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의 악몽

글쓴이 누봉이

등록일 2004-08-20 01:45

조회수 2,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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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그다지 심하게 비가 오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태풍 메기가 북상하고 있다고 특별방송을 해댔지만,
여태 그랬듯이 그런건 나와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태풍은 그냥 텔레비전 화면으로나 보는 일이고, 침수피해, 도로유실, 이런것도
별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 목포는 항구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창원으로 향하려고 오후 4시에 영광에서 출발했다.
이때까지도,,뭐, 서너시간 운전하면 되겠거니.. 뭐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했다.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운전쯤이야, 뭐 자주 겪는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게 없는다고 생각했는데..,, 버뜨...
이건 '비가 온다'는 수준이 아니라 양동이로 차 앞유리창에 물을 퍼붓는다 라는
표현이 딱 적당할만큼 퍼붓는 것이었다.
와이퍼가 정신없이 움직이는데도 시야에는 빗줄기 밖에 보이지 않았다.
퍼벅!
순식간에 고이는 물로 차가 순간 순간 휘청거리고 핸들이 마구 돌았다.
어깨에 힘을 팍 주고, 몸을 앞으로 잔뜩 꾸부려 시야를 확보하려 애쓰며
운전했다

광주로 빠져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창원으로 가야하는데.... ???
가도 가도 왜 광주가 안보이는고야????
영광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왜 광주 이정표가 안보이는거지?

그런데..오마이 가뜨!! 마침내 도착한 곳은,,,,,서해안고속도로의 끝... 목포!!!!!
내가 왜 목포까지 왔지???? 목포는 항구인데 내가 왜 목포엘 온거야????
비때문에 광주 이정표를 못보고 지나쳤나?
'잘못 오셨는디요, 여그서는 창원가는 길이 없는디요'
매표소의 총각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 어머 어떡해, 그럼 어디로 가야하죠?'
'다시 광주로 올라가서 남해고속도로를 타야하는디요. 여그서 나가가지고
청계로 가서 광주가는 국도를 타시요잉. 그게 젤 나은디요'
'광주까지 얼마나 걸리죠?'
'한 한시간 반 정도 걸릴거구만요, 그래도 그게 젤로 빠른길이요'

오마이 가뜨.... 이렇게 퍼붓는 빗속을 국도로 한시간 반이나???
별도리가 없었다. 우씨.. 목포 온김에 세발낙지나 먹구 갈까?
약간의 유혹이 없지도 않았지만 여자 혼자 무슨 세발낙지람.
국도로 접어들었다.
비는 여전히 양동이로 퍼붓는 것처럼 내리 꽂히고 있었다.

< 남해고속도로를 찾아서>
청계를 거쳐 무안으로 ,, 한없이 한없이 가다가 결국 한시간이 넘게 퍼붓는 빗속에서 광주로 접어들었다.
방송에서 광주 인근의 침수피해 상황을 시시각각 보도하고 있는데 그 일때문인지 광주 시내가 엄청나게 막혔다
시속 0.5km....
아침에 콩나물 국밥을 먹은 후 이동 시간을 아끼느라 점심을 건너뛰어서 배가 고파왔다.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들면 휴게소가 나오겠지..
그러나 남해고속도로가 어디있는거야!! 왜 차는 안움직이는거야!!
결국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접어 든 것은 저녁 7시 반쯤이었다.
배가 고파서 실신지경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 88고속도로의 비애>
결국 창원으로 가는 일은 포기하고 88고속도로에서 대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비는 엄청나게 퍼붓고 있었고 방송에서는 태풍이 북상하고 있고
동해안쪽으로 이동중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광주쪽으로 태풍이 왔을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이제 태풍의 이동경로를 따라 나 역시 동해안쪽으로 가고 있다는 .... 믿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에 내가 처해있었던 것이다.

