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넘

글쓴이 누봉이

등록일 2003-05-28 18:00

조회수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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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넘은 새해 첫날 문중어른들이 엄숙하게 제사를 지내는 와중에 태어났다.
제사를 지내던 어른들이 아들이라는 말에 제사를 지내다 말고 와이래 좋노~ 하고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설날 태어난 것은 넘에게는 큰 불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넘은 생일날 미역국 대신 떡국을 먹어야했고 생일선물대신 세뱃돈을 타야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야 일석이조였겠지만 넘의 입장에선 반타작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넘의 어린 시절은 비교적 평탄했다.
사춘기시절,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던 의리의리하던 그 시절, 지나가다 공연히 째려보는 넘들과 패싸움을 벌여 파출소에서 가방 들고 벌서다, 연락을 받고 온 9살 위의 형에게 대걸레 자루로 장마철에 먼지 나게 맞았던, 그 쓰라린 추억만 뺀다면 말이다.

군 입대를 하기 전, 막간을 이용해 카페에서 쟁반 돌이를 하던 넘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라는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에 충실하여 마침내 자기 부대 내에서 카페를 개설하게 되고,오색이 영롱한 부대카페에 들른 사단장님께 10만원이라는 거금의 팁까지 챙기기에 이르렀다.

말뚝박으라는 주위의 격려를 무참하게 거절한 넘은 제대 후, 마침내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얻었다.
일명 노가다..
넘은 포크레인이 뜨다 만 흙을 삽으로 퍼 옮기는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하기'를 몸으로 실천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믿는 삽에 발등 찍히기라는 부상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 넘은 바야흐로 화려한 백수의 생활로 접어들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넘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백수의 정도를 걷게 되었으니...

정오에 기상하기, 하루세끼 다 찾아먹기, 친구에게 빈대 붙기, 새벽까지 비디오 보기,조카들 과자 뺏어 먹다 울리기, 온 집안에 만화책과 신문 늘어놓기 등등..

넘은 그때 인생의 좌우명을 ‘빈대붙기’라고 할 정도였으니 주변의 고통은 필설로 표현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넘이 빈대 붙어서 사는 형 집의 형수였었다.
한여름에 민 소매 티 한 번을 입을 수가 있나, 새벽에 기어 들어와서는 ‘ 전 요, 형수가 해주는 밥이 젤 맛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안 먹고 들어왔지요’라며 눈치 없이 구는 넘 때문에 밤잠도 못 자고 밥상을 차려야하는 형수입장에선 넘이 시동생이 아니라 원수였을 것이다.

나이 먹은 넘이 집구석에서 늦잠을 퍼 자며 놀고 먹으며 굴러다니는 꼴은 근면과 성실을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형의 입장에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행태였다.

드디어 형에게 쫒겨 날 처지가 된 넘을 본 넘의 모친은 형제간의 갈등과 넘의 안하무인하고 방자한 백수생활에 일침을 가하고자 넘을 끌고 한밤중에 벽제 공동묘지로 향했다.

‘이 넘아,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아예 끌어 묻기 좋게 여기서 결판을 내자 이 넘아!’

넘의 모친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넘의 멱살을 끌고 공동묘지로 들어가는데 , 넘이 갑자기 울먹이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알았어, 엄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엄마 소원을 못 들어 주겠어? 죽을게, 죽는다구.,,근데,, 나 떵 마려...떵 누고 죽으면 안돼?’

넘의 모친은 그 순간 푸하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고 한다... 떵 때문에 살아 난 넘....

넘은 가끔 넘의 모친에게 짜증을 부리곤 한다.
"엄마~! 왜 날 낳았어? 왜 날 이렇게 잘생기게 낳아가지고 여자들이 줄줄 따르게 만드냔 말이야. ”
“엄마~! 이왕 낳을거면 넷을 낳지, 왜 딸랑 삼남매만 낳아가지고 고스톱 칠 때 광도 못 팔게 만들어? ”

그 말을 들을때마다 모친은 이렇게 대꾸를 하신다고 한다
‘7,000원이 웬수다 이눔아’
이게 무슨 동문서답이냐? 아니다.
당시 낙태비용이 7,000원이었는데 그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넘을 낳아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모친의 자조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넘에게는 미모와 지성에 빛나는 누님이 한 분 계셨다.
넘은 용돈이 궁해지면 교양미 넘치는 누님을 찾아가곤 했다.
“ 누나, 영화보고 싶지 않냐?”
“별루”
“좋은 영화 나왔는데 보구와라. 애들은 내가 봐줄게”
“ 너 참 좋은 넘이구나”
“ 요새 내가 좀 바쁘긴 한데,, 남매지간에 야박하게 굴 수 도 없고,,
애들 봐주는 값, 피자값, 보육비, 놀이비용, 간식비... 10만원만 내라. 어우..너무 깎아줬나?‘
“딴 데 가서 알아봐라”
“이거 왜이래?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동생이 오랜만에 착한 일 좀 하겠다는데! 영화 보러 안가? 드러눕는다?”

웃통을 벗어대며 협박하는 넘에게 교양미 넘치는 미모의 누님은 두 눈뜨고 돈을 뜯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앙앙 울며 일러바치는 말.“엄마~! 삼촌이 피자 다 먹었어, 우린 한 개 밖에 못 먹었어, 앙앙. 삼촌 미워”

그러던 넘이 마침내 직장엘 들어갔다.
온 집안의 경사였으며 가족들에게는 해방의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몇달 착실하게 월급을 타오던 그넘이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을 때 가족들은 긴장했으며 넘의 지난 백수시절을 돌아보며 악몽에 진저리를 쳤다

넘이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는 이유는 단 하나,,, 사장이 맘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빌었다....
“사장이 맘에 들어서 회사다니는 회사원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느냐. 제발 참고 근무 열심히 해라.”
그리고 말미에 가족들은 이런 접미사를 꼭 붙이곤 했다............

“이 미친 넘아...”

그런 그넘에게 무려 8살이나 어린 애인이 생겼다
넘의 표현을 빌자면 '너무나 멋지게 생긴 자기 외모에 뿅간' 아가씨라고 하는데 우리가 볼때 너무 어려서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가씨는 4년간을 줄기차게 넘의 옆에 붙어다니더니
드디어 올 가을에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넘이 결혼을 하게되면.. 넘의 교양과 품격이 넘치는 누님은 하객석에 앉아서
펑펑 울지도 모른다
너무너무 속이 시원해서...
집안의 두통거리 하나 걷어치웠다는 안도감때문에..
그리고..
녀석이 이제 누나야 하고 땡강도 안부리고 찐드기처럼 달라붙지도 않을거니까..
어쩌면 그런 모습이 어쩌면 쪼금,,아주 쪼금...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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