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막내딸 보아라.
(2001년 수능시험을 치르고, 너를 신림동으로 보내고 쓴 글이라 수정 없이 그대로 올린다.)
잘 지내느냐? 짐은 잘 정리되었는지...
엄마가 도와줬어야 했는데, 아버지의 아침 출근이 걱정되어 그냥 왔구나.
우리 여진이가 찬찬히 잘 정돈했으리라 믿는다.
엄마는 너를 떼어놓고 돌아서기가 무척 힘이 들었단다.
집에 돌아와 네 방문을 열어 보고는, 얼마나 허전했는지... 언니를 시집 보냈을 때에도 이만큼 서운했는가 싶지 않구나.
텅 빈 책꽂이, 헐렁한 옷걸이, 말끔한 화장대... 네 방이 이렇게 넓었는가 싶어 새삼스러웠단다.
“여진이도 이제는 에미 곁을 아주 떠나 간 게야.”
할머니의 이 한마디에, 엄마 가슴은 덜컹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지.
‘그렇구나.’ 나는 왜 그 걸 모르고 있었을까? 어째서 3월이면 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2차 시험 준비하고 연수원으로 가리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리고 곧 결혼 할 나이인데도 말이다.
사랑하는 나의 막내딸 여진아.
네가 써 놓고 간 편지를 네가 집을 떠난 다음 날에야 보았구나. 네 방이 따뜻해서 할머니께서 쓰시도록 하려고 청소를 하다가 책상에서 네 편지를 보았지. 청소기도 밀어놓고 걸레도 던져 놓고, 편지를 읽고 또 읽고도 또 다시읽고 했지. 너무 과찬이 많아서 황송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은 좋더구먼. 아무튼 고맙다. 다른 사람들이야 무어라 해도 좋다만, 너희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엄마였다 하니 다행이지. 사실은 그 동안 부족한 모양새를 많이 보이면서 살았는데 좋았던 일만 기억 해 주었더구나. 부족한 딸, 부족한 아내, 부족한 며느리요 특히 부족한 에미였던 것을.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동안 내가 지나치게 돈을 버는 일에만 충실했다는 후회를 하게 된단다. 너희들 뒷바라지만 열심히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를 할 때가 많았다.
사랑하는 막내딸 여진아.
엄마는 네가 엄마의 딸이어서 무척 행복한 날이 많았던 거 아니? 착하고 성실하게 자라는 모습에 행복했고, 주어진 일을 야무지게 처리하는 네 당돌함에도 행복했단다. 그래서 엄마는 매사에 너를 믿는 버릇이 생겼지.
열 여덟 어린 나이에 제 등치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그랬고, 스무 살의 과년한 나이로 일본 연수를 간다고 할 때도 선뜻 동의를 했었지.
오빠와 너를 한꺼번에 외국에 보내놓고, 엄마는 그 해에 IMF를 맞았지. 엄마는 아직 너희에게 사정 얘기도 전하지 않았는데, 너희가 오히려 집안 걱정을하며 고생을 자처했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해결하고, 한 푼의 용돈도 보내지 말라고 했을 때, 엄마는 얼마나 너희들이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단다. 고맙기도 했다만 고생 할 너희들 걱정에 눈만 뜨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기도 했단다. 너희들이 계획 한 대로 공부를 다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을 때 엄마는 천지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단다.
그때 일 말고도 네가 내 딸임을 감사한 적이 많았단다.
엄마가 시험 준비를 할 때마다 사전을 찿아서라도 모르는 것을 일러주었고, 성적까지 체크하며 신경을 써 주었지.
컴맹은 대학도 가지 못 한다며 컴퓨터도 가르쳐 주었고, 인터넷도 가르치고... 사실은 나 때문에 네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뵈면 나태해졌다가도 각성하게 되요.” 할 때면, 오히려 나태해졌던 내가 각성하는 기회가 되더구나.
사랑하는 막내딸 여진아.
엄마가 수능 보던 날 얘기 좀 할까? 아, 전 날 밤 얘기부터 하자꾸나.
11월 6일 저녁.너는,
“내일 아침에는 엄마에게 따끈하고 시원한 재첩 국을 끓여 드려야지.” 라며 부산을 떨더구나.
“일찍 자야 한다.” 는 네 아버지의 성화에도 나는 내일의 시험이 걱정스러워 늦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단다,
서투른 네 칼 솜씨에 조심스럽게 신음하는 도마 소리를 들으며, 새벽 2시까지 몸을 뒤척거렸다.
11월 7일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 아침.
나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 품에 안길 막내딸을 기대하며 방문을 나섰지.
그러나 주방은 조용하더구나. 네 방도 괴괴하기만 했지.
“이런 철부지를 믿다니...”
그래도 그 아침에 쓰려고 식탁 위에 많이도 늘어놓았더구나. 설탕, 식초, 삶은 메추리알, 재첩, 호박, 채 친 당근 등...
할머니의 조반을 걱정하는 나에게 네 아버지는 고맙게도,
"당신이나 어서 챙겨 먹고 가라.”며 등을 떠미셨지. 정신없이 도시락을 챙겨 현관을 나서다가, 그래도 늦잠에서 깨어난 네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어 마음이 쓰이더구나.
가방을 등에 맨 채 메모지에 급히 몇 자 적어 네 방문 손잡이에 메달아 놓지 않았던?
- 식탁 위에 준비 해 놓은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은데? 수험생 뒷바라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 하하하.-
모두 어려웠다는 수능시험을 치르고 교문을 나설 때, 엄마의 두 눈은 팽이처럼 팽팽 돌더구나. 지친 걸음으로 집에 와보니 너는 없고, 엄마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해야만 했단다. 그날만큼은 네가 저녁을 지어놓고 엄마를 맞아 줬으면 싶었는데 말이다. 후에 네게 들은 얘기다만은 너는 엄마 얼굴 보기가 미안해서, 내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독서실에서 밤 늦도록 공부를 했다지?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는 다음날 아침, 너를 크게 나무랐구나. 그러나 그 건 네가 이해해야 한다. 엄마는 그날, 장장 열 시간의 수험을 치르고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거든. 그러나 꾸중을 듣고도,
“엄마 미안해요. 엄마는 옛날에 우리들한테 그러지 않으셨는데...” 라는 사과의 글을 건네주어서 엄마는 또 눈물이 나도록 행복 할 수밖에 없었지.
사랑하는 막내딸 여진아.
오냐. 네 말대로 엄마는 네가 문제없이 해 낼 것으로 믿는다. 엄마만큼이 아니라 엄마의 두 배, 아니 열 배는 해 낼 걸?!
그러나 부담은 갖지 마라. 지금 처한 자리에서 최선만 다 하면 족하다.
이제 엄마가 02 학번의 대학생이 되면 95 학번의 여진이는 까마득한 선배일쎄. 네 시험만 아니면 내가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텐데......
워낙 중요한 시험을 눈앞에 두었으니 이제 엄마 걱정은 잊어버려라. 너희들 말대로 엄마는 아직도 ‘슈퍼 우먼’이고, ‘마징가 젯트’ 가 아니더냐.
엄마는 아직도 혼자서 잘 해요 하하하. 너도 내 딸이니 혼자서도 잘 해 낼 게야. 그러나 시험보다는 네 건강이 우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일러두마.
자, 이제 그만 접어야겠다. 수업이 시작 되었구나. 오늘은 영어와 국사 수업이 있는 날이다. 엄마는 영어 시간도 재미있고 국사시간도 좋아하지.
서둘러야겠다. 여진이는 내 꿈꾸고 잘 자거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