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잠든 모습을 보자니 부부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흰머리가 나고 머리가 듬성듬성 빠지기 시작하고
나이들어가는 남편의 모습이 애잔하기도 하고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로
밉기도 합니다.
남편과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남편이 정이 많고 착하고
그리고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란 믿음때문이었지요.
나에게 지금 그런 믿음이 있을까 싶네요.
남편은 남편대로 열심히 살았고
나는 나대로 그냥 살았죠.
정많아서 아내에게 잘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정많아서 다른 사람들에겐 잘 해주느라 마누라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첨에는 서운하고 그러드니 살다보니 이젠 그려려니 하죠.
남들은 나이 먹어가고 기운도 빠지면 좀 달라진다드니
울 남편은 글쎄요. 여전히 제겐 쌩하지요.
오늘 저녁에 딸이 초코렛이 먹고 싶다더니 제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하더라구요. 남편은 퇴근길에 어김없이 초코렛을 사들고
들어왔지요.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서운한지. 남편이 기운이 빠져
너그러워지는게 아니라 내가 나이가 먹어 애가 되가고 있나봐요.
내가 뭐 하나 부탁하면 들어주는 법이 없는 남자.
내겐 한없이 인색하기만 한 남자.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베풀줄도 모르나
했더니 남들에겐, 그리고 딸에겐 한도끝도 없는 태평양입니다.
얼마전에 가까운 이가 남편이 크게 차사고를 당했는데,
남편이 죽고나면 어떻게 살아갈까 싶어서 아득하더랍니다.
그래서 남편 퇴원하는 날부터 남편이 그동안 하고 싶다던 일,
사고 싶어하던 거 모두 사주고 아끼게 되었답니다.
그 친구는 사고 나니깐 남편 소중한 줄 알겠더라며
앞으로도 잘해주고 싶다는데 나는 속으로
나도 그런 사고가 나면 남편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줄까 이런
궁상스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애정결핍증인거 맞죠.
그래도 남편이 잠든 모습을 보니, 내일 아침엔 좀 잘해주고 싶네요.
마음을 그리 먹고 나니 이제 저도 좀 행복해지는 거 같구요.
이제 공부하러 가야죠.
요즘 공부하는 맛에 그래도 사는게 많이 즐거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