88고속도로는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운전자 성격테스트용으로 만든 것임이 분명했다
무슨 고속도로가 최고시속이 80km냐고..
무슨 고속도로가 왕복 이차선이냐고..
그래놓고 무슨 도로비를 받는 것이냐고..
퍼붓는 빗속에서 휘청거리는 핸들을 목숨걸고 잡고 운전을 했다.
배는 무진장 고팠고 식사외의 볼일도 생겼다.
조금만 지나면 남원휴게소가 나올 것이고 거기서 식사와 그 외의 일을 좀 해결하고.. 퍼붓는 비가 좀 수그러들길 기다리며 좀 쉬기도 하자,,,,라는 계획을 세웠다.
허리와 어깨가 아프고 앉은 자리도 배기기 시작했다.
'어머 언니 그게 빗소리야?'
통화중 전화기로 들린 빗소리를 듣고 후배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들리냐? 직접 들으면 엄청나다'
'운전조심해라 진짜. 무섭다'
후배가 안전운전을 신신당부했다.

내가 비를 따라가는 건지, 비가 나를 따라오는 건지..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저 앞에서 번쩍 번쩍 빛나는 번개...
까만 하늘이 순식간에 파랗게 빛나더니 사라지는 그 살벌한 광경..
엄마야,,,,
저 앞에 남원이정표가 보였다
살았다. 조금만 지나면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감격스러웠다 ㅠㅠ..
그런데,, 남원을 지나자마자 차가 서행하더니 멈춰버렸다.
뭐야~~~

한 참 후 노란 비옷을 입은 웬 총각이 창문을 두드렸다
'지금 산사태가 났는디요, . 현재 차선 하나를 복구하고 있거든요, 쫌만 기다리시면 통행이 될거구만요'
암담했지만 답답하지 않게 상황을 알려주니 고마웠다.
우씨..배고픈데.. 우씨.. 휴게소 빨리 가야하는데..
한 참을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노란 비옷을 총각을 마구 나무라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그 총각이 창을 두드렸다
'죄송한디요 차를 돌리셔야 것어요, 복구가 될 것 같은디 방송국에서 나와갖구요..'
뭐야~~~
'어떡해요, 저 대구가야 하는데요. 어떻게 가라구요'
노란 비옷의 총각이 어유 어떡하지를 연발하더니 '좀만 기둘리시요이' 하고
보고를 하러 갔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창을 두드렸다
'죄송한디요 남원IC로 들어가셔서 남장수 IC로 빠져서 가셔야 것구만요. 죄송합니다. 남원IC로 가면 톨게이트 비 면제해줄 것이구만요'
내가 어떻게 하겠어? 차를 돌렸다.....
남원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면제해줬느냐? 절대로 아니다.
광주에서 남원까지의 통행료를 받아야 한단다.
미리 산사태 소식을 알려서 차량이 헛걸음하지 않게 조치를 했어야 되지 않냐는
내 항의는 '지는 모르는 일이구만요'라는 말에 헛소리만 되고 말았다.

배고팠다.. 흑흑... 남 장수 IC로 빠지기 위해 좁은 국도를 달렸다
비는 억수로 오고 번개도 번쩍번쩍 치고.. 시간은 벌써 9시가 넘었다...

< 그리운 경부 고속도로>
밥을 먹어야 했다.
우동이나 간식거리 말고 하얀 쌀로 만든 밥이 먹고 싶었다.
휴게소 식당에서 만찬(?)을 하리라 마음먹고 그 퍼붓는 빗속에서 휴게소가 나타나길 눈이 빠져라 훑어보았다.
거창휴게소... 음료수 표시만 되어있었다. 통과..
언젠가 대구 가는 길에 현풍 휴게소에 들른게 생각났다. 다음에 현풍 휴게소나 나타나겠지..
한참 가도 현풍휴게소는 없고...
의문부호를 머리속에 그리다가 생각하니.. 우씨. 그 길은 구마 고속도로고 여긴 88고속도로잖아!!!
결국 경부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경산이나 평사휴게소에 들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온 몸이 저리고 쑤셨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
나는 생각했다....엄청난 빗속을 뚫고 운전할때 좋은 점 하나.....
공짜 세차!

