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골은 이래서 정겹다

글쓴이 만석

등록일 2004-11-16 00:07

조회수 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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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은 나도 쉬어야 한다는 방아간. 어쩌겠는가? 그이가 사무실의 오늘 일을 미루고 나와 시골행. 방아는 벌써 아침부터 돌아간 모양이다.

오늘은 벼 60포대만 찧을 계획이다. 그러나 그이가 벼 60포대를 지어 나를만한 위인이 되지를 않는다. 어쩐다? 이웃에 부탁할 만한 젊은이들도 없다. 세워 둔 경운기는 두어 대 보이지만 운전이 문제다.

그이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벌써 추수가 끝나 휭한 논둑을 이리저리 밟으며, 딱한 양반. 누구를 만난다 해도, 선뜻 손을 벌려 도움을 청하지 못 할 게 뻔한 것을.

이웃에 사시는 칠순의 노인이, 그이의 뒤를 따르는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며 말은 붙인다.
"뭘 그리 보슈? 언제 오셨어?"
"네. 안녕하세요."

자초지종을 들으시고는 곧 경운기를 타고 나타나신다.
"어여 실으슈."
마다 할 제간이 없다. 그이를 손짓해 불러서 벼를 싣는다. 그이도 반가운 기색이긴 하지만, 망설이더니 재간이 없기는 마찬가진가 보다.

몇 포대 싣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지친 그이, 노인이 보시기에도 딱하신가 보다. 묻지도 않는 말에,
"신랑이 이런 일을 안 했어. 공부만 한 걸? 방학 때 내려와도 어머니가 시키지를 않으셨지."

노인은 상의를 벗어 대추나무 마른 가지에 걸고는, 볏짐을 지신다. 막무가내 말려도 막무가내시다. 어깨에 볏짐을 얹고도 걸음이 경쾌하시다. 걱정하는 나에게,
"아직은 문제 없어." 하신다. 그이의 지친 모양이 부끄럽다.

경운기가 지나는 길에 아랫 댁 수도 가에서 젊은 아낙들이 절인 배추를 씻는다. 김장을 하는 모양이다. 친척 아저씨의 비워둔 집에 세를 들어 사는 젊은 댁이 말을 건넨다. 그녀는 서울에서 전원에 살고 싶어서 이사를 왔다는데, 이웃과 썻 잘 어울려서 칭찬을 받는다고 들었다.

"추운 날 방아 찧으러 오셨네요."
"추운 날 더운 날 가릴 수 있나요. 쪄 준다는 날 와야지요."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시비 조로 들을 만했겠다.
"김장하셨어요?"
"아뇨. 방아 찧어놓고 해야지요."
"배추 좀 가져 가시겠어요?"
"......"
"밭에 배추가 있어요. 가져다 김장하셔요. 무우도 있어요."

아니, 김장을 할 만큼을?
"배추가 얼마나 있는데요?"
"한 20포기는 드릴 수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로 해서요."
"20포기면 우리 김장은 뒤집어 쓰지요."

마침 그녀의 남편이 나에게 눈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저기요. 우리 배추 가져가시라구요. 무우도 좀 뽑아 놓으세요."
그녀의 남편은,
"아, 그러지. 그러세요."라며 언덕으로 올라간다.

그녀의 배추밭에는 아직 속이 잘 찬 배추가 제법 많이 서있다. 배추를 도리는 칼자루가 20포기를 도려놓고도 자꾸만 욕심을 낸다. 하나만 더 한 포기만 더 하다가 그만 30포기를 도려놓는다. 아직 남은 배추가 넉넉하다. 사람의 욕심이라니...

그녀가 밭이랑 저쪽에서 소리친다.
"여기 갓도 있어요. 필요한 만큼 가져가세요."
여전히 넉넉한 웃음을 보낸다.
"무우가 적으시면 저의 마당에 있는 거 좀 더 담아 가세요."
코너를 돌아가던 그녀가 다시 얼굴을 내민다.
"이따가 점심 자시러 오세요. 쌈도 잡숫구요."
"김장은 돕지도 못했는데 무슨 점심을..."

외발 들 것에 배추와 무우를 욕심껏 옮기고 현관으로 돌아
가니, 실한 파 한 아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의 배품일까?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은미네? 영미네? 배추와 무우를 준 젊은 댁은 아닌 것 같은데...끝내 파를 들어다 준 인심은 찾지를 못하고 집으로 왔다.

다음 시제에 올 때에는 조끼라도 서너 벌 지어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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