아줘야지 하게 되지'

 

하긴 배달가면서 슬쩍슬쩍 보니 백칠판에 반 별로 판매실적까지 적어놨더만..

반장을 뽑아서 판매실적이 높은 반에 상품도 주고 추첨도 하고 경쟁을 하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낄 만 하겠다.

중간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료한 일상에 한바탕 놀 자리를 깔아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곳이라 끊기도 쉽진 않겠다.

 

식대를 지불하는 경리의 지갑엔 현금이 두둑하게 들어있다.

벌써 엄청난 판매를 했다는 증거...

 

'한 달 동안 한탕 하고 또 옮기고 원래 저것들이 그렇다'

고객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 김사장도 '저것들'이라며 몹시 깔보는 말로

이죽거렸다.

그리고 이내 늙어도  밥벌이 하며 무료할 시간없이 바쁘게 사는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자식들 부담 시키지 않는 현모임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회사가 생긴지 열흘 쯤 지났는데 할매들의 숫자는 나날이 불어난다.

혼자 오는 할매들 보다  동네 친구인 듯 서넛이 함께 오는 할매들이 훨씬 더 많다

행색은 다 비슷비슷하다.

 

저들이 철수하고 나면,, 며느리, 자식과 할매들의 처절한 뒷풀이만 남을 것이다.

먼지 풀풀 날리는 휴지에 홀려서, 재미에 홀려서 약효도 없는 수십만원 짜리 수상쩍은

건강식품이 남긴 카드 빚, 또는 용돈을 날린 부모에 대한 원망과  고까짓 돈을 아까워하는 자식을 고까워하는 할매들의 뒷풀이.

 

그러거나 말거나 배달을 가면 할머니들은 행복에 겨워 겉도는 분칠 밑으로 까르르 웃고있다.

어느 자식이 저렇게 놀아주고 저렇게 살갑게 대해줄까.

할머니들은 알면서도 잠시의 행복에 취해 그 몇십만원을 아끼지 않게 되는 것일까.

 

평생 온갖 경험을 하고 살아온 할머니들은 바보가 아닐 것이다.

할머니들은 속아서 건강식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달의 유치원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할머니들의 노쇠한 인생의 신나는 한달이라면 그깟 몇 십만원이 아깝겠나.

그 회사가 사기꾼인지, 진짜로 할머니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약값 좀 부풀리는 효도집단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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