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지 가지 않은 길, 그 곳에 성공이 있었다!

등록일 2007-04-17 15:08

조회수 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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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꿈은 원래 초등학교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인생이 남들처럼 단순히 평범하기만 했다면 아마도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자신의 진로가 불투명해졌고 그녀는 선택을 해야 했다. 현실을 무시할 순 없었지만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그녀가 선택한 것은 검정고시. 끝내 대학 입학증을 따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을 듯한데 자신의 인생 행로를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제 멘토라고 한다면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거든요. 한참 예민한 나이에 남들처럼 교복을 입지 않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저를 믿는다고 말해 준 선생님이 있었기에 좌절의 순간마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잠시 그늘이 졌던 그녀의 인생에도 순탄한 행로가 예정되어 있는 듯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또 다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사회적인 시선은 보험설계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주변 사람들 또한 대학까지 나와서 왜 그 일을 하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처럼, 고객이 가장 불행한 순간에 희망을 가지고 나타나는 보험설계사란 직업은 조정희씨에게 매력적이었다.

“보험은 무형의 상품이잖아요. 단순히 종이 한 장에 써 있는 것만 믿고 보험을 드는 건데,나에게 인생의 한 부분을 맡긴다는 사실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고요. 그런 점에서 보험설계사란 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어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르치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에서 그리 어긋난 행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95년에 매니저급으로 입사해 방향을 영업 쪽으로 전환했다. 보통은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정희씨에겐 영업이 더 적성에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영업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어 관리하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단다.

처음엔 무작정 큰 건물 사무실에 올라가 자신이 직접 만든 자료를 돌리며 홍보했다. 그 회사의 차장이, 여기 오는 보험설계사는 다 똑같으니 나가라며 막았을 때 그녀는 외쳤다.
“제가 다른 보험설계사와 똑같다고요? 저에 대해서 얼마만큼 아십니까? 지금 이 사무실에도 23명의 직원들이 앉아 있지만, 그들이 모두 똑같습니까?”

당시 26살의 당돌한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상품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고객관리의 길을 개척했다. ‘아유, 요즘은 안 그러죠.’ 하며 웃으며 손사레를 치는 조정희씨지만, 그 때 그 차장님은 현재 자신의 우수 고객이 되어 있다고.

보험설계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지고 갈수록 전문직화되면서 그녀 또한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한 개인 개인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다르게 짤 수 있도록 자산관리 교육에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조그마한 명함으로는 자신이 딴 자격증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 그렇지만 조정희씨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자격증이나 전문적인 자산 관리가 아닌 감성이라고 역설한다.

“이 사람에게 상품을 팔아야지, 돈을 벌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본인을 사랑하고 또 그만큼 고객을 배려해야 자신의 커리어가 창출됩니다. 전 그래서 큰 고객을 일부러 만들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객과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정희씨의 모토는 ‘내 고객이랑 같이 부자 되자’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부자이다. 개인보호 차원에서 연봉 수준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숫자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보험설계사로 전향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같이 간 상사가 없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당장 면접을 봤을지도 모른다.

사랑 또한 조정희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화끈하게 했다. 한 살 연하의 직장 동료와 스릴 만점의 연애를 2년 반 동안 하고 결혼했다.

“당시 남편에게 결혼 안 한 형이 있었는데, 며느리가 아까워서 형을 제끼고 먼저 결혼을 시키셨대요.”

은근히 자랑을 늘어 놓는 그녀. 결혼 후에도 같이 근무하다 보니 바람 날 시간이 없다고. 지금은 남편이 지방에 내려가 있어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신혼 기분 나고 좋겠다는 물음에, 그래도 빨리 남편이 돌아왔으면 한단다. 자신의 일도, 소중한 가족도 놓칠 수 없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 또한 워킹맘으로서 고충을 느낄 때가 많다. 10살 된 딸과 7살 된 아들이 있는데, 여느 엄마처럼 해 주지 못하는 부분에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도 많다고.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자신과 똑 같은 가족을 가진 고객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이다.

“힘들 때마다 가족을 생각하고 견뎌요.”
조정희씨의 중심엔 가족이 있고, 그 가족들의 중심엔 또한 조정희씨가 있다. 요즘은 아이 때문에 고객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너무 내 새끼 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오늘도 그녀의 일은 계속된다.

65세까지 보험설계사의 길을 계속 걷고 싶다는 그녀. 보험설계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요즘 남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보험설계사는 고객과의 감성적인 부분이 많아서 여성에게 더 맞는 직업 같아요. 또 일을 하다 보면 고객의 비밀스런 부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을 의리와 신뢰로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본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엔 자신이 걸었던 길을 걸으려 하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그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평탄한 대로가 아니라 작고 구불구불한 길을 택했다. 단숨에 도달하지는 않지만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기에 즐겁고 가족들의 응원이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기꺼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주려 한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할머니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시선이 따뜻했다.


2007.04. 글 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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