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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에 매니저급으로 입사해 방향을 영업 쪽으로 전환했다. 보통은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정희씨에겐 영업이 더 적성에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영업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어 관리하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단다. 처음엔 무작정 큰 건물 사무실에 올라가 자신이 직접 만든 자료를 돌리며 홍보했다. 그 회사의 차장이, 여기 오는 보험설계사는 다 똑같으니 나가라며 막았을 때 그녀는 외쳤다. 당시 26살의 당돌한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상품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고객관리의 길을 개척했다. ‘아유, 요즘은 안 그러죠.’ 하며 웃으며 손사레를 치는 조정희씨지만, 그 때 그 차장님은 현재 자신의 우수 고객이 되어 있다고. 보험설계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지고 갈수록 전문직화되면서 그녀 또한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한 개인 개인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다르게 짤 수 있도록 자산관리 교육에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조그마한 명함으로는 자신이 딴 자격증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 그렇지만 조정희씨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자격증이나 전문적인 자산 관리가 아닌 감성이라고 역설한다. “이 사람에게 상품을 팔아야지, 돈을 벌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본인을 사랑하고 또 그만큼 고객을 배려해야 자신의 커리어가 창출됩니다. 전 그래서 큰 고객을 일부러 만들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객과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정희씨의 모토는 ‘내 고객이랑 같이 부자 되자’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부자이다. 개인보호 차원에서 연봉 수준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숫자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보험설계사로 전향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같이 간 상사가 없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당장 면접을 봤을지도 모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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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또한 조정희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화끈하게 했다. 한 살 연하의 직장 동료와 스릴 만점의 연애를 2년 반 동안 하고 결혼했다. “당시 남편에게 결혼 안 한 형이 있었는데, 며느리가 아까워서 형을 제끼고 먼저 결혼을 시키셨대요.” 은근히 자랑을 늘어 놓는 그녀. 결혼 후에도 같이 근무하다 보니 바람 날 시간이 없다고. 지금은 남편이 지방에 내려가 있어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신혼 기분 나고 좋겠다는 물음에, 그래도 빨리 남편이 돌아왔으면 한단다. 자신의 일도, 소중한 가족도 놓칠 수 없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 또한 워킹맘으로서 고충을 느낄 때가 많다. 10살 된 딸과 7살 된 아들이 있는데, 여느 엄마처럼 해 주지 못하는 부분에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도 많다고.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자신과 똑 같은 가족을 가진 고객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이다. “힘들 때마다 가족을 생각하고 견뎌요.” 65세까지 보험설계사의 길을 계속 걷고 싶다는 그녀. 보험설계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무엇보다도 본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엔 자신이 걸었던 길을 걸으려 하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그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평탄한 대로가 아니라 작고 구불구불한 길을 택했다. 단숨에 도달하지는 않지만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기에 즐겁고 가족들의 응원이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기꺼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주려 한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할머니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시선이 따뜻했다. 2007.04. 글 박혜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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