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랑은 한 줄의 낙서도 흘리지 않는다. 꼭 필요에 의한 글이 아니드라도, 살다보면 메모라도 한 줄쯤은 해 놓을만도 한 일인데. 내가 그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었다면, 나는 그를 학부 졸업자로 인정을 할 수가 없었을 게다. 그러나 약혼자의 명색으로 그이의 졸업식에 참석을 했고 축하도 해 주었으니, 그가 학사 출신임은 분명하다.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지낼 때면 곧잘 책을 들여다보기는 한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은, 더욱이 문장을 만들어 놓는 일은 절대로 없다. 왜 일까? 나는 그 이유를 그이의 스승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명문 대학의 학장을 지내신 그이의 스승님은, 단 한 권의 책을 펴 내신 일이 없다 한다.
"내가 강단에 서서 하는 말 중에도 얼마나 많은 모순이 포함 되어 있을 터인데, 그 많은 모순을 하물며 책에 적어 놓는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느냐?"
는게 그 스승님의 변이라 한다. 그이는 아마 그 스승님의 말씀에 많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을 주례로 모시려고 합니다."
우리의 결혼식을 앞 두고 그이가 내 오빠에게 했던 말이다. 그러고보면,
"나도 그 스승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말은 없었어도, 그이는 능히 존경하는 스승님을 따를 위인임을 나는 잘 안다. 단 한 줄의 문장에도 모순을 적지 않겠다는 스승의 의지를 따르고 있는 게다.
그럼 나는 뭔가? 생각하는 것 느낀 것을 식상하기 전에 메모를 하고, 그것도 잊을까 싶어 대강의 내용을 메모하고, 그래서 글로만 남기고 싶은 만석이는 뭔가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이보다, 아니 내 신랑의 스승님보다 모순이 없는 완벽한 사람은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내 글 속에 모순의 덩어리가 와글와글 함성을 질러도, 나는 적고 또 적고 싶다. 그렇다고 문장 실력이 월등하게 남 다른 것도 아니다. 웅변술이 좋아서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글을 쓰고 싶은 건 왜일까?
단 한 사람의 독자를 가진 글쟁이라도 나는 족하다. 아니, 단 한 사람의 독자가 없어도 좋다. 나는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들어 줄 사람이 없는 말 대신, 나는 그 말 대신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긴다.
"네가 무슨 글쟁이냐?."라고 꾸짖으면 할 말이 있다. '글쟁이'는 누가 정해 주는 것인가? 누구든 누구를 글쟁이라고, 또는 글쟁이가 아니라고 정할 자격은 없다. 그러니까 글쟁이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글쟁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에 나는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는다.
무슨 글을 그렇게 쓰느냐고, 내 부족한 문장력을 나무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무슨 자격으로 내 글을 범하느냐고 되 물을 것이다. 내 글이 모자란다고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 재주도 완벽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이란 아무 데도 없다. 아니,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만하면 나는 자유롭게 글쟁이가 될 수 있다. 아주 자유롭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끝없이 쓰고 싶다. 가능한 한 모순을 배제하려고 애를 쓰면서 말이다. 아, 이 한 마디는 내게 꼭 필요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