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cm의 꽃미남. 검정색 양복에 하얀 Y셔츠를 받쳐입고, 줄무늬 넥타이로 성장한 아들의 아침 출근을 바라보며, 늙은 어미는 그 큰 입을 한껏 벌려 귀에 걸친다. 내 속에서 저런 것이 나왔는가 믿기지 않는다. 뚜벅뚜벅 빠른 걸음걸이가 멀어지기까지 나는 벽돌담으로 고개를 한껏 내밀고 배웅을 한다.
사 남매의 장남. 언젠가 그 장남의 자리가 무겁다는 녀석의 말을 들었을 때, 내 가슴이 짠했다. 그 녀석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내게는 전혀 그런 짠한 마음은 없었다. 장남은 집안의 거울이다. 그래서 자신이 장남임을 명예롭게 생각하려니 했는데... 속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에미다.
주일마다 그녀석은 장을 봐 온다. 양 손으로 잔뜩, 아니면 배달을 시킨다. 짠한 마음이 더 짠하다. 그러지 말라니 싫다 한다. 늙으신 할머니와 좀 덜 늙은 아비와 어미가 찬 없는 식탁에 앉았는 게 보기 싫다 한다.
"너희들 공부시키는 동안 늘 그렇게 먹고 살았어. 괜찮아."
그러나 아들은 막무가내다.
"잘 먹고 살지는 못해도, 기본은 먹고 살자."한다.
군에 있는 제 남동생의 추리닝을 사서 붙여야겠다고 한다. 추워졌으니 두툼한 것으로 보내겠다 한다. 저도 제대로 된 추리닝이 없으면서...저보다 한 뼘은 더 큰 녀석을 동생이라고 껴 안고, 아니 껴 안겨서 등을 두드리는 녀석이다.
"남동생을 낳아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녀석이다.
"죄송하지만, 엄마보다 상기를 더 사랑해요."라는 녀석이다. 죄송할 게 뭐람. 그러기를 바라고 두 아들을 두었잖았겠냐. 고맙고 또 고마운 말이지.
그동생 휴가 나온다 소식 들으면 큰아들은 냉장고를 채운다. 사이다는 필수요 반찬도 갖가지다. 햄, 통졸임, 고기에 주전부리까지 잊지 않는다.
아직 귀가 전인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뛰어나간다.
"돼지가, 만화책을 빌려 들어갔음 좋겠는데, 가진 돈이 없다네요."
그래서 돈을 들고 나가는 중이라 한다. 그러니 '형만한 동생이 없다.'했겠다? 명언이로고. 아~암. 형만한 동생 없지.
두런두런 히히덕거리는 두 녀석이 잠 들기 전, 녀석들의 닫혀진 방문에 귀를 대고 즐겁던 에미가 먼저 잠이 든다. 깜짝 놀라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잠자는 모양새가 볼만하다. 침대에 동생을 뉘이고, 형은 땅 바닥에서 그 큰 키를 구부리고 잠이 들어 있다. 침대에 같이 누워도 좋으련만, 둘이 다 불편하게 뭐냐 한다. 그러니까 형이나 불편하자는 이야기다. 짜~식. 형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잠이 든 작은 녀석의 철부지스러움이, 큰아들의 대견함에 묻혀 보기에 좋다.
점심 때쯤에 전화벨이 운다.
"엄마 책상 위에 있는 컵라면, 여진이 오면 주세요."
신림동 고시촌의 여동생을 생각하는 말이다.
"출출한 밤에 먹으라구요."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에미보다 나은 오라비다.
"엄마 좋아하시라구 엄마 앞에서 주니까, 엄마는 내가 주는 거 상관없이 용돈을 주라."는 녀석이다.
"네가 동생들 챙길 때는, 엄마 챙기는 것보다 더 좋다."는 에미의 말을 잊지 않았나보다. 신퉁방퉁한 녀석.
"작은 용돈에도 좋아하는 거, 그거 무지 이뻐요."
"걔한테는 많이 미안해요."
뒷바라지를 욕심껏 해 주지 못해서라고 한다. 아들아. 그건 네 몫이 아닌 걸. 엄마 아빠가 있는데. 그만만 해도 아주 고마운 일이지.
에미가 시골집에 내려갈 때, 집을 예쁘게 손질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도 살다보니 맘 먹은 대로가 힘이 든다고 실토를 한다. 시골집을 서재로 꾸며 말년에 글을 쓰고 싶다던 내 꿈을 걱정하는 눈치다. 이제야 녀석의 무거운 짐을 알만하다. 서른 두 살의 나이가 적어서 모르겠는가?
그래서 결혼은 아직 멀었다고만 하는가? 이제는 슬슬 연애도 시도하라 이르니, 사귀어 볼만한 여식들이 없다 한다. 그럴 게다. 나는 이 깔끔한 녀석의 성격을 아니까. 그러나,
"아들아. 입의 혀처럼 맞는 짝이 있을라구. 맞춰서 살아야 하느니라."이르지만, 급한 채도 않는다.
아들아. 엄마의 장남아.
나도 손주 좀 안아 보자. 업어도 보자. 다들 손주 보기들 싫어한다는데, 엄마는 달라. 내 손주를 누구한테 맡기겠냐? 며느리가 원하지 않으면 몰라도, 아니라면 난 손주를 아주 귀하게 키우련다. 걱정마라.
며느리가 원하지 않으면 당연히 따로 살자. 나도 그렇게 살았고 너도 그렇게 원할 것으로 알고 있다. 젊은 날에는 따로 자유롭게 살다가, 하나 남은 어미나 아빠는 네가 책임지는 것으로 하자. 네 살림이 잘 풀려서 시설에 맡기고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도 좋고.
너는 장남의 자리가 어려워서 부담스럽다지만, 엄마는 너를 장남으로 두어서 행복한 걸 어쩌누. 그래도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너를 장남으로 두어서 정말 행복한 걸?! 아, 글 마치기 전에 부탁 하나 하자. 술 줄이기. 알았지?! 사랑한다. 그리구 동생들 잘 챙겨줘서 고맙구.
오늘은 충분한 칠푼이가 되자.
"누구, 내 큰아들보다 나은 아들 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