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피카소전을 한다고 해서 보러 갔다.
시립미술관은 걸어가는 길이 참 아름다웠다.
만이천원이나 하는 입장권을 사고..피카소의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솔직히 그림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아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뭐 커다란 감동은 없었다.
피카소는 수많은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한 화가다.
늘 그렇듯이..위대한 남자 예술가는 여자들의 희생을 전제한 내조를 받으면서
자신의 예술적 혼을 불사르기 마련이다.
까미유 끌로델을 희생시킨 로뎅이 그렇고..박남준도 부인의 헌신적인 희생..
물론 피카소 또한 17살의 소녀와 사랑을 나누는 등 전형적인 남성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난 거기서 특이한 사람을 발견한다.
프랑스와즈 쥘로..피카소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은 여인..
그녀는 피카소의 여자들처럼 희생되어진 것이 아니라,
최초로 피카소를 먼저 떠난 여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피카소에게 버림받은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피카소를 떠나 또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한다.
행복하게 잘 살았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난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에 주목했고, 그녀의 선택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피카소가 만난 여인들은 빛나는 사진 작가였거나 가능성 있는 신예 화가였거나,
피카소가 없었다면 그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피카소를 만난 후 그녀들의 예술적 혼은 피카소에게 물처럼 흡수되고..
단지 21세기의 우리들에게는 피카소의 여인들로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와즈 쥘로..
피카소를 떠났기에 홀로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그녀..
난 그녀에게 감동받았다.
피카소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녀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특출한 그림들을 많이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와 있을 때는..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를 피카소의 예술성 앞에 온전히 바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기의 그림들은 별다를 것이 없었다..라고..씌어 있다.
그래서 더욱 그녀가 멋있어 보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내가 발휘해야 하는 것이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남자에게 귀속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전에 '아주 작은 차이'를 읽었을 때 그 속에서 인터뷰했던 정신병자의 얘기를 봤다.
그녀의 남편은 잘 나가는 작가..그런데 남편은 그녀의 습작들과, 상상력을 발판 삼아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영감을 제공해 주고 남편 뒤로 숨었던 그녀는 결국 정신병을 얻었다.
프랑스와즈는 피카소에게 희생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 그대로 온전했다.
거장 피카소의 예술적 재능 안에 빨려들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두 아이를 데리고 피카소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생각해 본다.
멋지다. 나는 그런 여인들을 닮고 싶다.
온전한 자신 개인의 삶을 존중할 줄 아는 그런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