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2004년 5월 12일)의 일기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라면 나는 그렇게 말하겠다.
흑맥주와 음악회라고...
비가 참 예쁘게 내리는 날 오후, 가볍게 화장을 하고 우산을 들고 버스를 타러 갔다.
종각 역 앞에 있는 밀레니엄 타워 지하 1층에 있는 식당가에서 신오리님을 만났다.
또 어디로 먼 여행을 떠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인과 중국 운남성으로 7박8일의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되었건 여유롭게 보여서 참 보기가 좋았다.
신오리님이 흑맥주 두 잔을 들고 왔다! 미니피자 세트를 안주로 하여 흑맥주를 마셨는데,
오가는 이야기만큼이나 아주 맛있었다.
신오리님을 얼마나 오랜만에 만났던 건지!
좋은 인연이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만나도 바로 어제 만나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
던 것처럼 편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까. 만나지 않았던 동안에도 마음 속에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할까?
다섯 시가 넘어서 신오리님 친구분이 오시고, 내 친구도 서울역에 도착했다고 해서
신오리님과는 헤어졌다. 먼 길 떠나신다고 해서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도 했다.
돌아나오면서 너무 짤막하게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아쉬웠다. 듣고 싶은 이야기도
더 많이 남았는데...
비 오는 거리를 걸어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려고 했는데, 그 시각에는 오지 않았다. 비가
와서 상큼해진 거리를 걷는 기분이 꽤 좋았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가서 친구에게 전화하니, 오는 길이라고 해서 미술관으로 내려갔다.
세 군데에서 전시회가 그날 오픈했다. 그 중 두 군데를 들러서 조각전과 그림 전시회를
보았다. 조각전이 좀더 예술적이고 격조가 높게 느껴졌다면, 서울미술고등동문전은 편안
하고도 즐겁게 느껴졌다. 특히 남학생 둘의 누드화가 귀여웠다. 학생들이 많이 관람하고
있어서 아마도 더욱 정겹게 느껴졌던 건지 모르겠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더
오래 찬찬히 보고 싶었다...
친구와 만나서 친구 덕에 쟁쟁한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커피와 케익도 먹고 음악회를
보았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된 음악회는 열 시가 가까운 시
각에 끝났다.
한국예술가곡진흥위원회에서 주최한 "제 3회 신작가곡 음악회"였다. "우리 시 우리 노래"
라고 붙여진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곡 음악회는 시인들이 노랫말을 쓰고, 성악가들이
노래한 시간이었다. 김남조, 정호승, 문정희, 김후란, 신달자 등등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서 보다 시적인 기분이 들었다.
화려한 드레스 차림에 얼굴 가득 밝은 웃음을 담고 나와서 혼신의 힘을 다 해 노래하는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성악가들과, 까만 연주복을 갖춰 입고 나와서 우렁차게 노래하는
테너와 바리톤 성악가들의 노래도 좋았고, 음악회의 앞과 뒤를 합창으로 감동의 물결을
자아냈던 서울시 합창단의 노래도 아주 좋았다. 특히 합창단이 노래한 가곡들은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화음도 아주 잘 맞고 그 곡들이 그야말로
명곡이어서인지 감동이 컸을 것이었다.
시는 음악과 어울어지면 더욱 그 빛이 찬란하다는 것을 그날 다시 느꼈다.
시를 쓰시는 분들, 그리고 그 시를 아름답게 빛내 주시는 시낭송가님들이 있는 한국시사랑회...
한때는 참 열성적으로 행사 준비에 참여하였던 것을 떠올리며, 음악회를 보면서 곧 있을
시낭송 대회와 가을에 있을 시사랑의 밤을 생각했다. 그리고, 늘 시와 함께 생활하는 날
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