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이 왜 자살했느냐고 묻는데...
제가 어떻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어요.
한 여배우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저버린 것이 그냥 가슴 아프고
그 죽음을 애도하는 다른 배우들의 모습 역시 안타까워 보일 뿐이었는데..
막상 내 어린 딸의 질문을 받고보니...
공인의 삶이란 죽는 순간까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구나 ..
그런 생각도 들고, 암튼 어린 딸에겐...뭔가를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살이란 나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사람마다 주어진 삶이 있는 것인데 병들거나 또는 사고나 병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남겨진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고 그래서 천주교에선 장례도 지내주지 않는다고..
불교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는 '윤회'란 게 있는데 ...
자살한 사람들은 윤회할 수 없다고 하더라...
암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 딸이 자살을 단순히 슬픈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될 일로 받아들이길...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오늘, 미즈...5분명상 게시판에...올라온 글을 읽어보니..
스스로를 격려하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우리는 스스로 격려하고 살아가야 할 힘을
얻는 일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한 영화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 왠지 차가운 빗방울처럼
자꾸만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게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인터넷이란 공간이...서로 쉽게 공감하는 공간이고 보면...
꼭 나만 그럴 것은 아닐 거라는...
그래서 한 꽃다운 청춘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내 일처럼..여겨지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게시판에 있던 글을 옮깁니다.
미국 텍사스에 달라스 카우보이라는 미식축구 팀이 있습니다.
만년 꼴지 팀이었는데 1993년과 1994년에 연속으로 정상에 올라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지미 존슨이라는
코치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평범한 코치로,
선수들에게 스포츠를 남을 이기는 도구가 아닌 인생을 배우는 도구로 보게 하고
항상 긍정적인 말로 선수들을 격려했습니다.
결국 선수들의 태도가 "아무래도 안된다!"는 부정적 태도에서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태도로 바뀌면서 팀도 무적의 팀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격려가 이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누가 나를 격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번만이라도 "나는 반드시 행복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능히 승리하는 무적의 영혼이 될 것입니다.
좋은 토양에서 하늘을 찌르며 자라는 웅장한 나무를 보면 감동이 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몸부림을 치며 생존하는 나무를 보면 더 감동이 됩니다.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자라다가 바위에 막히면 불평하지 않고
온 몸을 비틀어 바위를 피해가며 자랍니다.
그런 나무들을 보면 "당신도 그렇게 살아가세요!"라는 무언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느 날 바람에 날려 들풀 씨 하나가 사막에 떨어졌다가
생각지 않게 싹이 났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한 방울의 수분을 향해 온 힘을 다하다 보니까
다른 어떤 풀보다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막의 외로운 들풀을 보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답니다!"하는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물이 영장이라면서 불평도 제일이다!"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때로 어려운 환경이 펼쳐져도
급한 마음으로 낙심하지 말고 자신을 끊임없이 격려할 때,
자신감이 회복되면서 사랑과 이해와 용서도 쉬워질 것이고,
동시에 남까지 격려하는 위대한 격려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