화원 톨게이트에 접어들었다.. 아, 살았다.
다시 통과통과,, 서대구 IC에서 경부로 접어들었다. 아, 살았다.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었다.
운전한지 7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경부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역시 엄청난 비가 퍼부었다.
앞 유리창이 깨지지나 않을까 겁이 날 정도였다.
도로끝에 엄청나게 물이 고여있어 파바박 물보라가 일고
반대편 차선의 물보라가 느닷없이 앞 유리창을 후려쳐 시야를 방해했다.
차선을 무시하기로 했다
경부고속도로는 도로 양 옆이 깎여 있어 길다란 웅덩이의 띠로 변해있었다.
차선의 가운데로 차를 몰았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시속 40km로 운전했다.
바로 머리위에서 번개가 번쩍 거렸다
엄마야,, 울고 싶을 만큼 무서웠다...
벌 받나봐,, 성격죽이고 살아야 하는데,, 성질난다고 서해쪽으로 튀어갖고
벌 받나부다.. 으앙,,,
계획에 없던 전라도 행을 한 것은 순전히 이놈의 디러운 성격때문이다..
나라고 휴가 못 갈줄 알아? 우씨!!! 남의 휴가에 내가 왜 심통을 부려가지고..ㅠㅠ..

만일 사고가 나면,,난 망한다.. 그럴 수 밖에없는 슬픈 비밀이 있다...
사고나면 딱 죽음이다.. 내가 치든 남이 치든 차가 혼자 뒤집어지든...
투철한 양보정신으로,, 트럭도 앞서 보내고 버스도 앞서보내고,,조신조신 운전했다..
반대편 차선에서 해일같은 물보라가 앞유리창으로 왈칵 왈칵 부딪혀왔다.
도대체 경산은 언제 나타나는거야?????

< 원치 않았던 외박>
드디어 경산휴게소가 나타났다. 살았다!
차가 서자마자 튀어나갔는데...... 다리가 뻣뻣해져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ㅠㅠ...

식당은 이미 끝났고,, 남아있는 메뉴는 육개장과 된장찌게 뿐이라고 했다.
오징어볶음에 재첩국에 꽁치구이에..화려한 만찬을 계획했었는데...
결국 육개장에 달랑 김치 하나만 놓고 밥을 먹었다.
그래도............. 밥을 먹으니까.. 감개무량했다....
겨우 살 것 같았고 눈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좀 쉴까.. 했는데 빗줄기가 좀 잦아든 것 같았다
한시간만 더 가면 울산이다, 힘내라 공혜정!
차를 출발시키면서 보니까 가스가 바닥이었다.
경주휴게소에 들러 가스를 주입하는데 식곤증이 살살 밀려들었다
피곤한데다 밥까지 먹었으니...
경주 휴게소에 대형 트럭 사이에서 차를 세워놓고 시트를 눕히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부쳤다..가 떴는데.. 유리창이 훤했다...
헉??? 오전 6시 30분.. 핸드폰에서 알람소리가 요란했다.
여전히 비는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고.. 세상에.. 라디오도 켜놓고, 정신없이 잠이 들었던 것이다.
세상에..외박을 해버렸다!! 그것도 휴게소에서!! 차안에서!! 비도 오는데!!

<집으로 가는 길>
어제 그렇게 비가왔는데 이젠 좀 수그러졌겠지...라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고속도로는 도로가 아니라 물보라 휘날리는 물썰매장이었다.
바람이 엄청났다. 차가 기우뚱거렸다.
살금 살금 운전해서 드디어 아파트가 보였다, 감격해서 눈물이 나오려했다.
주차를 하고 차문을 열자 엄청난 바람이 나를 강타했고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밥을 많이 먹고 몸무게를 늘려서 태풍 재난에 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현관을 열자 마루가 난리가 났다.
계획에 없던 여행을 가느라 마루가 이틀을 굶었던 것이다....
가방만 내려놓고 마루 밥부터 주었다
주인 성질이 디러우면 키우는 강아지가 피해를 입는 법인가보다 ㅠㅠ..

베란다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강물이 누런 황톳물이 되어 다리가 잠길락말락하고 있다.
이시각 현재, 창밖은 뿌연 회색빛이다
도로에 차들이 별로 없다.

어제 오후 4시에 영광에서 출발해 오늘 아침 7시 30분에 집에 들어왔다
물론 휴게소에서 외박한 시간도 있지만,, 그래도 15시간만의 귀환이라니..
그런데 바로 출근해야 한다니...

잊지못할 '메기'의 추억이다.
'태풍래,출장금지'라는 가훈을 하나 써붙일까.. 심각하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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