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를 한다는 것은

글쓴이 만석

등록일 2004-11-16 09:57

조회수 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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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시아버님이 세상을 버리셨다.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 아주 어려운 중에 팔남매의 장남이셨던 시아버님은,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이 출중하신 분이셨다. 외모만큼이나 마음이 넓고 입이 무거운 분이셨다. 때로는 남편에게 그 말없음을 물려주셨다고 나에게 무언의 불만을 들으셨던 분이시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긴 병의 술발로 어머님이 누우셨다. 스르르 잠이 드신 어머님을, 이제는 좀 쉬도록 하자는 미련한 이 며느리의 배려로 깊은 잠에 빠지셨던 게다.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하고 조용히 쉬도록 해 드렸다. 십 수년의 병 간호가 한 순간에 몰려왔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잘 못 된 판단이었음을 알고 병원으로 옮겼을 때에는 곧 큰 일을 부를 만큼 인사불성이셨다. 지아비를 잃은 여인네의 좌절이었던 것을...
줄초상을 준비하는 중에 어머님은 기적적으로 정신이 드셨다. 물론 아버님의 장례에 참석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두고두고 뇌이셨다.

동네 분들의 이야기로는 두 분의 금술이 너무 좋아, 아버님이 차마 먼 길에 혼자 떠나기를 마다하시는 거라 했다. 안 될 말이다. 설령 아버님의 마음이 그러하시기로 어찌 어머님을 보내드린다는 말인가.

시어머님은 기독교 집안의 며느리를 맞으시며, 절에 올렸던 그이와 내 이름을 빼실 만큼 현명한 분이시다. 나를 그만큼 배려하셨다면, 나도 어머니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남편과 의논하니 49일 상청을 모시는 게 지금의 어머님에게는 최선의 위로라고 했다. 친정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도 부처님도 부모에게 효도하기를 간절히 권하셨다. 상청을 모시는 일이 지금 저 지경의 부모님에 대한 최선의 효도라는데, 못 할 일도 아니다.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 부처님의 뜻을 따름이 아니라 내 어머님의 상한 상처에 위로가 된다면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

잘 나가는 서울의 가게문을 닫고 아이들 밥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간간히 반찬을 해 나르며 49제를 받들었다. 가게는 먹고 사는 일에 연연한 일이 아니니 굳게 닫아놓은 대로다. 당하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서울에 있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지내 주었다.

해가 뜨기 전에 시어머님의 외아들은(남편) 상정 막대기를 들고 산소로 오른다. 나는 산소에서 돌아오는 양반이 들어오면, 해가 뜨기 전에 뫼를 뜰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추어 상을 본다. 소복을 차려입고 따신 진지를 올리고 곡을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에고~.에고~"
울음도 서러움도 하루 이틀이지, 어찌 매일 눈물을 만들겠는가? 만들어 우는 울음은 적지 아니 힘이 들었다.

야속한 사람들. 아무리 딸이 출가외인이라지만, 하루에 하나씩만 같이 섰어도 좋을 것을. 애꿎은 다섯 시누이들을 원망하고 이해하며 삼시 세끼를 맞았다. 그이와 단 둘이 섰기가 썰렁해서 뒷 전에 앉으신 어머님께 동석하실 것을 권했다. 동네 웃음거리라 하시며 애꿎은 방바닥만 손바닥으로 쓰다듬으셨다. 저 속이 어떠하실까를 짚어보니 내 속도 저렸다.

내일이 49제의 마지막이 되던 날. 어머님은 마지막 모시는 조반이니 나도 울어보자 하셨다. 차마 피를 토하는 곡이 이어졌다. 그것은 목청이 아니라 울부짖음이었다. 뉘라 이 울음을 <동네웃음거리>라고 말하리. 그 동안 건성으로 곡을 올린 나를, 어머님은 등 뒤에서 얼마나 가소러워하셨을꼬.

49제를 치르는 동안 어머님은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좋은 길로 가는 영혼을 방해한다는데..." 그럴 리가 있느냐고 말씀을 드려도 찜찜한 기색이셨다. 어머님의 양 손을 모아쥐고 마주앉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저는 안 그래요. 저는 하나님께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께 절을 하는 걸요. 효도하는 마음으로요"

그러나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돌아가신 아버님께 효도를 하자는 마음은 아니었다. 저승의 아버님이 이승의 무엇을 아시겠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살아계신 어머님께 효도를 하자는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지아비를 잃고, 상처받은 지어미를, 이렇게나마 위로해드린다는 게 내 솔직한 고백이었다.

작년의 일이었다. 정말 돌아가시는가 싶을 만큼 앓고 나신 뒤, 조반상을 물리신 어머님이 나에게 진지하게 다가앉으신다.
"..."
"나, 죽으면 '수앙굿' 해 줄 겨? 만약 네가 교회 나가기 땜시 안 해 준다면 큰아이한테 돈 찾아서 맡겨놓구, 나 죽으면 수앙굿 해 달랄란다."하시며 내 눈치를 살피셨다. 큰아이란 어머님의 큰따님, 나에게는 바로 아래 시누이를 이름이다.

"해 드려요. 그냥 해 달라시지, 큰시누 이야기는 왜..."
사실 그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한다면,
"뭐, 그런 걸 해요."해야 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틀림없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어머님은 밤잠을 설치실 게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대답은 잘 한 것 같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모대신앙으로 성장한 나는, 종교는 내가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매결혼을 하면서도 종교를 문제 삼지 않았었다. 결혼을 한 뒤로 줄곧 어머님을 도와 제사를 모셨다. 시아버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시아버님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은 시어머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며칠 전 라디오 프로에 글을 보내서 상으로 김치냉장고를 탔다. 딸이 이사를 가면서 김치냉장고가 붙박이로 있다며 내 집으로 쓰던 것을 실어다 놓아, 내 집에는 김치냉장고가 둘이나 있다. 아직 배달도 되지 않았으나 그 처리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김치냉장고를 상으로 탔다는 말을 들으신 어머님이,
"김치냉장고가 오면 팔 거냐?"
"글쎄요."
"'새언니는 김치냉장고를 또 탔다'니까, 큰아이가, '나 하나 주지'하더라구. '김치냉장고가 없냐?'구 물으니까, 영선네가 아직 없다나 봐."
영선이는 큰시누이의 딸아이다. 그러니까 내겐 질녀가 되는 셈이다. 아니, 어머님에게 외손녀가 된다는 표현이 옳겠다.

"주죠, 뭐."
큰시누이가 아니라, 어머님이 그러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 쉽게 대답했다. 어머님은 금새 반가운 얼굴을 하셨다. 아마 금새 큰따님에게 전화를 하셨을 게다. 주고도 기분이 좋다는 표현, 이럴 때 가능하겠다. 주었다는 기쁨보다는 어머니이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게 더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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