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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계란 하나씩을 넣고 피켓을 들고 있던 우리는‘불법 집회’라는 소리에 난감해져버렸다.
우리가 피켓을 든 것은 계모 박씨를 엄중 처벌해 달라는 여론을 검찰과 법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인데 이를 어쩌나...
용감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우리와 막아서는 검찰관계자들의 조용한 실랑이가 계속 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카메라와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그 중 한 기자가 내 귓가에 슬쩍 이런 말을 흘렸다.
“기자 회견한다고 하세요, 그럼 괜찮을 거예요”
기자회견?
뭘 어떻게 하는 게 기자회견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검찰 관계자에게 우리는 집회가 아니라 기자회견을 위해 모였다라고 큰 소리를 치고 피켓을 들고 섰다.
기자들은 우리의 모습을 찍었고 모인 사람들과 인터뷰도 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내 모습을 잡았다.
울산에서 약 5년간 일을 하면서 아는 사람도 많고 마지막 모습이 별로 유쾌하지 않은 지라 얼굴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지만, 언론에 일을 알리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서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다.
“단체 이름이 뭔가요?”
단체? 아닌데?
그냥 학대로 죽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피켓을 들고 있을 뿐, 단체는 무슨....
“대표님은 누구신가요?”
대표? 없는데?
그냥 의견을 나누다가 피켓, 서명 얘기가 나왔고, 다들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지 , 대표는 무슨...
기자는 자막에 쓸 이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 울산 학대 아동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라고 할까요?”
아무런 대책도 없는데, 대책위원회라고 하기엔 좀...
그래도 그게 낫겠다 싶어서 그러시라고 했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모자이크 처리해드릴까요?”
얼굴 나가는 게 별로 마뜩하지는 않았지만, 모자이크 처리는 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제가 죄 지은 것도 아닌데요 뭐” 하고 내가 픽 웃자 기자도 따라 웃었다.
계모 박씨가 탄 호송버스가 예상시간 보다 늦게 출발했다고 김지웅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략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음알음으로 연락이 되어 모인 사람들이 이삼십 명 정도 되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계란을 달라고 하여 계란 한판이 순식간에 동이 났고 우리는 잔뜩 긴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저 아래쪽에서 호송버스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호송 버스만 보았을 뿐인데도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이성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내 입에서 ‘사형!’ ‘사형!’ 소리가 방언 터지듯 터져 나왔다.
모인 사람들도 나와 함께 ‘사형!’을 외치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차츰 통곡으로 변했다.
매일 마주쳤던 이웃집의 가냘픈 여자 아이가, 오며가며 머리 쓰다듬어주던 그 귀여운 아이가 갈비뼈가 16개나 부러질 정도로 맞아서 죽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 듯, 구영리 엄마들은 통곡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가 정문을 막아서고 피켓을 흔들며 악머구리처럼 울면서 사형을 외치자 호송버스가 길가에 멈췄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버스로 돌진했다.
“너 내려! 너 내려! 내리란말야!”
이틀 전 경찰서에서 봤던 그 작은 아이의 부러진 허벅지 뼈 사진이, 끔찍한 화상 상처가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분노에 휩싸여 뭘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이, 이것이 공무집행 방해라는 의식도 없이 버스를 차고 문을 두들겨댔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버스를 에워쌌고 저마다 분노로 버스를 두들기며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11일 계모 박씨의 두번째 공판날 하늘소풍 회원들의 호송버스 저지 시위 모습>
한 참 후, 버스 문이 조금 열리더니 경찰관 한 분이 “ 이 버스 아니거든요,, 다음 번에 오는 버스거든요” 라고 하는게 아닌가?
도떼기 시장같던 분위기가 싸아~ 해지면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 버스에 박씨가 탄 게 아닌....가요?” 하고 묻자 “아닙니다, 다음 번 버스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송버스의 창문은 새까맣게 선팅이 되어있어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경찰이 아니라면 아닌거겠지, 설마 경찰이 거짓말을 하겠어?
눈물범벅이 된 사람들은 방금 고래고래 악을 쓴 게 민망해서 서로 쑥스럽게 쳐다보았고
우린 “예행연습 했다고 쳐요”하고 다시 피켓을 들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버스는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길로 빠졌다
“진짜 아닌가 봐”
우린 순식간에 쉰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다시 뚫어지게 다음 버스를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버스 같은 건 오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에 버스가 간 길을 쫒아갔더니 이런 된장!!! 검찰청 옆으로 가는 샛문이 하나 있는 게 아닌가?
우린 닭 쫒던 개처럼 허탈해져 버렸다.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저렇게 보호해주는거냐”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그야말로 버스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결국 준비한 계란은 삶아먹는 걸로...
이후 호송버스 저지 시위는 매 공판마다 있었지만, 항소 공판 마지막 날,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처음과 끝이 어찌 이리 똑같을 수가....
계모 박씨는 놓쳤지만 아직 우리에겐 친부 이씨가 있었다.
지난 번 울주경찰서에 갔을때 포항으로 급파된 형사들이 마침내 아동학대신고 사실을 밝혀냈고 계모 박씨를 ‘상해치사’에서 ‘학대치사’로 공소장을 변경해서 송치하였다.
그날 친부이씨와 계모 박씨가 대질 심문을 하였는데, 친부 이씨는 포항에서의 아동학대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계모 박씨를 윽박질렀고 ‘다 털어놔라, 니가 다 털어놓는다면 너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마’라고 회유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지금도 친부의 행동이 회유가 아닌, 입막음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차피 계모 박씨는 학대치사로 기소된 상황인데 잃을게 없지 않은가. 이후 계모 박씨는 허벅지뼈 부러뜨린 것과 화상입힌 것이 자신의 짓이라고 자백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절대로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했었다는데...)
어떤 사건에 있어서 유족의 탄원서와 합의는 감형에 주요인이 된다.
어림도 없지!
친부 이씨와 그 형제들을 밴드로 소환했다.
그리고 ‘ 네가 만일 박씨를 위해 탄원서를 써준다면 네 스스로 공범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라며 조목조목 추궁했다. 일언반구 대꾸는 없었지만 반드시 보고 있을 것을 알기에, 이틀간 내내 손에 핸드폰을 쥐고 밴드에서 친부 이씨를 쥐잡 듯 잡았다.
사람들이 밴드로 몰려들어왔다.
내가 아주 속 시원하게 몰아붙이며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밴드 사람들이 각자 지인들을 초청한 것이다. 3일도 안되어 밴드 인원이 차버렸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800명이었던 듯)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탄원서를 쓰는 순간 너는 공범’이라고 꼭꼭 짚어주며 욕만 안했다뿐이지 지독하게 몰아붙인 후 친부와 그 형제들을 밴드에서 쫒아내 버렸다.
밴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한마디씩만 해도 내 글은 초속으로 묻혀버렸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나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에게 글을 올리지 못하게 한 후 내 글을 먼저 쓴 다음에 의견을 묻곤 한다)
사건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선 밴드 외의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카페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했고 구영리 엄마 중 한 분이 선듯 네이버에 카페를 만들었고 바로 내게 매니저 위임을 해주었다.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
소풍가던 날 아침, 계모 박씨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제발 소풍만은 보내달라’고 애원했던 아이는,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부산 아쿠아리움으로 소풍을 가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한 아이에 대한 가슴 아픈 일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전반적인 일로 시야가 확장되었고 짧은 기간동안 수없이 많은 일을 이뤄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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