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글쓴이 누봉이

등록일 2004-03-31 10:05

조회수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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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무능력자였다.
평생 당신 손으로 돈을 벌어 본 적도 , 일을 해본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짐승처럼 온 몸으로 삶에 부딪히며 살아온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낭만주의자였다. 피아노를 치고 소설을 쓰고 시를 읊었다.
그러나 그 낭만주의자는 생에 대한 열등감과 패배감을 어머니를 향한 분노로 풀어헤치는 폭력주의자였다.
실패한 자신의 인생을 술 뒤에 숨어 변명으로 일관한 비겁한 사람이었다.

나에겐 사춘기도 젊음도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터질듯한 분노와 증오만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어찌 변화 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난 참 많이 울었다.
10여년을 기일만 되면 몸부림 치고 울었다.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딸이었다...

남들이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욕을 해도,
아버지의 모든 잘못을 알고있음에도 , 그를 증오하고 미워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들과 함께 아버지의 잘못을 들추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그 가엾은 아버지의 잘 못을 감추고 더이상 남들의 입초사에
오르내리지 말았으면 했다.

좋은 기억도 별로 없는 아버지였을망정, 그래도 나는 그에 대해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싶었다. 내 아버지였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에 대해 무슨 이해가 필요하랴..
손가락질 한 번으로 , 욕지거리 한 번으로 고개 돌리면 그만인 것을,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게 무능력자 , 알콜중독자 딸이라고 매도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딸임은 분명하지만 나는 그와 다른 인격이고
내 삶은 누구의 딸이 아니라 내 개인으로 규정되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놀라운 힘은 인정하지만, 개인의 자유의지도 있는 법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지난 잘못이 내게로 연결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재벌 아버지를 둔 딸이나 가난뱅이 무능력자 아버지를 둔 딸이나
그것은 각 개인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매도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아들, 독재자의 딸, 살인자의 자식.. 그래서 그 애비의 그 자식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그 애비와 똑같은 짓을 할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그 개인이 훌륭한데 그 아버지의 잘못을
굴레처럼 덮어쓰고 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정적들이 권양숙 여사 부친의 인민군
부역 사실을 공격했을 때 '장인의 잘못때문에 이혼해야하느냐' 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 난 노무현 대통령이 옳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의 영부인이 되었지만 아무도 권양숙 여사를 빨갱이의 딸로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옳은 것이다.

국회에 납품을 할 때, 299명 모두를 상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거래했던 국회의원 중에 세금계산서를 끊었던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
50만원짜리 용품을 사도, 20만원짜리 물건을 사도 일일이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 성실하게 납세했고 선관위에 일일이 보고했던 단 한사람.

그 사람은, 독재자의 딸이라 불리며 매도당하는 박근혜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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