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치마

글쓴이 딸기

등록일 2004-09-11 22:55

조회수 2,648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출산을 앞두고 친정엘 갔었습니다.
할머니가 계셨죠.
지독히도 무섭기만 했던 할머니, 할머니와의 추억은 없습니다.
아주 나쁜 기억들만이 남아있었죠.

기다리던 손자가 아닌 둘째 손녀가 반갑지도 않았던 할머니..
날 낳았다는 죄로 미역국도 제대로 못얻어드시고..
누워있지도 못하고 직접 밥해서 드셨다는 엄마..
제대로 못먹어 젖이 마르고..그래서 배가 고픈지 울었다던 나..
덕분에 할머니의 나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졌었지요.
그렇게 시작한 할머니와 나 사이는 늘 안좋았습니다.

하지만 배불뚝이 손녀 앞에 할머니는
이미 아흔을 앞둔 너무나 늙어버린 모습이셨죠.
더이상 소리지르지도 않고, 매를 들 기운도 없는 늙은이..그런 모습의 할머니가 내 불룩한 배를 만지셨습니다.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무슨 생각으로 그러시는지 ..내가 몸을 피하자 할머니는 자신의 장롱을 뒤적여 낡고 얼룩덜룩한 치마를 내미셨죠.

"내가 아이를 잘 낳아서..동네 사람들이 내 치마를 얻어가곤 했지..
순산하려고..이거 받어. 아프지 말고 낳아"

여전히 덤덤하고 무뚝뚝한 목소리..할머니 얼굴을 올려다 봅니다.
그렇게 주름이 많을 수가 있을까요. 검버섯이 얼굴 가득한 그 괴물같은 얼굴.애써 외면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배 위에 얹어 놓으라는 그 치마는 그렇게 제 장롱 서랍에 모셔졌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갈 때도 제 장롱에 남아있었지요.

그 때 낳은 딸아이가 지금은 다섯살..
"공주님입니다."하는 말에 문득 할머니를 떠올렸던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서운하실 것 같은 생각이 짧게..곹 잊었지만..

얼마전 친정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이제 거동도 못하고 엄마가 똥오줌 받아내는 할머니의 덩그런 육신만 남아있었지요. 엄마가 아기 다루 듯 할머니 식사를 시키고..저더러 할머니한테 빨대로 물을 먹이래요. 아무 의식 없는 할머니의 몸을 일으키고..빨대가 입에 닿자 아이가 젖꼭지를 물듯 쪽쪽 물을 먹습니다. 차가운 피부..눈도 코도 꺼져버린 그런 늙은 할머니..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그러고 며칠 후, 헌 옷가지를 버리며 할머니의 치마를 함께 버렸습니다.
갑자기 구질구질해 보이는 일상, 낡은 것들은 다 버려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었거든요.

오늘 갑자기 그 낡은 치마가 그립습니다.
자신이 살아온데로..자기가 아는 유일한 방식으로 나를 키웠던 할머니..
거죽만 남은 앙상한 할머니의 몸뚱아리..
무섭게 고함치던 할머니의 옛모습이 그립습니다.
내리는 이 가을 비에 어디선가 할머니 치마가 젖어버리겠네요.

끝까지 할머니 말을 안 들어서..
제가 아이를 낳을 때 그렇게도 고생했었나봐요.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담기 인쇄 답글 목록 글쓰기
로그인 후 덧글을 남겨주세요


글수 글수(37,115 )
쓰기
번호 제목 글쓴이등록일조회수
    처음 들어 와서 낯 설어요. ccocca2004-11-102403
    반갑습니다^^* 유리☆2004-11-082466
    안녕하세요~ ^^ bluesmil..2004-11-072556
    잘 오셨어요~~!! 체리.맘2004-11-062560
    채미님 반갑습니다. 운영자2004-11-062483
13628   천둥 번개.. 비가 와요... 조인영2004-11-052540
13627   누가 찾아주려나 만석2004-11-042697
    Re:찾고 말고요 ~ ㅎㅎ 분꽃2004-11-152161
13626   쌀국~~왜 그나물에 그밥으로만 보일까? 송화2004-11-032609
13625   인생 머 있나..^-^ 떰2004-11-032770
13624   가을, 은행나무, 추억...그리고... 천선아2004-11-032581
13623   옛추억을 생각하며~~ 온맘2004-11-022363
13622   책 읽는 내 아이들. 독서 버릇 들이기까지... 누봉이2004-11-012656
    책 읽는 내 아이들. 독서 버릇 들이기까지... bluesmil..2004-11-032410
    책 읽는 내 아이들. 독서 버릇 들이기까지... 지상맘2004-11-032212
    책 읽는 내 아이들. 독서 버릇 들이기까지... 유리☆2004-11-022400
    책 읽는 내 아이들. 독서 버릇 들이기까지... 치자2004-11-012474
    책 읽는 내 아이들. 독서 버릇 들이기까지... 아가페2004-11-012545
13621   11월 첫날에 천선아2004-11-012565
    11월 첫날에 치자2004-11-012339
    11월 첫날에 아가페2004-11-012390
13620   모처럼... juvic2004-10-312567
    모처럼... 아가페2004-11-012462
    미즈가족...^^* 천선아2004-11-012391
13619   꿈꾸는 마음 소엽2004-10-242720
    Re:혹시 듣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파피루스..2004-10-262311
    혹시 듣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천선아2004-10-242939
13618   멀리서 들리는 확성기 소리.. 조인영2004-10-222711
13617   고맙습니다 치자2004-10-212567
    항상 감사드리지요. 천선아2004-10-212546
13616   자녀와 행복해지는 8가지 방법 1 김경자2004-10-152988
쓰기
검색 목록보기


이벤트·체험단

기간 ~

쑥쑥플래닛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