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재밌는 동네 만들고파

등록일 2019-07-3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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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동네 만들고파" 도시재생의 뜨거운 현장 :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후암동에 있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프로젝트 후암. 지명이 곧 정체성이 되는 이 프로젝트는 다름 아닌 용산구 후암동의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다.

동네의 어디에서든, 어느 골목에서든 서울타워가 보이고 잡아먹을 듯 들어서는 대형건물 대신 아담한 집과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는 후암동. 이곳의 빛깔을 온전히 지켜내고픈 젊은 건축가들의 협동조합,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의 이준형 실장을 만나 5년간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내부.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기 위한 발판, 협동조합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이하 도시공감)는 전체 조합원 13명, 그중 7명의 조합원이 상근으로 일하는 아담한 협동조합이다.

주로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도시·지역 재생 관련 용역사업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사무소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공유공간과 가록 등의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주 수입원인 용역사업과 자체 프로젝트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도시 재생'이다. 이와 관련해 이준형 실장은 사무소의 설립배경부터 설명한다.

"저를 포함해 대학원 선후배로 지내던 5명이 모여 2014년에 협동조합을 설립했어요. 건축설계, 디자인으로 수익을 내면서 5명 모두의 관심사인 도시 재생 분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재밌는 일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죠."


◀ 이준형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실장.


도시, 지역 재생과 마을 만들기를 연구하고 직접 실행하고 싶었던 다섯 청년이 창업하기에 협동조합은 제격이었다. 건축을 전공하고 이공계에 오랫동안 몸담은 청년들이다보니 회사설립과 운영에 경험이 없는 상태였다. 또 매출에만 집중하고자 시작한 창업이 아니었기에 일반적인 법인 설립 대신 협동조합을 선택하기에 알맞았다.

"저희가 무조건 수익에만 집중하려고 했다면 법인을 설립하고 도시 재생이 아니라 멋진 주택이나 비싸고 미적인 면을 강조한 건물을 지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추구한 건 도시 재생으로 수익을 내면서 현장에서 주민들과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고 소통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수평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협동조합 형태로 창업하는 게 알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도시공감은 5년째 굴곡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창업멤버 다섯 명이 처음부터 공동의 의사결정과 책임감이 바탕인 협동조합에 대해 확실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창업멤버는 조합원이 됐고, 이후 인력이 더 필요해 충원한 직원은 함께 일하면서 뜻이 맞으면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도시공감이 후암동에서 벌인 첫 프로젝트, '후암가록'.

후암동과의 만남, 꿈꾸던 터전을 찾다


도시공감은 설립 후 1년 6개월 동안 사무실이 없었다. 조합원 중 일부는 학생이었고, 일부는 본업이 있는 직장인이었다.

각자 본업과 학업을 마무리하고 저녁시간 혹은 틈틈이 조합에서 추진하는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사무실은 필요 없었다. 그저 각자의 PC 한 대만 있으면 족했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조합원 중 누군가의 집에 모여 의사결정을 하거나 협업했다. 그렇게 일하며 조금씩 비용을 마련했고, 어느 정도 자금과 기반이 준비됐을 때 이들은 사무실을 구하러 다닌 게 아니라 '활동할 만한 동네'를 찾아다녔다.

"단순히 사무실만 필요했다면 보증금과 월세, 교통만 고려해 구하면 되죠. 하지만 저희는 배우고 연구한 것을 지역 재생으로 실현할 곳, 즉 저희가 활동하기 좋은 터전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동네에 많이 다니다 후암동에 오게 됐는데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건축가의 시선에서 정말 매력적인 동네라고."

'후암가록' 내부.


구릉지에 위치한 후암동은 어느 길목에서든 서울타워가 보이는 멋진 배경이 둘러져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목조주택부터 협소주택, 오래된 빌라와 단독주택이 다종다양하게 뒤섞인 후암동은 개성이 넘쳤다. 이곳에 자리 잡으면 재미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준형 실장과 조합원들은 후암동에 방문한 첫날 이곳을 터전으로 삼는 데 전원 동의했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의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암가록'도 후암동에 방문한 첫날 기획한 아이디어였다.

