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가 지나는 길에 아랫 댁 수도 가에서 젊은 아낙들이 절인 배추를 씻는다. 김장을 하는 모양이다. 친척 아저씨의 비워둔 집에 세를 들어 사는 젊은 댁이 말을 건넨다. 그녀는 서울에서 전원에 살고 싶어서 이사를 왔다는데, 이웃과 썻 잘 어울려서 칭찬을 받는다고 들었다.
"추운 날 방아 찧으러 오셨네요."
"추운 날 더운 날 가릴 수 있나요. 쪄 준다는 날 와야지요."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시비 조로 들을 만했겠다.
"김장하셨어요?"
"아뇨. 방아 찧어놓고 해야지요."
"배추 좀 가져 가시겠어요?"
"......"
"밭에 배추가 있어요. 가져다 김장하셔요. 무우도 있어요."
아니, 김장을 할 만큼을?
"배추가 얼마나 있는데요?"
"한 20포기는 드릴 수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로 해서요."
"20포기면 우리 김장은 뒤집어 쓰지요."
마침 그녀의 남편이 나에게 눈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저기요. 우리 배추 가져가시라구요. 무우도 좀 뽑아 놓으세요."
그녀의 남편은,
"아, 그러지. 그러세요."라며 언덕으로 올라간다.
그녀의 배추밭에는 아직 속이 잘 찬 배추가 제법 많이 서있다. 배추를 도리는 칼자루가 20포기를 도려놓고도 자꾸만 욕심을 낸다. 하나만 더 한 포기만 더 하다가 그만 30포기를 도려놓는다. 아직 남은 배추가 넉넉하다. 사람의 욕심이라니...
그녀가 밭이랑 저쪽에서 소리친다.
"여기 갓도 있어요. 필요한 만큼 가져가세요."
여전히 넉넉한 웃음을 보낸다.
"무우가 적으시면 저의 마당에 있는 거 좀 더 담아 가세요."
코너를 돌아가던 그녀가 다시 얼굴을 내민다.
"이따가 점심 자시러 오세요. 쌈도 잡숫구요."
"김장은 돕지도 못했는데 무슨 점심을..."
외발 들 것에 배추와 무우를 욕심껏 옮기고 현관으로 돌아
가니, 실한 파 한 아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의 배품일까?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은미네? 영미네? 배추와 무우를 준 젊은 댁은 아닌 것 같은데...끝내 파를 들어다 준 인심은 찾지를 못하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