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 은퇴한 알리바바 마윈회장, 알리바바는 많은 꿈 가운데 하나일 뿐

등록일 2019-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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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 갑부인 알리바바의 공동창업자 겸 회장 마윈(馬云)910일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은퇴식에서 마윈은 “알리바바 회장직을 맡지 않는다고 해서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알리바바는 나의 많은 꿈 중 하나일 뿐”이라며 마윈은 “나는 아직 젊다. 많은 곳에 가보고 싶고, 도전하고 싶다. 교육, 공익, 환경보호 등 많을 일들을 해 왔다. 나는 내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출처 ㅣ [인민망 한국어판 9월 11일)



이날은 알리바바 창립 20주년이기도 했으며, 마회장의 55세 생일이기도 했다. 그는 1년전 같은 날, 알리바바의 회장직에서 물러나 교육을 통한 자선활동을 할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고, 그 말을 지킨 셈이다.

 

한편, 마윈의 은퇴는 인터넷 기업 1세대 가운데 처음인데다 50대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시가총액 4600억 달러(549조 원) 기업의 회장직을 외부 영입 인사에게 넘긴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IT알려줌-BM편] 알리바바의 플랫폼 파워 분석


 

그는 중국 항저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3수 끝에 결원이 생긴 덕분에 운 좋게 항저우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능숙하게 잘해 수준급 실력이었다. 마윈의 평생 반려자이며, 알리바바의 숨은 조력자로 잘 알려진 장잉을 만난 건 대학 1학년 때다. 당시 캠퍼스 퀸카였던 장잉과 외계인이란 별명을 가진 마윈의 교제는 캠퍼스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윈은 대학 졸업과 함께 곧바로 그녀와 결혼했으며 강사생활을 하며 1992년 아내와 함께 첫 통역회사인 하이보(海博)를 설립했다. 월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상황이었지만, 장잉은 이때부터 남편이 하는 일에 참여하고 지원했다.  

 

마윈은 1995년 미국에 방문했다가 친구를 통해 인터넷을 처음 접하면서 인터넷의 비전을 확신하고 같은 해에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인 차이나옐로우페이지(中國黃頁)를 세웠다. 당시 장잉이 자신의 은행 예금 전부는 물론 주변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빌려 10만 위안의 창업 자금을 마련한 일화는 특히 유명하다. ‘인터넷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마윈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할 때도 장잉은 마윈을 믿고 격려해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옐로우페이지 사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마윈은 값진 경험과 친구를 얻었고, 다시 함께 일했던 17명과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한다


2000년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이끌어 냈는데, 당시 손정의 회장은 마윈이 사업을 설명하기 시작한 지 6분만에 마윈의 말을 끊고 바로 투자결정을 했다. 손정의 회장이 투자한 2천만 달러는 이후 알리바바가 상장되면서 578억 달러가 되어 3000배의 대박을 냈다.




  이미지 출처 : [IT알려줌-BM편] 알리바바의 플랫폼 파워 분석



8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된 알리바바는 20년 만에 시가총액 4600억 달러(549조원)의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또한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胡潤) 집계에 따르면 마 회장과 가족들의 재산은 390억 달러(47조원)에 달한다.

 


마윈은 은퇴하는 날, 알리바바 그룹을 창업했던 작은 아파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곳은 창업멤버 17명과 또 하나의 창업동지인 아내 장잉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영어 수업을 하기도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릴 때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기도 했던 그녀는 남편이 집으로 데려온  손님들을 대접하고 치우면서 묵묵히 내조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녀 역시 알리바바 창업핵심 멤버로 참여한 성장의 주역이었다. 

                                                           

                                          


알리바바가 안정기에 접어든 2004년, 장잉은 알리바바를 떠난다.  마윈이 장잉에게 "이제 회사보다 가정에서 더 당신이 필요하다"며 퇴사를 권고했다는 말도 있고, 장잉이 "회사에서 더 이상 자신이 할  말이 없다."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묵묵히 자신의 옆에서 늘 남편을 내조해왔던 장잉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마윈은 아내를 어떻게 생각할까? 웹에서 마윈이 말한 "어록" 가운데 유명한 이야기 중의 하나는 "아내가 어머니보다 중요한 이유"다. 부부 사이에 "고부갈등 끝에 아내가 "어머니가 먼저냐, 아내가 먼저냐?이런 질문을 받고 아내는 바꿀 수 있지만 어머니는 바꿀 수 없으니, 어머니가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남성들이 대답을 바꿔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내용이다. 맺음말로 그의 이야기를 다시 인용한다. 




 

어머니가 중요합니까? 아내가 중요합니까?


나는 어머니가 낳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한테 잘 해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지만

아내는 장모님이 낳으셨기 때문에

아내가 나한테 잘 해주는 건 응당한 일이 아니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고통은 아버지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아버지는 응당 어머니에게 잘해야 하지만,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나는 응당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하든 어머니는 영원히 나의 어머니지만,

내가 잘못하면 아내는 남의 아내가 될 수 있다


어머니는 나의 1/3 인생을 책임지지만 아내는 나의 2/3 인생을 책임진다.


아내는 나의 후반생을 보살피니까 어머니는 아내에게 감사해야 하고,

어머니의 후반생도 아내가 보살피니까 나는 응당 아내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아내가 종이장 한 장 믿고 시집와서 못해본 고생하는 건 나 때문이다.

장모님은 아내를 고생 한 번 안 시키고 나한테 시집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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