'후암가록' 내부.

소중한 삶의 기록, 후암가록


조합은 현재 공유공간 만들기와 마을 아카이빙, 이 두 가지가 주를 이루는 <프로젝트 후암>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 아카이빙의 명칭은 '후암가록'으로 2016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공모사업에 선정돼 예산 지원을 받아 시작한 프로젝트다.

후암가록은 동네의 오래된 집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후암동 곳곳에 위치한 고택의 집주인이나 거주자가 신청하면 조합의 직원들이 방문해 집의 내부와 외부를 실측하고 도면으로 옮긴다. 집의 평면도와 입면도가 나오면 명패와 액자로 만들어 신청자에게 선물한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은 후암가록에 참여할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홍보물, 포스터를 제작하고 액자와 명패 만드는 데 사용했다.

'후암가록' 벽면에는 후암가록의 설명이 쓰여있다.

조합이 처음 기획한 후암가록은 '기록'에 충실한 활동이었다. 오래된 집들은 도면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것을 기록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후암가록은 회를 거듭할수록 저절로 의미가 부여됐다.

"오래된 집들이 특별한 문화유산이나 유적은 아니지만 보통의 우리들이 살며 남긴 역사잖아요. 이 역사는 일부러 기록하지 않으면 어느 날 허물어져 신축건물이 들어왔을 때 사라져버리는 흔적이죠. 실제로 저희가 남긴 가록 중 몇 군데는 이미 사라지고 신축건물이 들어온 곳이 있어요."

올해로 3년째 기록 중인 후암가록은 최근 15번째 집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기록한 모든 집에 애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준형 실장의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후암가록'프로젝트를 선정한 집과 후암동 주민.

"어떤 분이 후암동에 집을 사서 결혼도 하고 자녀들을 낳고 키우며 수십 년을 사셨대요.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고 나서는 큰 집이 적적하기도 해서 집을 팔고 다른 데로 이사를 가기로 하셨는데, 그 집을 사서 이사 오기로 한 새 주인이 후암가록을 신청하셨어요. 한평생 가까이 살았던 집의 기록을 전 주인께 선물하고 싶다고요. 집에 대한 기록이 일생의 기억이자 역사로써 가치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 계기였죠."

이처럼 후암가록은 오래된 동네의 역사를 가치 있게 여기는 조합과 동네에 애정이 가득한 주민의 관심이 더불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현재 후암가록은 조합의 공유공간에 전시 중이다. 공간이름도 ‘후암가록’이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기록한 가록과 영상, 인쇄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프로젝트 후암>의 공유주방인 '후암주방'은 후암동 주민들이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


1인가구의 또 다른 집, 공유공간


<프로젝트 후암>의 또 다른 활동은 공유공간 조성 및 운영이다. 조합이 조성, 운영 중인 공유공간은 후암주방, 후암서재, 후암거실, 후암가록 총 네 군데다.

이준형 실장은 석사 논문으로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주거 특징을 연구한 바 있다. 당시 1인가구들이 밀집한 지역에 코인세탁소, 스터디카페, 1인용 식당 등 상업시설이 발달하는 모습을 보며 소규모 가구를 위한 공유공간을 마을 단위로 활성화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서울에서 청년들의 주거상황을 살펴보면 원룸, 쉐어하우스, 고시원 등이 대다수고 경제적 여건이 좋으면 오피스텔 정도인데 그 환경에서 제대로 요리를 하거나 작업실, 서재 등을 갖긴 어렵죠. 그래서 작은 집에서 갖기 어려운 주방, 서재 등의 공간을 만들어 주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만든 게 후암주방과 후암서재입니다."

'후암주방'의 내부.

