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하고 고운 할머니 한 분이 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눈웃음을 치는 반달 눈이, 할머니를 맞는 나에게 정감이 들게 한다. 나도 웃음으로만 인사를 하고, 할머니가 먼저 입 열기를 기다린다. 소파에 무거운 몸을 내려놓고 한 숨을 내리 쉬고는,
"저 언더 서츠는 얼마요?"하신다.
조용한 말소리도 그랬지만, 우리들이 흔히 '가디건'이라고 부르는 상의를 '언더셔츠'라는 이름으로 말하는 할머니가 예사롭지 않다.
"근데, 할머니. 왠 한숨을 그렇게 깊게 쉬세요."
"내가 그랬나?"
장사치가 들어온 손님에게 딴전을 피우자, 할머니는 다시 묻는다.
"저게 이뻐서 들어왔어요. 나 입어도 될까? 너무 고와서..."
"아뇨. 할머니 입으시면 이쁘시겠어요."
한국말은 참 편리하다. '아뇨'와 '이쁘시겠어요.'를 같이 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 다녀오세요?"
이런 이런. 알량한 장사꾼 보게나. 장사할 생각은 도통 없는가 보?
"산에도 가고. 길도 걷고..."
"할아버지는요?"
"내다 버렸어."
"......"
공연한 짓을 했나보다.
벌써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고인 듯하다.
"갑자기 말 한 마디 못 들어보구 갖다 버렸지. 쥐뜯구 싸움이나 한 바탕 하고 보냈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지."
"......"
망할 것. 기껏 할머니 속을 뒤집어놓고는 뒷 감당이 되지 않는다.
"정말 분하더라구. 둘이 살다가 혼자 남으니까 미치겠어."
"아드님네로 들어가셔요."
급한 김에 말은 그리 했어도, 아들이 없는 할머니가 아닌가 싶어 가슴을 조린다.
"그집을 나서기가 싫어서, 손주 둘을 달라 해서 데리구 있는데, 그것들 바라다 보는 재미에 할아버지는 잠깐 씩 잊어. 근디, 내년에는 중학교에 가야 하니까, 데리구 간다구 해서 큰 일 났어. 어째야 할랑가 몰러."
손주들이 초등학생이라면 그 뒷 바라지가 힘드실텐데... 그래도 다시 혼자가 되는 게 큰 일이라 한다.
"혼자 살 건 못 돼. 정말 혼자 살 건 아니더라구. 같이 살게 마련을 잘 했지. 할아버지가 그냥 병이라두 나서, 방에 누워만 있어두 좋겠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년에 혼자가 된 친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얼마나 허전하랴 싶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영감이 없어서 불편한 건, 뒷 단추를 낄 수가 없는 거 한 가지여. 다른 건 하나두 불편하지 않아.'
친구는 남편의 긴 병 수발을 하던 끝이라 그랬을 것이고, 할머니는 졸지에 할어버지를 잃은 슬픔이 커서일 게다.
퇴근을 하고 들어오니 그이가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있다.
"감기가 오는 모양이야."라며,
"감기 약 먹었으니 잠이 들 거여. 내일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일찍 좀 깨워 줘."한다.
이내 잠이 든 그이를 내려다보며 왠지 섬뜩하다. 푹 꺼진 눈 자위며 볼우물 같이 움푹 파인 두 뺨의 주름. 숨도 쉬지 않는 것 같다.
"여보. 자~?"
"......"
"자냐구?"
눈을 감은 채, 귀찮다는 듯.
"왜 그래?"
아하, 살아있구나. 반갑다.
"아냐, 아냐. 주무셔."
감기는 눈을 힘겹게 치켜뜨며 재차 묻는다.
"왜 그러는데?"
"아냐. 그냥 주무시라구."
"원, 싱겁긴."
그이가 쌩 돌아눕는다.
그러셔. 돌아누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구려.
이유도 없이 이 밤, 내 기분은 천장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