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 한국인에게 ‘항일의병’ 사진을 남겨준 프레드릭 맥켄지

등록일 2019-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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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사진’
한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의병사진'은 지난 2018년 7월 7일부터 케이블 방송국 tv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마지막회에서 그 상황이 재현되기도 했다.
1906년~1907년 사이로 추정되는 의병사진 촬영자는 영국 ‘데일리메일(Daily Mail)’의 종군기자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 Mackenzie)였다.

맥켄지는 제복과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희망이 전혀 없는 전쟁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지만 애국심이 무엇인지 영롱한 눈초리와 자신만만한 미소로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맥켄지가 남겨준 ‘의병사진’ 속 앳돼 보이지만 결연한 모습의 의병들은 그의 기억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 종군기자로 한국에 왔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 Mackenzie)가 촬영한 ‘항일의병’의 모습.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 종군기자로 한국에 왔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 Mackenzie)가 촬영한 ‘항일의병’의 모습.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1869~1931, Frederick A. Mackenzie)가 항일 의병을 직접 만난 뒤, 그들을 묘사한 말이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영국 런던 ‘데일리 메일(Daily Mail)’ 종군기자로 한국을 방문한 맥켄지는 일제의 만행을 목격하면서 그 침략상을 비판했다 .

수 세대가 지나야만 치유될 수 있는 아픔, 일제침탈의 현장을 보다

맥켄지는 러일전쟁 종전으로 영국으로 돌아갔다.
1906년 여름 다시 한국에 온 맥켄지는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일제의 침탈과 독립운동, 항일 의병들의 활동상을 직접 취재했다. 그리고 그 실상을 담은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을 1908년 발간했다.

21개 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맥켄지는 대한제국의 실상과 멸망 과정을 기록했다. 그는 일제의 잔혹한 만행과 민초들의 고초, 그리고 항일 의병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해 놓았다.

외국 언론인에 대한 탄압과 방해공작을 겪으면서도 의병을 직접 만나기 위해 충주로 발길을 잡았던 맥켄지는 서울 인근의 이천에서 일본군들이 많은 부락을 태워버렸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천으로 향하는 길에서 70~80호 정도의 마을과 제천이 일본에 의해 폐허가 된 것을 목격했다.

“일본군이 한 마을을 평정하고(폐허로 만들고) 나면 순진한 수백 가구가 의병에 투신했다”고 밝힌 맥켄지는 “(폐허가 된) 마을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생업을 조용히 누리는 것 뿐”이라며 “적어도 어느 한 지방은 초토화 작전으로 그토록 유복하던 곳이 폐허가 되었고 의병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했는데, 이때 뿌려진 증오의 씨앗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수 세대가 지나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찾아나선 의병, 그들을 만나다

어렵게 의병을 만난 맥켄지는 무기, 의복, 지원 등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의병들이 매우 측은하게 보였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는 의병들을 측은 혹은 가엽게 생각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명확히 했다.

맥켄지는 “군인(의병)의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았을 때, 나는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며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표현 방법이 잘못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동포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라고 기록했다.

종군기자 맥켄지는 의병장의 말을 빼놓지 않았다.

맥켄지는 ‘전투를 이끌었던 장교’로 표현한 의병장이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것을 언급하며 “(의병장은 나에게)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났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31일까지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열린 특별전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섹션의 모습. ‘항일의병’ 사진, 사진을 그린 그림, 그리고 케이블방송국 tvN의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마지막회 장면이 함께 전시돼 있다. 전한 기자

▲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31일까지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열린 특별전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섹션의 모습.

‘항일의병’ 사진, 사진을 그린 그림, 그리고 케이블방송국 tvN의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마지막회 장면이 함께 전시돼 있다. 전한 기자


"나는 (한국의) 자유와 정의를 기원한다(I plead for Freedom and Justice)" –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서문에서

맥켄지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난 1919년 한국에 대한 자신의 두 번째 책을 저술해 1920년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1919년 봄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항에서 펼친 평화로운 봉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The peaceful uprising of the people of Korea against Japan in the spring of 1919 came as a world surprise)”라고 서문을 시작한 맥켄지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자유를 위한 소녀들의 순교(GIRL MARTYRS FOR LIVERTY)'란 소제를 붙인 17장에서는 “한국독립운동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소녀들과 여성의 참여다(The most extraordinary feature of the uprising of the Korean people is the part taken in it by the girls and women)”라고 정의하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탄압하고 잔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일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데 맥켄지는 기사와 책에 만족하지 않았다.


1919년 11월 독립운동가 김규식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홍보 사업 분야에서 가능한 것을 다하겠다고 알린 맥켄지는 1920년 10월 26일 영국 런던에서 ‘한국친우회’를 창립했다.


영국 국회의원 17명을 포함해 에딘버그 대학 학장과 학자, 언론인, 귀족, 목사 등 유력인사 62명이 참석한 창립식에서 맥켄지는 일제의 식민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한국의 실상을 알렸다.


출처: 해외문화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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