공유주방인 '후암주방'은 인덕션과 조리도구, 냉장고, 정수기, 식탁 등 요리와 식사를 즐기기 좋은 공간이다. 낮과 저녁에 한 팀씩만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인기가 좋아 예약이 비는 날이 별로 없다.

공유서재인 '후암서재'는 조용한 작업실이 필요하거나 안락한 자리에서 책을 읽을 서가가 필요한 이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서는 독서모임, 세미나 등 다양한 모임도 개최되는데 인근 주민 한 분은 이곳에서만 벌써 50여회가 넘는 독서모임을 열 정도로 공간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후암거실' 전경.

지난 6월 오픈한 '후암거실'은 거실과 TV가 부재한 현대인들이 큰 화면과 좋은 사운드를 누리며 거실 특유의 놀이문화를 즐기도록 만든 공간이다.

후암거실이 위치한 3층 건물 중 1,2층은 마찬가지로 공유공간을 만들어가는 '블랭크'와의 협업으로 '공집합 후암'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바가 들어섰다. 3층이 홈시어터 장비를 구비한 후암거실이다. 후암거실에서는 올해 하반기 마을 영화제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후암가록은 <프로젝트 후암>의 가록 활동과 이름이 같은 공간이다. 현재는 가록을 전시하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에는 재미있는 전시를 준비 중이다. 아직 준비 중인 전시라 이준형 실장은 조심스레 설명한다.

'후암서재' 전경.

"7월에는 후암가록에서 후암동 아이들의 그림을 전시하려고 해요. 저희가 프로젝트 후암을 진행하면서 이 지역 어머니들과 많이 가까워졌어요. 주민들이 만든 창작물, 아이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주민들이 편하게 방문토록 해 마을 공유공간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후암가록에는 가록을 보기 위해 찾는 방문객 외에도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 주로 자신들의 아지트를 필요로 하는 어린 꼬마들이 놀러와 풋풋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공유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후암서재' 내부. 벽면이 책으로 가득 차있다.


협동조합이기에 키울 수 있었던 도시 재생의 꿈


<프로젝트 후암>이 지금과 같은 결과물을 축적한 것은 협동조합이라는 운영형태가 조합이 추구하는 가치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준형 실장은 5년간 협동조합의 일원으로 느낀 바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조합에서 제가 이사장으로 등록돼 있지만 조합원 모두가 어떤 책임을 제게 넘긴 적이 없어요. 만약 이사장이란 이유로 조합에서 많은 책임과 부담을 지고 가야 한다면 그건 협동조합이 아닐 겁니다. 저희 조합은 도시 재생에 뜻이 있고,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동등한 책임을 나눠가지는 협동조합의 성격이 잘 맞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원활히 운영됐다고 생각해요."

이준형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실장.

때문에 이준형 실장은 협동조합 설립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쓴 소리도 덧붙였다.

"만약 창업의 위험부담을 피하고 싶어서 협동조합을 만든다면 반대로 책임을 져야 할 순간 역시 모두가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할 겁니다.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되 개개인이 책임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협동조합을 설립하길 권합니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크고 작은 일들이 이준형 실장을 비롯한 조합원의 책임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느낌이다. 조합은 현재까지 조성한 4개의 공유공간을 더욱 많은 주민들이 즐겨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게 목표다. 하반기에는 공간을 빌려주면서 지역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소통하기 위한 프로그램 기획에도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조합의 장기적인 목표는 도시 재생, 즉 <프로젝트 후암>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만든 기초적인 사유가 도시 재생을 통해 저희가 하고 싶은 일, 재밌는 일을 마음껏 해보고 싶어서였어요. 그 초심에 맞게 프로젝트 후암을 비롯한 도시 재생 사업에 주력하는 게 저희 조합이 추구하는 목표이자 가치입니다."

후암서재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한창 오픈 준비 중인 후암거실에 들러 들뜬 분위기를 감지했다. 목표가 분명한 이들의 협동조합은 흔들림 없이 올곧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이준형 실장과의 대화와 공유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글. 도란 작가

사진. 도란 작가 /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제공






출처: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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