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두고 친정엘 갔었습니다.
할머니가 계셨죠.
지독히도 무섭기만 했던 할머니, 할머니와의 추억은 없습니다.
아주 나쁜 기억들만이 남아있었죠.
기다리던 손자가 아닌 둘째 손녀가 반갑지도 않았던 할머니..
날 낳았다는 죄로 미역국도 제대로 못얻어드시고..
누워있지도 못하고 직접 밥해서 드셨다는 엄마..
제대로 못먹어 젖이 마르고..그래서 배가 고픈지 울었다던 나..
덕분에 할머니의 나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졌었지요.
그렇게 시작한 할머니와 나 사이는 늘 안좋았습니다.
하지만 배불뚝이 손녀 앞에 할머니는
이미 아흔을 앞둔 너무나 늙어버린 모습이셨죠.
더이상 소리지르지도 않고, 매를 들 기운도 없는 늙은이..그런 모습의 할머니가 내 불룩한 배를 만지셨습니다.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무슨 생각으로 그러시는지 ..내가 몸을 피하자 할머니는 자신의 장롱을 뒤적여 낡고 얼룩덜룩한 치마를 내미셨죠.
"내가 아이를 잘 낳아서..동네 사람들이 내 치마를 얻어가곤 했지..
순산하려고..이거 받어. 아프지 말고 낳아"
여전히 덤덤하고 무뚝뚝한 목소리..할머니 얼굴을 올려다 봅니다.
그렇게 주름이 많을 수가 있을까요. 검버섯이 얼굴 가득한 그 괴물같은 얼굴.애써 외면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배 위에 얹어 놓으라는 그 치마는 그렇게 제 장롱 서랍에 모셔졌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갈 때도 제 장롱에 남아있었지요.
그 때 낳은 딸아이가 지금은 다섯살..
"공주님입니다."하는 말에 문득 할머니를 떠올렸던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서운하실 것 같은 생각이 짧게..곹 잊었지만..
얼마전 친정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이제 거동도 못하고 엄마가 똥오줌 받아내는 할머니의 덩그런 육신만 남아있었지요. 엄마가 아기 다루 듯 할머니 식사를 시키고..저더러 할머니한테 빨대로 물을 먹이래요. 아무 의식 없는 할머니의 몸을 일으키고..빨대가 입에 닿자 아이가 젖꼭지를 물듯 쪽쪽 물을 먹습니다. 차가운 피부..눈도 코도 꺼져버린 그런 늙은 할머니..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그러고 며칠 후, 헌 옷가지를 버리며 할머니의 치마를 함께 버렸습니다.
갑자기 구질구질해 보이는 일상, 낡은 것들은 다 버려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었거든요.
오늘 갑자기 그 낡은 치마가 그립습니다.
자신이 살아온데로..자기가 아는 유일한 방식으로 나를 키웠던 할머니..
거죽만 남은 앙상한 할머니의 몸뚱아리..
무섭게 고함치던 할머니의 옛모습이 그립습니다.
내리는 이 가을 비에 어디선가 할머니 치마가 젖어버리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