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저금통을 뜯었다. 한 2년 되었나? 그간 모으기도 많이 모았지. 4만원이 넘는다. 요걸 어따 쓸까 궁리를 하다가 아이 통장에 넣어주기로 했다.
가까운 은행에 갔다. 그 은행 통장으로 입금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폐로 안 바꿔준단다. 그럼 헐수 없지. 통장을 만든 국내 최고라는 은행으로 갔다. 최고 좋다는 선전에 속음 안 되지만, 유행이라니까 만들었던 캉가루 통장이 있다.
허벌나뿐지게 사람이 많았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기다리는데 시험 치르는 학생마냥 심장이 쿵덕쿵덕 요동을 친다.
내가 암만 집에서 밥이나 하는 아줌마래도 들은 풍월은 있다. 뭐냐허면 은행 사람들은 동전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맞지. 암.
동전은 만들 땐 돈이 많이 든다드만 쓸 때는 값어치가 한개도 없다. 다 싫어하지. 동전은 그저 짤짤이나 해묵던가, 버스 탈 때, 갑자기 공중전화 써야할 때, 십원짜리 고스톱 칠 때가 딱 좋은 거다.
그걸 사만원이나 가지고 있으니, 그 보따리가 을매나 컸겠는가.
참말로 무거워서 들고 있도 못하고 사람도 못 앉을 의자에 모셔두고 기다렸지.
그리고 드디어 불러서 갔는디, 음마. 참말로 부끄러워죽는 줄 알았다. 어찌나 동전동전 해쌌는지. 이걸 왜 들고 왔냐, 바빠죽겄는데 누구 염장지르나. 무식해 보이는 아줌마가 똑 무식한 짓만 골라서 한다. 뭐 이렇게 직접적으로 야그를 한 것은 아이지만. 암튼 이런 눈빛과 저런 몸짓을 보여주드만.
아는 아대로 은행에서 박대를 받으니 기가 팍 죽어버렸지, 나는 진짜 쪽팔리지. 기양 보따리를 고대로 들고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 그 보따리를 고대로 들고가면 우짤까 하는데, 칠칠한 여편네가 그거 하나 처리를 못하고 또 그냥 왔냐고 잔소리를 해댈 남자 얼굴이 퍼뜩 떠오르드만. 그래서 오도가도 못하고 그냥 그 챙피를 다 당하고 기어코 입금을 하고 왔다.
집에 오는데, 딸래미는 딸딸이를 신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오늘도 기어코 딸딸이를 끌고 나와서 발이 까졌다고 울어쌌제. 그걸 날도 더운데 업고 가자니 내가 죽겠제. 거기다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해쌌지.
아이구. 오늘은 진짜 억수로 재수가 없는 날이다.
은행까지 차 좀 태워주면 어데가 덧나나. 땀을 한말을 쏟고 집에 왔더니 남편이란 사람은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다. 저걸 그냥 한 대 확 쌔리주고 도망 가삐리까? 손이 움찔움찔 하는 걸 요란스레 설거지 하는 걸로 풀어버렸다.
그래,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동전이여. 저 눔의 동전만 없었어도 내가 동전을 모으지도 않았을거고, 동전을 안 모았다면 그 망할 넘의 은행에도 안 갔을 거고. 그라면 딸아이 발등도 안 까졌을 거고, 그렇다면 내가 한 말의 땀을 쏟아가며 업고 집까지 걸어오지 않아도 되었을거고, 그랬다면 결과적으로 남편이 미워 쌔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안 했을 거고, 맨손으로 그 지독하다는 퐁퐁을 이따만큼 풀어서 설거지도 안 했을거니 내 손도 멀쩡했을 거고. 다 멀쩡했을 것을. 그 넘의 동전 때문에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렸던 것이다.
음. 쓰고 나니 속은 좀 후련해진다.
동전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잠도 못 자고 끙끙대고 있었으니. 정말 염병맞을 동전임에 틀림없다.
내 다시는 동전을 모으지도 않을 것이며, 동전 들고 은행에도 절대 안 갈 것이며, 다시는 동전을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근데...........
동전 없이 살 수 있나?
아..이 망할 넘의 동전. 누가 좀 없애주소.
사족으로..
우리 아, 커서 영부인이 될 수도 있을만큼 장래가 촉망되는데. 아니 그거 아니라도 오십년은 거래를 틀 수 있었는데 역시 국내 최고라는 은행은 자만에 빠져있는게 분명허다. 오십년 단골 고객을 바쁘다고 내쫓다시피 박대를 해버려?
동전이 모이면 은행으로 가면 안 된다. 단골 점빵을 만들어서 천원씩 지폐로 교환해 오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십원짜리 계를 하나 만들어서 한 오십년 붓는거여. 것도 아니라면 동전이 남아나지 않게 싹쓸어서 동전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다 우리 집에 와서 싹싹 빌어 바꿔가게 해야지.
아따. 그래도 동전 때문에 생긴 한이 쉽게 안 풀어지구만. 동전을 만들어낸 사람을 찾아서 이 원한을 풀어야 할까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